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에 그림 그려 태운 뒤 재가 되는 과정 들여다봐요"…아룬나논차이 국제갤러리 개인전

박은희 2022. 12. 1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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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근간을 재로 구성한 이유는 우리 이전에도 존재하고 우리 이후에도 존재할, 시간의 차원을 벗어난 물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태국 출신의 현대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36)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에서 진행한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 기자간담회에서 재와 흙으로 다져진 바닥의 전시장을 소개하며 이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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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에서 진행한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프로필 이미지.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의 근간을 재로 구성한 이유는 우리 이전에도 존재하고 우리 이후에도 존재할, 시간의 차원을 벗어난 물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태국 출신의 현대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36)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에서 진행한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 기자간담회에서 재와 흙으로 다져진 바닥의 전시장을 소개하며 이 같이 말했다. 벽면은 대표 연작 '역사 회화'와 '빈 공간(하늘 회화)' 작품 10점으로 구성했다.

영상, 퍼포먼스에서 회화, 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아룬나논차이는 다양한 형식을 정교하게 엮어내며 개인과 사회, 삶과 죽음, 다양한 신념 체계를 아우르는 존재와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시해왔다.

2012년에 시작된 '역사 회화' 연작은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군으로, 청바지를 주요 재료로 삼는다. 서양 중심의 세계화와 노동의 역사에 대한 고찰의 하나로 청바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재료를 표백한 후 그 위에 다층의 이미지를 쌓아 올린다.

아룬나논차이는 표백한 데님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데님은 서구의 글로벌화와 우리의 관계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서구의 아이덴티티를 잘 나타내는 대표적 아이콘이자 가장 인기 있는 소재"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신분 상승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비서구권 작가로서 서구권에서 인정받는 그런 방식의 활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료로서 가치가 높지 않고 평범하기 때문에 제가 느끼기엔 영적이기도 하다"며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몸에 가장 가깝고 피부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신체를 각인하거나 땅의 텍스처를 고스란히 옮긴 이미지들은 이후 불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 불이 연소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회화에 불을 붙인 후 문제의 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불을 끈 후에는 불타고 남은 회화의 파편, 그 화재의 결과인 재, 그리고 불타는 과정을 기록한 사진이 한데 결합한다. 최종 결과인 작품은 스스로의 생성 과정을 생생하게 품은 양상을 띠게 된다.

'매체(medium)'라는 미술 용어와 '영매'라는 초자연적 대상의 관계성에 관심을 갖던 아룬나논차이는 영혼의 존재와 그들이 우리의 정치 시스템 및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오래 탐구해왔다. 이 맥락에서 불과 재라는 요소는 그는 자신의 사적 경험, 주변의 사회적 사건들을 고찰하고 서술하는 방식에 주요한 재료가 돼왔다.

아룬나논차이는 "모든 것을 더 이상 환원 불가능한 상태로 태워버리는 불과 그 결과물인 재를 둘러싼 이 여정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창조와 파멸의 우주적 순환구조에 대해 조망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태국 방콕에서 태어난 아룬나논차이는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방콕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스톡홀름 현대 미술관(2022), 서울 아트선재센터(2022),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2022), 쿤스트할 트론헤임(2021), 포르토 세랄베스 현대 미술관(2020), 밀라노 스파치오 마이오키(2019), 헬싱키 키아스마 현대 미술관(2017), 볼차노 무세이온 미술관(2016), 파리 팔레 드 도쿄(2015), 뉴욕 모마 PS1(2014) 등이 있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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