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과학] 가상인간이 혈당 재고, 외골격 슈트 입고…임상시험서 인간이 사라진다

이병철 기자 2022. 12.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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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 기술 적용되는 임상시험
유럽 임상 및 분자의학회지

아일랜드의 당뇨병전문기업인 메드다이아비티스는 지난 1월 당뇨병 환자를 모집해 몸 안에서 식사와 인슐린 분비에 따라 저혈당 쇼크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임상시험을 마쳤다.

이번 임상시험에는 실제 당뇨병 환자 130명과 디지털 트윈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 인간이 참여했다. 메드다이아비티스에 따르면 이 가상 인간은 3500명의 신체 대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섭취한 음식과 분비되는 인슐린의 양에 따라 혈당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사이버상에 복제된 가상 현실 모델을 의미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은 최근 건설과 제조 분야에서 주목되는 기술로 떠올랐다. 기기 오작동이나 공장 이상 등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상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최근 의학과 제약 분야로도 역할을 확대해 임상시험에서 활용되고 있다. 실제 인간의 생체 데이터를 이용해 만든 가상 인간으로 실제 사람을 대신해 신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판단하는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평균 10년이 넘는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임상시험 참가자가 부족한 희귀질환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사람과 가상인간이 함께 임상시험

18일 미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현재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한 3건의 임상시험이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아 진행 중 있다. 최근 연구를 마친 2건을 더하면 디지털 트윈 관련 임상시험은 총 5건으로 늘어난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실제로 실험하기 어려운 사고 예측, 대규모 공정 연구 등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이용해 가상의 사람을 만들고, 신약이나 의료기기 개발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실제 사람의 유전자, 신체 대사, 호르몬, 움직임 등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가상 인간이 임상시험에 대신 참가하는 것이다.

메드다이아비티스 연구팀은 참가자들의 몸에 자동으로 인슐린을 분비하는 장치를 넣고 식사와 인슐린 투약에 따른 저혈당 쇼크의 빈도를 확인했다. 정상인의 혈당 수치는 70~180mg/dl를 유지하는데, 당뇨병 환자의 경우 식사 후 인슐린을 과도하게 투약하면 혈당 수치가 50mg/dl까지 떨어지며 저혈당 쇼크가 일어난다. 실험결과에 따르면 자동 인슐린 분비 장치를 썼을 때 저혈당 쇼크 빈도는 83% 감소하는 것이 실제 사람과 가상 인간에서 확인됐다.

마크 팔머 메드다이아비티스 연구소장은 “이번에 개발한 디지털 트윈 시스템으로 앞으로 개발하는 당뇨병 신약과 의료기기를 테스트할 예정”이라며 “현재 키, 몸무게, 체형 등 신체조건이 다른 여러 명의 가상 인간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인간이 외골격 슈트 입는다

움직임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외골격 슈트를 개발하는 디지털 트윈 연구도 있다. 국립대만대 연구팀은 지난 14일 FDA로부터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 받고, 30명의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번 시험의 목적은 실제 사람의 근전도와 움직임 데이터를 바탕으로 움직임을 모사하는 가상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렇게 개발한 가상 인간을 활용해 외골격 슈트의 안전성을 판단하는 임상시험에 다시 나설 계획이다.

당뇨병 약인 메트포르민의 효과를 검증하거나 근력 훈련의 효과를 확인하는 등 디지털 트윈 기술을 이용한 임상시험도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디지털 트윈 기술이 도입되면서 임상시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가장 큰 진입 장벽으로 꼽히는 임상시험 참가자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 특히 임상시험에서는 실제 약과 가짜 약(위약)의 효과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해 많은 수의 참가자를 모집해야 하는데, 가상 인간을 활용하면 한 명에게서 실제 약과 위약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어 참가자 규모를 줄일 수 있다.

◇제도 마련도 속속

디지털 트윈으로 임상시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마련되고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지난 9월 AI기업 언런에서 개발한 디지털 트윈 ‘트윈RCT’에 인증을 부여하고 임상시험 규정을 발표했다. EMA에 따르면 트윈RCT를 신경계 질환에 관련된 임상시험에 도입하면 임상시험 참가자 규모를 35%까지 줄일 수 있다. EMA는 앞으로 디지털 트윈을 임상시험에 도입할 수 있는 분야를 늘려갈 계획이다.

찰스 피셔 언런 최고경영자(CEO)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임상시험에 활용하면 참가자 규모뿐 아니라 임상시험 기간도 6개월~1년 단축할 수 있다”며 “참가자 모집이 어렵고 신약 개발이 급한 희귀질환 연구에서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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