“적의 눈을 속여라”…유령처럼 안 보이는 ‘투명망토’ 전투기 온다 [박수찬의 軍]
적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고도 하늘을 날면서 공격하는 항공기는 오랜 기간 세계 각국 공군이 품어온 꿈이었다. 미국 F-22, F-35, B-2와 중국 J-20 등의 5세대 전투기는 이같은 구상을 현실로 만든 스텔스기다.
하지만 기술과 전장 환경의 급속한 변화는 기존 스텔스기의 활동이 제약을 받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20년대를 맞아 주요 선진국들이 기존 스텔스기를 뛰어넘는 차세대 기종을 만드는 작업을 본격화하는 이유다.
스텔스 기술 분야에서 가장 앞선 미국은 중국, 러시아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지닌 기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일부 강대국만이 보유한 폭격기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은 핵보유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폭격기 전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B-1, B-2, B-52H로 구성된 폭격기는 미국 핵 억제력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세계 각국을 누비며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종은 사용한 지 30년이 넘은 노후 기종이다. 1974년 첫 비행을 했던 B-1은 핵탄두가 아닌 재래식 무기만 사용할 수 있다.
1989년부터 생산된 B-2는 강력한 스텔스 성능을 갖췄고 핵폭탄 탑재가 가능하지만, 수량이 20대 미만에 불과하다. B-52는 여러 차례 성능개량을 거듭했지만, 1955년에 배치된 기종이다.
가오리를 떠올리게 하는 외형을 지닌 B-21은 미국이 냉전 종식 후 처음으로 개발한 폭격기이자 세계 최초의 6세대 군용기로 평가받는다. B-2 스텔스 폭격기를 만들었던 미국 방위산업체 노스롭그루먼이 2015년 시제기 제작을 시작, 6대가 생산됐다.
내년부터 시험평가를 거쳐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100대를 배치해 B-52와 B-1을 대체할 예정이다.
미 공군은 B-21의 세부 성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시제기 공개행사에서도 전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정도였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라면 외형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제한된 수준에서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B-21은 재래식 정밀유도무기와 전술핵을 탑재하며, 미 본토에서 이륙해 공중급유를 받으며 전 세계의 전략 표적을 은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21은 레이더에서는 공중에 떠 있는 골프공과 같은 수준으로 나타날 정도다. 이는 B-1보다 훨씬 우수한 성능이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신형 무기를 효과적으로 체계통합할 수 있고, 다양한 플랫폼과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체계도 구축되어 있다.
B-21은 컬럼비아급 전략핵추진잠수함, 차세대 핵미사일과 더불어 미국의 새로운 핵 억제력을 구성할 전력이 될 예정이다.
B-21의 대당 가격은 6억9200만 달러(약 9040억 원). 한국 해군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1척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갖고 있지만, 가격도 그만큼 비싸다는 점에서 대량 생산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중국해 등에서 중국과 대립하는 일본은 차세대 전투기 개발 작업을 본격화했다. 9일 일본 정부는 2035년 배치를 목표로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F-35를 능가하는 차세대 전투기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이 전투기 도입 과정에서 미국 이외의 국가와 협력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일본은 F-4, F-15 등 항공자위대 전투기를 미국에서 들여왔지만, 미국이 1980년대 일본의 F-2 전투기 개발 당시 첨단 소프트웨어 접근을 제한했던 것처럼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 과정에서 핵심 기술의 공유에 대한 문제로 영국, 이탈리아와의 공동개발로 선회했다.
미국은 유사시 미일 연합작전에 필요한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고, 차세대 전투기와 함께 활동할 무인기를 일본과 함께 개발할 예정이다.
일본은 스텔스기 제작 경험이 풍부한 미 록히드마틴과의 협력을 추진했지만, 미국은 일본이 이미 보유한 F-35 수준의 기술 이전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제공하는 기술도 세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도록 ‘블랙박스’ 개념을 적용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영국은 이탈리아와 함께 ‘템페스트’ 6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에어버스가 만든 유로파이터 전투기를 대체할 템페스트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AI) 기술이다. 6세대 전투기는 최첨단 디지털 기능이 쓰이는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 등의 정보수집 센서를 다수 탑재한다. 기존 전투기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조종사에게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뇌는 한계가 있다. 조종사로서는 이 많은 정보를 빠르게 소화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다양한 센서들이 수집한 정보를 융합해 조종사에게 제공하는 AI가 필요하다.
AI를 사용하려면 전투기의 시스템을 디지털로 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행과 시스템 가동에 쓸 동력이 필수다. 강력한 추력과 효율적인 연비를 갖춘 고성능 엔진과 더불어 높은 열을 관리하는 기술도 갖춰야 한다. 레이저를 비롯한 미래 신무기 탑재도 고려해야 한다.
템페스트 개발에 참여하는 BAE 시스템스, 롤스로이스, 레오나르도, MBDA 등이 전투기와 항공유도무기 제작 경험이 풍부하다. 하지만 기술적 난도가 높은 만큼 리스크를 분담할 제3의 존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도 독자적인 6세대 전투기 개발은 기술적, 재정적으로 어려웠다. 템페스트의 개념과 성능이 일본의 요구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3국 공동개발 체제가 구성된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3국의 전투기 공동개발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미쓰비시전기, 영국 BAE시스템과 롤스로이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등 주요 방산업체가 대거 참여한다.
차세대 전투기를 2035년까지 개발하면 일본은 100대를 생산해 F-2 전투기를 대체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영국과 이탈리아는 유로파이터를 대체할 계획이다.
다양한 작전 수행 능력, 무인기·인공위성과의 네트워크 성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개발될 차세대 전투기는 템페스트 프로그램에 기반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공동개발 과정에서 먼저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지분 및 물량 배분, 비용 분담 비율 등을 놓고 3국간 이견이 노출될 가능성도 있어 개발 과정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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