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M 민낯➋] 환승 딜레마와 수상택시 그림자
정류장까지 걷고 또 걷고…
환승 시간 2배라면 살아남을까
수상택시 실패 원인 살펴봐야
# 구글, 아마존, 제너럴모터스(GM), 보잉. 분야를 막론한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도심항공교통(UAM) 산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UAM이 미래 교통ㆍ운송시장의 패러다임을 지배할 것이란 예상에서입니다.
# 기업들은 하늘을 나는 에어택시가 미래의 출퇴근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죠. 하지만 에어택시가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일반 대중교통보다 더 효율적인 이동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참고: 이 기사는 더스쿠프 매거진 507호 기사를 근거로 재작성했습니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201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 보잉(Boeing)과 손잡고 스타트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도심항공교통(UAM)의 꽃이라 불리는 에어택시 상용화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였죠.
페이지는 에어택시를 통해 이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에게 UAM은 단순한 이동수단일 뿐만 아니라 기존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을 수 있는 혁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페이지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듯합니다. 페이지는 그동안 UAM 산업에 뛰어든 여러 스타트업을 후원해왔습니다. 대부분은 에어택시의 기체(플라잉카)를 제작하는 회사들이었습니다. 플라잉카 개발의 선구자 격으로 꼽히는 미국의 키티호크(Kitty Hawk)도 그중 하나였죠.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 9월입니다. 2010년 창립한 키티호크는 12년 만에 폐업을 결정했습니다. 키티호크는 그간 111대의 비행선을 제작하고 2만5000회의 시험 비행을 했지만, 2020년 플라잉카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했습니다.
업계에선 키티호크가 자신들의 기술력은 물론 플라잉카의 경제성에도 한계를 느낀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더 이상의 투자를 해봤자 플라잉카 시장에선 수익성을 확보하기엔 어렵다고 판단한 셈이죠.
물론 페이지가 보잉과 함께 설립한 플라잉카 제작업체 위스크(Wisk)의 기세는 여전합니다. 지난 10월 위스크는 "2035년까지 에어택시 5000대를 띄우겠다"고 공언했죠.
하지만 페이지가 꿈꾸는 혁신이 현실이 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에어택시가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르고,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시장을 키워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자,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에어택시의 스피드와 효율성은 기존의 교통수단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일단 스피드에선 '합격점'으로 보입니다. 팩트체크 첫번째편(통권 524호)에서 살펴봤듯 에어택시로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5호선 여의도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4분입니다. 택시보다 19분, 지하철보다는 15분 빠른 속도입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에어택시의 속도가 월등히 빠른 만큼 효율성도 일반 대중교통보다 뛰어날 것 같지만, 따져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에어택시가 아무리 빠르게 비행해도 경우에 따라선 기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이동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바로 '환승 동선' 때문입니다.
환승 동선은 처음 이용한 교통수단에서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는 데 필요한 이동거리를 뜻합니다.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걸어야 하는 거리,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거리 모두 환승 동선에 해당하죠.
에어택시가 일반 대중교통보다 뛰어난 효율성을 확보하려면 환승 동선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승차장에서 하차장까지 걸리는 '순수 이동시간(이하 순이동시간)'이 짧다고 해도, 환승 동선이 길면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이를테면 집을 나서 최종 목적지 입구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총 이동시간'에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상택시 실패로 돌아간 이유
실제로 환승 동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실패로 돌아간 교통수단도 있습니다. 2007년 10월 서울시에서 도입했던 한강 수상택시입니다. 육로와 달리 수로水路는 공간의 제한도, '신호대기' 같은 제약도 없습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수상택시는 출퇴근길 교통체증을 줄이는 대안적 교통수단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습니다.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수상택시 서비스를 시작한 첫해(2007년) 일평균 이용자 수는 73명에 머물렀습니다. 2014년 17명까지 쪼그라든 일평균 이용자 수는 2016년 19명→2018년 16명→2020년 6명을 기록하며 결국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죠.
그나마 관광이 아닌 출퇴근 목적으로 수상택시에 탑승한 이용객은 전체의 2~3%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형편없는 성적표입니다(2016~20 20년 기준ㆍ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수상택시가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승ㆍ하차장이 집 근처나 다른 대중교통 시설과 떨어져 있어 환승 동선이 길어진 탓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여의도 집(광장아파트)에서 잠실 회사(롯데월드타워)로 통근하는 직장인의 교통수단별(에어택시ㆍ지하철) 이동시간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참고: 수상택시의 평균 운행 속도는 30~40㎞/h입니다. 이번 분석에선 최대 속도인 40㎞/h로 운행한다고 가정해 이동시간을 계산했습니다. 지하철은 2021년 서울시 기준 평균 표정속도인 33.7㎞/h를, 도보 환승은 성인 평균 속도인 4㎞/h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계산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입니다. 일일 지하철 운행 현황, 각자 선호하는 이동경로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실제 결과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우선 지하철이 여의도역에서 잠실역까지 19㎞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3분입니다. 수상택시의 경우, 승차장(여의나루수상택시승강장)부터 하차장(잠실수상관광콜택시승강장)까지 18㎞를 이동하는 데 27분이 소요됩니다. 정류장을 출발ㆍ도착 기준으로 삼은 순이동시간에선 수상택시가 지하철보다 6분 더 빠릅니다.
이제 환승 동선을 살펴보겠습니다. 광장아파트에서 롯데월드타워까지 지하철을 탈 경우, 세개의 환승구간(❶광장아파트~9호선 여의도역ㆍ297m→❷여의도역 9호선~8호선 환승구간ㆍ288m→❸8호선 잠실역~롯데월드타워ㆍ20m)을 도보로 통과해야 하는데, 소요시간은 9분입니다. 순이동시간(33분)에 환승 시간을 포함하면, 집에서 회사까지 총 이동시간은 42분입니다.
그렇다면 수상택시는 어떨까요. 우선 환승구간부터 두배로 늘어납니다. ❶광장아파트~5호선 여의도역(297m)→❷5호선 여의도역~여의나루역(926mㆍ지하철 환승)→❸여의나루역~여의나루수상택시승강장(321m)→❹잠실수상관광콜택시승강장~2호선 잠실새내역(959m)→❺2호선 잠실새내역~잠실역(1㎞ㆍ지하철 환승)→❻잠실역~롯데월드타워(20m) 순입니다.
여섯개의 환승구간을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6분입니다(도보 환승❶❸❹❻ 23분ㆍ지하철 환승❷❺ 3분). 순이동시간(27분)에 환승 시간까지 감안하면 총 이동시간은 53분입니다. 같은 코스(광장아파트~롯데월드타워)라도 '도어 투 도어' 기준으론 수상택시가 지하철보다 되레 11분 더 느립니다. 결과적으론 수상택시의 효율성이 지하철에 비해 떨어지는 셈이죠. 수상택시가 혁신적인 교통수단이 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에어택시 대중화 성공하려면
자!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UAM의 대표 이동수단인 에어택시가 수상택시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지하철ㆍ버스 등 일반 대중교통 못지않은 '효율적인' 환승 동선을 설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 길이 요원해 보입니다. 에어택시 정류장은 지하철 '역세권'과 정반대로 인구가 밀집한 주거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혹시 모를 충돌이나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도심 바깥에 정류장을 마련할 수도 없습니다. 접근성이 낮을수록 에어택시를 이용하려는 수요도 줄어들 테니까요. 에어택시 정류장을 '아무데나' 만들 순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편에선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추진 중인 도심 내 '복합환승센터'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교통허브 역할을 하는 복합환승센터에 에어택시 승강장을 설치하면 2~3분 이내 지하철ㆍ버스ㆍ택시 등 다른 교통수단으로 환승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일견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이 역시 갈길이 멉니다. 지역별 교통거점에 들어설 예정인 20개의 복합환승센터 중 에어택시 이착륙 시설을 포함한 곳은 단 두곳(용산ㆍ양재)뿐이기 때문입니다(2022 7월 기준ㆍ소병훈 의원실).
[※참고: 다행히 정부도 에어택시 활성화를 위해선 환승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월 4일 UAM 이착륙장을 포함한 '미래형환승센터(MaaS Station)'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죠.]
만약 효율적인 환승 체계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에어택시는 과거 수상택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에어택시는 수상택시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다음호에 계속>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