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정책 퇴행은 없다…미국 중간 선거 결과 분석
[ESG 리뷰]
지난 11월 8일 미국의 중간 선거가 치러졌다.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 관련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 개정 가능성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선거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미국 의회는 상원(Senate)과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 양원으로 구성된다. 상원과 하원 모두 법안을 발의할 수 있고 양원의 동의를 모두 얻어야 법안이 통과된다.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법안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다시 통과시킬 수 있다. 상원 의석은 각 주(state)당 2명씩 총 100석, 하원 의석은 인구수에 비례하며 전체 의석은 435석이다. 상원은 51석, 하원은 218석 이상을 얻은 당이 다수당을 차지한다.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겸하는데 상원 의석이 50석으로 동일할 경우 부통령이 있는 집권당이 다수당이 된다. 이번 선거 이전에는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50석(민주당 성향 무소속 포함)과 220석을 차지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 하원의원의 임기는 2년이다. 상원은 2년마다 전체 의석의 3분의 1이 재선출되기 때문에 이번 중간 선거에서는 하원 의석 전체와 상원 35석 그리고 39개 주지사 선거가 동치에 치러졌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상징색은 각각 파란색과 붉은색인데, 선거 이전 레드 웨이브(red wave), 즉 공화당의 압승을 예상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11월 22일 기준 상원은 민주당이 50석을 확보했고 하원은 공화당이 219석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결과 공화당이 민주당에서 하원 다수당을 빼앗아 왔지만 이번 선거를 민주당의 실질적 승리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간 선거는 4년제 대통령 임기의 중간에 치러지기 때문에 집권당의 무덤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실제 43번의 중간 선거에서 집권당이 이긴 선거는 단 3번뿐이었다. 이번 선거가 높은 인플레이션 와중에 치러졌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상원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하원 의석도 상당수 방어한 민주당이 이례적으로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팍스아메리카나, 즉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가 더욱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미국의 정치 권력 교체는 모든 영역에서 전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기후 변화 이슈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국제 사회의 기후 변화 대응 정책 방향과 속도는 미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국제 기후 협상은 미국의 정치 상황의 영향을 받아 왔다.
실제로 국제 기후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하는 교토의정서와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채택 및 발효 그리고 이행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의 영향력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먼저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를 살펴보자. 교토의정서 협상 당시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미국 의회는 ‘개발도상국에 구속력 있는 감축 목표를 부여하지 않는 협정에는 참여하지 말라’고 결의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토의정서를 채택했다. 하지만 이후 정권이 부시 행정부로 교체되며 미국은 끝내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고 미국이 빠진 교토의정서는 힘을 잃고 결국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교토의정서를 대체한 파리기후변화협약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파리협약 체결을 이끌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다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파리협약 재가입과 적극적인 기후 외교를 통해 각국의 탄소 중립 목표 수립을 이끌고 있다. 국제 기후 변화 정책 합의 및 이행이 미국의 정치 권력에 따라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국의 중간 선거 결과는 국제 기후 변화 무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이번 선거가 민주당의 승리 이전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참패로 불리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극단적 기후 변화 회의론자다. 2024년 대통령 선거 재출마를 선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국제 기후 정치는 또다시 격랑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중간 선거를 통해 나타난 미국의 민심은 차기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는 바이든 행정부의 현재 기후 정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상원과 하원을 민주당과 공화당이 양분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양원의 동의가 필요한 미국 의회는 당분간 교착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지금보다 과감한 기후 정책을 추진하기도 어렵겠지만 반대로 공화당이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을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마지막은 공화당의 차기 대권 주자의 지각변동이다.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라이벌로 불리는 로널드 디온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번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20%라는 압도적 차이로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원한 후보는 대거 낙선하면서 공화당 내 디샌티스 주지사에 대한 차기 대선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디샌티스 주지사 또한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규제에 반대하고 화석 연료 확대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디샌티스 주지사가 기후 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인 플로리다 주지사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초선 취임 후 최고과학책임자(CSO)를 임명하고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 복구 및 회복력 강화를 위한 적극적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에버글레이즈 습지 복원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등 친환경 정책으로 환경단체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기후 변화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적응이라는 2가지 큰 축으로 보면 디샌티스 주지사는 적어도 적응 정책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이 3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번 중간 선거를 통해 2024년 이후 국제 기후 정책이 과거와 같은 퇴행을 반복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분석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 금융회사도 현 기후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로 향후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으로 이번 선거 결과가 IRA에 미치는 영향을 간략히 짚어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에서의 기대와 달리 공화당이 양원을 장악한다고 해도 IRA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양원에서 3분의 2 이상이 아닐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차 보조금 문제는 IRA의 매우 작은 부분일 뿐이다. 또한 공화당도 민주당 못지않게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우호적이고 공화당의 기반이 되는 미국 중부와 남부는 재생에너지 지원의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공화당이 앞장서 법 개정에 나설 동기가 충분하지 않다. 선거 결과와 IRA는 처음부터 무관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기대보다는 정확한 현실과 분석에 입각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수석연구원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12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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