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CJ 이어 롯데까지…유통家 여성 CEO 전성시대
내부서 실무 능력 인정...직원들 기대감 커져
“ESG 공시 의무화되며 여성 임원 늘어날 것”
연말 유통기업 대표이사에 임명된 여성 최고경영자(CEO)들이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 내부 인재로 양성돼 대표이사직까지 올라갔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 유통업계 승진 인사의 키워드는 ‘여성’과 ‘내부 인재’다. 그간 5060 중장년층 남성 CEO가 대부분이었지만, 글로벌 추세에 따라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성별과 관계 없이 경영자로 등용했다.
이와 함께 외부 인사를 영입하며 타사의 노하우를 적용하던 것과 달리 내부에서부터 탄탄하게 능력을 검증 받아온 인사를 자리에 앉혔다.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이사는 지난달 LG그룹의 첫 번째 여성 사장으로 승진했다. 1986년 LG생활건강 공채로 입사한 그는 생활용품 마케터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헤어케어, 바디워시, 기저귀 등 생활용품 분야에서 취급 품목을 확장했고 25년 만에 생활용품 사업부장으로 선임됐다.
이후 2015년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화장품 사업부장을 맡아 ‘후’와 ‘오휘’ 등 럭셔리 화장품 부문을 키웠고, 음료 사업 부문에서 코카콜라·씨그램 등 브랜드를 성장시켰다. 18년간 그룹을 진두지휘했던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이 용퇴하며, 이 대표는 공채 입사 36년 만에 LG생활건강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CJ그룹이 지난 10월 깜짝 발탁한 이선정 CJ올리브영 대표이사도 내부 인사 출신이다. 이 대표는 1977년생으로 그룹 내 최연소 CEO이자 올리브영 최초의 여성 CEO다. 그는 15년간 상품기획자(MD)로 근무하고, 1년간 MD사업본부장을 거쳤다. 이후 올해 영업본부장을 거쳐 약 10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대표로 승진했다.
올리브영이 화장품 전문매장에서 헬스앤뷰티(H&B) 융합채널로 확장하고, 온오프라인 옴니채널 전환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이 대표가 역할을 했다는 내부 평가가 나왔다.
올리브영 내부에서는 올리브영 근무 기간이 길어 기업 이해도가 높고, 직접 상품 관리와 브랜드 관리 경험이 있는 만큼 기대가 크다는 분위기다.
안정은 11번가 대표이사는 지난 2018년 신설법인 출범 시기에 11번가에 합류해 서비스 총괄 기획과 운영을 담당했다. 11번가의 대표사업으로 꼽히는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와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라이브11′ 등을 총괄하며 SK그룹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올해 초에는 11번가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으며 11번가의 익일배송 서비스인 ‘슈팅배송’, 전자상거래 플랫폼 최초 마이데이터 서비스인 ‘머니한잔’ 등 신규 서비스 기획을 담당했다.
안 대표는 앞서 야후코리아, 네이버 서비스기획팀장, 쿠팡 PO(Product Owner) 실장을 거쳐 LF e서비스기획본부장을 역임한 전자상거래(e커머스) 서비스 기획 전문가로 11번가에서 4년간 근무하며 내실을 다졌다는 평가다.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롯데그룹도 지난 15일 정기 임원 인사에서 처음으로 외부 여성 임원을 계열사 대표로 영입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김혜주 롯데멤버스 대표가 주인공이다.
김 신임대표는 SAS코리아 등에서 데이터 및 고객관계관리(CRM) 컨설턴트로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SK마케팅컴퍼니에 입사해 마케팅R&D그룹장 경력을 쌓았고, 삼성전자에서 CRM 담당 파트장, KT 인공지능(AI) 사업 담당 상무로 근무했다.
롯데멤버스 합류 전에는 신한금융지주에서 빅데이터부문장(CBO)과 마이데이터유닛장 상무를 겸했다.
이외에 신임 여성 임원은 모두 내부 출신으로 6명이 임원직을 달았다. 정미혜 롯데제과 상무보, 채혜영 롯데칠성 상무보, 한지연 롯데백화점 상무보, 김지연 롯데홈쇼핑 상무보, 이정민 롯데건설 상무보, 윤영주 롯데에이엠씨 상무보 등이다. 유통 부문에서만 4명이 임명됐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기업분석 전문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353개 기업의 여성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초 기준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중은 6.3% 수준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기업의 전체 임원 1만4612명 중 여성은 915명에 불과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 조사 대상 29개국 중 한국은 10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유리천장지수는 남녀 고등교육 격차, 소득 격차, 노동 참여율, 고위직 비율, 육아휴직 현황 등을 종합해 평가한다.
한국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59%로 남성(79%)에 비해 낮고, 여성 중간관리자 비율은 15.6%로 OECD 평균의 절반에 그쳤다. 상장기업 이사회의 98%는 남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지난 8월부터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상장 기업은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할 수 없게 되면서 사실상 여성 이사가 포함되게끔 바뀌었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국내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가 의무화되면서 여성 임원도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ESG 공시를 앞두고 조직의 다양성을 위해 여성 임원을 확대하는 분위기”라며 “여전히 남성 임원이 대다수이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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