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서평생활] 성우와 아나운서들은 왜 '낭독 전도사'가 됐을까?
공감 낭독자/ 북텔러리스트 지음/ 샨티 펴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게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실제 경험해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경우는 '백견불여일문(百見不如一聞)', 백번 보는 게 한번 듣는 것만 못하다.
'낭독 공연'에 대한 이야기다. 삼삼오오 모여 시 낭송을 하는 사람들이 아나라면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게 낯선 분위기에서 책 낭독이란 장르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KBS 성우들을 중심으로 경인방송 아나운서 등 이른바 프로들이 모인데다 전문 연출가까지 있는 '북텔러리스트(북텔러)' 구성원들이 낭독에 대한 진심을 담은 책 '공감낭독자'를 출간했다.
책 낭독을 듣는 공연이 있다고 하면 첫 반응은 '책 읽는 걸 듣기 위해 공연장까지 가야하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다. 대체 뭐가 좋을지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기 어려운 성격의 공연이라서다.
실제 낭독공연의 모습은 이렇다. 북텔러 공연팀이 무대에 마이크 하나 들고 맨 무대에 서는 것이 우리가 보는 전부다. 이들이 허공에 대고 책을 읽고 청중들은 이를 듣는다. 놀라운 건 무대와 객석 사이엔 허공에 던진 말밖에 없는데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혹은 그 보다 현실감있게 이야기가 그려진다. 청자마다 다르게 그렸을 그 이미지와 스토리 안에 각각 빨려 들어간다.
낭독공연이 끝나고,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걸 깨닫고 한참 생각해봤다. 이 몰입감의 이유는 무얼까. 학교 수업시간이든, 아니면 그보다 더 작은 규모의 모임에서든, 남들 앞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약간의 긴장감이 생긴다. 이는 듣는 이들에게도 묘하게 전달되고, 읽는 사람의 목소리 떨림이나 숨소리까지 함께 전해진다. 그 긴장감이 몰입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여기에 시각이 배제된 청각이 집중력을 높여준다.
공연을 '듣고' 나면 북텔러 공연팀 구성원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대체 이들은 어쩌다 낭독을 공연하기 시작했고, 왜 몇 년씩 낭독을 공연하고 있는지. 이 책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성우니까, 아나운서니까 낭독에 자신이 있고 공연에 어울렸을 거란 선입견이 철저하게 깨졌다는 부분이다.
단순히 또박또박 정확히 읽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의 대사라면 그의 감정과 캐릭터, 해설 부분이라면 해당 문장의 분위기까지 온전히 전달하는데 전문 방송인들의 정제된 말투는 꼭 적절하진 않았다. 북텔러 연출가의 역할은 딱딱한 읽기를 즐거운 공연으로 바꿔내는 일이다. 연출가 이진숙의 훈련(?)을 받고 나면 단순히 글자 읽기를 뛰어넘어 “소리내는 법부터 다시 배워(106쪽)” 배우 아닌 배우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는 하나의 장르가 탄생했다.
그렇다고 낭독이 전문가들의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거기에 있지 않다. '낭독'은 잘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냥 공감하고 즐기는 거다. 그것은 저절로 즐거워지는 순간이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이 우리 북텔러리스트의 낭독 과정들을 보면서 '낭독은 어렵고, 고통스럽고,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오해할까봐 노파심에 미리 하는 말이다.(12쪽)”
'공감낭독자'는 '낭독 전도사'의 역할을 한다. 낭독은 책을 가장 꼼꼼하게 읽는 방법, 어떤 의미에선 가장 느리지만 확실하게 읽는 방법이다. 책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중요한 창이라면 낭독은 세상을 충분히, 온몸으로 만나는 방식이다. “조금 서툴고 삐걱거려도 한없이 따뜻하고 근사한 낭독을 하고 싶다(200쪽)”는 인간적인 목표를 위해 이들은 “책을 허투루 보는 태도를 지워갔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프로필부터 찾아 읽고, 책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와 그 이면에 더 깊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의도를 찾으려 행간까지 꼼꼼히(295쪽)” 읽기 시작했다.
“책의 화자가 되기 위해 온몸으로 말을 했더니 책 속 세계가 온몸으로 경험되었다. 말을 할 때는 물론이고 듣고 있을 때조차 그랬다. (중략) 낭독은 '간접 경험'이 아닌 '직접 경험'을 하게 해준다(13쪽)”
감정을 절제하며 텍스트의 정확한 발음을 강조하는 뉴스 읽기나 내레이션과 달리 낭독은 충분히 공감하며, 연결이 가져다주는 치유를 경험하게 한다. 이에 북텔러 구성원들에겐 낭독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일은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다. 이에 “때로 '나만의 방'으로 데려가 나를 쉬게(201쪽)”하기도 하고 책을 읽고 “먼저 나를 설득하는 일(263쪽)”이기도 하다. 그렇게 책의 화자나 책 속 인물과 공감한 뒤의 낭독은 “이야기 속을 독자와 함께 걷는(296쪽)” 작업이 된다.
책 전반에서 '잘 읽기'보다는 '공감과 치유'에 초점을 뒀지만 그럼에도 낭독을 잘하기 위한 방법이 궁금하기 마련이다. 연출가 이진숙이 전하는 '낭독의 맛을 더하는 꿀팁'도 책에 담았다. 처음에 어떤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지, 낭독을 시작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읽다가 자꾸 틀리는 경우와 발음이나 목소리를 좋아지게 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 재밌게 읽고 싶은 방법, 장르별 책 낭독 방법 등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다시 한번 강조할 수밖에 없지만,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저자들이 아무리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낭독공연을 실제 들어보지 않으면 이 모든 말이 확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이 '낭독'이라는 새로운 예술로 가는 통로이길 기대한다.
[관련기사 : 책을 보는게 아니라 경험하게 해주는 '북텔러'의 세계]
[관련기사 : 당신은 책을 소리내어 읽고 운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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