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날 버렸을까”…방황하던 소년을 품은 여성, 왜?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2. 12. 1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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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프레소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60] 영화 ‘자전거 탄 소년’

어떤 사람들은 메뉴가 너무 많은 음식점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고객이 빵 종류와 소스, 굽기 여부까지 고르는 샌드위치 집이나, 얼음부터 토핑과 당도까지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한 밀크티 가게에서 일종의 결정 장애를 경험하는 것이다.

‘취향 존중’에 높은 점수를 주는 여러 고객들이 이러한 음식점 방문을 늘리는 동안, 일부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앞에 피로함을 느낀다. 자신이 고른 조합이 어쩌면 최선의 선택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러한 결정 장애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보인다.

보육원 교사들로부터 도망치던 소년(오른쪽)은 병원에서 대기 중이던 사만다에게 매달린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써브웨이의 역설’이라고 부를 만한 이 현상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해서 인간의 만족도가 꼭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메뉴를 결정하는 단계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거나 고르고 난 후에도 자신의 선택지가 최선의 것이 아니었을 수 있음을 상상하며 괴로워한다.

벨기에 영화 감독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2011)은 좁은 선택지가 반드시 불행으로 연결되진 않는다는 점을 사유하는 작품이다. 오히려 인간은 가능성의 차단을 통해 더 행복해질 수도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소년은 본인을 버린 아버지(왼쪽)가 언젠가 자신을 다시 찾으러 올 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소년은 아버지가 일하는 식당으로 찾아가 도와주겠다고 자청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귀찮을 뿐이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아빠는 날 버린 게 아닐 거야” 미련 버리지 못하는 소년

이야기는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시릴 카툴(토마스 도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보육원에서 한 달만 지내면 다시 찾으러 오겠다고 약속했던 아빠는 어느새 연락이 닿지 않는다. 자신이 아끼던 자전거까지 사라지면서 소년은 아빠를 만나고 자전거도 찾아야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힌다.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땐 아빠가 아들을 버린 뒤 자전거까지 팔아버린 상황임이 명백하지만 소년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육원을 탈출해 부친을 찾아나서게 되는 이유다.

자전거를 탄 소년은 늘 질주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의 질주는 응답 받지 못한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소년은 아빠와 함께 살던 집 문을 두드리지만 이미 그는 거처를 옮긴 지 오래다. 소년은 자신을 잡으러 온 보육원 교사를 피해 병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한 여인(세실 드 프랑스)을 붙잡아 매달린다. 보육원 교사에게서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일단 눈앞에 보이는 사람에게 안긴 것이었으나, 그것은 여인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만다라는 이름의 이 여자는 아버지가 팔아버린 자전거를 되사서 소년에게 돌려줄 뿐만 아니라, 소년의 주말 위탁모 역할을 맡아 함께 시간을 보내주게 된다.
사만다는 왜 소년을 품었을까. 사만다조차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리얼리즘 거장인 다르덴 형제는 너무 분명하게 인과 관계가 드러나는 서사는 피한다. 사실 인생에는 인과 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이 많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소년이야 나야?” 묻는 남자친구에게 그녀는 “소년”이라고 대답했다

사만다는 소년의 의사를 존중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소년을 위해서 만남을 주선하고, 약속 장소에 같이 나가준다. 그러나 사만다는 소년의 부친이 그를 버리려고 이미 마음을 굳혔음을 확인한 뒤 아빠더러 그 뜻을 아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라고 요구한다. 아빠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고문이 소년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자전거 탄 소년’을 연출한 다르덴 형제는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고루 받아왔다. 사진은 제72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소년 아메드’의 한 장면. /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아버지의 마음을 확인한 소년은 자해하고, 사만다는 소년의 그런 울분조차 품는다. 이렇게 사만다의 삶에서 소년이 차지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며 사만다의 남자친구는 불만이 커진다. 남자친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게 그려진다. 사랑받지 못한 소년이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두 사람만의 공간과 시간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묻는다. “쟤야 나야?”. 사만다는 큰 고민도 없이 “시릴(소년의 이름)”이라고 대답하고, 그로써 연인 관계는 끝난다.
비행을 일삼는 한 남성이 소년에게 접근한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사랑 받지 못한 소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남자는 소년의 인정 욕구를 채워주면서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인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아빠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어” 소년은 사만다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했다

주인공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관객은 소년이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얻길 기대하게 된다. 남편도 아이도 없는 사만다가 소년을 왜 그토록 챙기는지 영화에선 뚜렷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사만다조차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년이 사만다에게 왜 자신을 받아들였냐고 물어볼 때 그녀 역시 “글쎄”라고 대답할 뿐이다.

소년과 사만다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애정이 가득하다. 소년이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찾길 바라는 관객의 기대는 오래 지나지 않아 깨진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이 영화에선 사만다가 어떤 여성인지에 대한 설명도 별로 없다. 미용사에 한때 남자친구가 있었던 여성이라는 것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다. 그저 그녀는 어떤 이유로 어느 날 병원에 있었고, 때마침 아빠를 찾아 방황하던 소년이 자신의 품에 뛰어들었을 때 일종의 이끌림을 느꼈다. 아마도 그날 느낀 소년의 부피감이 그녀 내면에 있는 빈 자리를 채웠는지 모른다. 소년으로서는 친부에게서 버림받는 불운을 겪었지만 자신을 별다른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위탁모를 만나는 행운을 갖게 된 셈이다.
소년은 비행을 일삼는 동네 청소년 무리의 우두머리 격인 남성에게 인정 받고 싶어한다. 소년은 아버지를 대체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하지만 소년은 부자 관계의 회복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며 관객의 기대를 깬다. 비행을 일삼는 동네 청소년 집단의 우두머리가 소년에게 관심을 가지며, 소년은 그의 마음에 들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인다. 남자 연장자로부터 남성성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소년은 결국 아버지를 대체해줄 남자를 찾고 있는 셈이다. 그 역시 보육원 출신이라는 우두머리 남성은 소년의 욕망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소년의 인정욕구를 채워주며 강도 계획에 소년을 끌어들인다. 소년은 사만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자에게 달려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팔에 칼을 휘두르고, 사만다는 마음을 깊이 찔린다.

소년의 표정은 늘 긴장돼 있다. 누구든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물어 뜯어버릴 듯한 그의 공격성은 사실 누구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였을 것이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뒤 … 소년은 비로소 여자에게 달려갔다

인생은 소년에게 두 번의 거절감을 더 안긴다. 소년은 강도에 성공하지만 자신의 얼굴을 노출시키는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다. 처벌 받을 것이 두려워진 우두머리 남성은 소년에게 자신을 아는 척도 하지 말라며 길가에 매정하게 버리고 떠난다. 소년은 곧 이어 훔친 돈을 아버지에게 가져가지만, 부친으로부터 담 너머로 던져지는 버려짐을 경험한다. 아버지는 강도를 저지른 아들의 장래보다는 공범으로 몰려 위험에 빠질 자신의 미래가 걱정됐던 것이다.

소년은 훔친 돈을 가지고 아빠에게 찾아간다. 공범으로 몰릴 것이 두려웠던 아빠는 아들을 담 너머로 밀어 넘긴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아줌마랑 계속 살고싶어요” 자신이 원하던 모든 사람에게서 버림 받은 소년이 사만다에게 달려가 고백한다. 사만다는 강도죄를 범한 소년이 겪어야 할 복잡한 법적 문제를 참을성 있게 해결해준다. 이후 자전거를 같이 타는 두 사람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하다. 사만다와 피크닉을 가서 샌드위치를 나눠먹는 소년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소년 같은’ 웃음을 보인다. 누구 하나 다가오면 물어버릴 듯 잔뜩 긴장한 채로 지냈던 소년은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사만다와 피크닉을 나온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무한한 가능성으로 확장하는 대신, 하나의 가능성을 풍성하게 하는 삶

이 서사는 관객에게 인간관계의 중요한 진실을 하나 얘기해준다. 여러 방향으로 인간관계를 확장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단 것이다. 영화에서 소년은 아버지와 비행 청소년에게 버려질 때 비참함을 느끼지만, 버려지기 전에도 불행하긴 마찬가지였다. 혹시 아버지가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달리는 그는 늘 불안했다. 자신을 선택할 리 없는 사람을 향해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응답받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뒤 소년은 사만다와의 관계에 집중한다. 따뜻한 사만다의 입김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혹시 모를 가능성 때문에 방황하는 일은 이제 없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만다에게 소년도 진심으로 사랑을 되돌려준다.

누군가에게서 달아나거나 누군가를 쫓아가기 위해 사용됐던 소년의 자전거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달리는 데 쓰인다. /사진 제공=티캐스트
이 결말은 어찌 보면 조금은 씁쓸하다. 사만다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년은 다른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뒤에야 자신에게 달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인생을 겪어왔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초연히 소년을 받아들인다. 인생의 여러 굴곡을 통해 사만다는 배웠는지 모른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집중하기 위해선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란 호기심의 가지가 적을수록 좋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인생에 소년이 불쑥 들어왔을 때, 사만다는 소년이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지 않았다. 그저 그 관계를 자신에게 지금 허락된 소중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다. 백 명의 아이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대신, 소년과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을 쌓는 데 힘을 쏟았다. 이건 인간관계를 넘어 인생 전반으로 확장할 수 있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행복해지기 위해선 다양한 가능성으로 확장하는 데 몰두하는 게 아닌 내 앞에 있는 가능성을 더욱 풍성한 이야기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자전거 탄 소년’ 포스터. /사진 제공=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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