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34분, 적막한 이태원에 울려퍼진 음성…“압사당할 것 같아요”
“압사당할 것 같아요.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태원 참사’ 발생 49일째인 지난 16일 오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당일 첫 112신고 시간인 6시34분에 맞춰 30초간 묵념이 시작됐다. 이후 최초 신고자의 음성이 이태원에 울려 퍼지자 일제히 시민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기저기 흐느끼는 울음소리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날 이태원 참사 49재를 맞아 159명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이태원역 인근에선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주관으로 대규모 추모제가 진행됐다.
추모제에는 동행한 친인척 포함 약 300명이 넘는 유가족이 참석했다. 영하의 한파에도 유가족뿐만 아니라 추모를 위해 발걸음한 시민들이 이태원로 4개 차도와 양옆 인도를 가득 채웠다. 이들은 “대통령은 사과하라”, “진상을 규명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손에는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고 쓰인 팻말이나 촛불이 들렸다.
“사랑하는 ○○야, 오늘도 엄마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너의 환영을 본다.”
추모제 중간 무대의 대형 스크린에 환하게 웃는 희생자들의 생전 사진과 유족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뜨자 유가족은 통곡하기 시작했다. 먼저 가버린 자식, 부모, 친구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울부짖음이 이태원 거리를 메웠다.
추모제에 참석한 유족들은 성역 없는 진상 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배우였던 희생자 고(故) 이지한씨의 부친인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아직도 하지 못한 아들의 사망신고는 아마도 영원히 하지 못할 것 같다”며 “시체 검안서에는 사망일시 미상, 사망장소 도로, 사망종류 기타로 아직도 우리의 자식들이 왜, 어떻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는지 정부는 아직도 말해주고 있지 않고 있다”고 외쳤다.
이어 “누구는 밥 먹으러 갔다가, 회의하고 나오다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오다가, 친척집에 왔다가 그 골목으로 그냥 지나갔을 뿐인데 왜 죽음으로 돌아왔는지 국가는 설명하고 있지 않는다”며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이태원을 찾을 것이라 예상된 상황에서 어쩌면 4시간 전이 아닌 10월28일,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미리 대비할 수 있었기에, 다 구할 수 있었기에, 단 한 명도 죽지 않을 수 있었기에 우리의 분노는 치밀어 오른다”고도 했다.
195개 종교·재난안전산재참사·인권·노동·민중·시민사회 단체들로 구성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표자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서명운동에 많은 시민들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국가책임 인정하고 대통령이 공식 사과할 것 ▲피해자의 참여 속에 성역없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 ▲이태원 참사 기억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공간을 마련할 것 ▲피해자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지원 등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 ▲2차 가해에 대한 적극적인 방지대책을 마련할 것 ▲재발 방지 및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할 것 등 6개 요구사항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참석했다.
유족들은 추모제 종료 직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까지 행진을 시도했으나 녹사평역 인근에서 경찰에 가로막혀 한때 충돌이 일기도 했다. 경찰의 해산 방송 끝에 유족 대표만 대통령실 행정관에 국가 책임 인정과 대통령 공식 사과 등을 담은 요구안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한편 이날 시민추모제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 13곳에서 진행됐다. 2차 시민추모제는 오는 30일 열릴 예정이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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