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야심찬 미래차 비전, 한국은 매력적 ‘형제국’
세계는 지금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2002년 6월29일 한·일 월드컵 3위 결정전. 우리 응원단이 상대 팀인 튀르키예(당시 터키)의 대형 국기를 펼치던 모습은 많은 튀르키예 사람에게 아직도 감동과 여운으로 남아 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어깨동무하며 우정을 나누는 양국 선수들 모습이 선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인연으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들, 한국인을 좋아하고 진심으로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튀르키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튀르키예의 전신은 20세기 초까지 유럽 동남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통치하면서 동서양을 융합하는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오스만제국이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의 이스탄불)를 점령하면서 세계사 흐름을 바꾼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흑해와 지중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동서 무역의 중심지이면서 기독교 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도시였기 때문에 서구 사회에 던진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런 역사와 문화에 대한 튀르키예 사람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그런데 역사는 역설적이기도 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은 서구 상인들에게 새 교역로를 찾는 대항해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 됐다. 이후 오스만제국의 성장과 위협은 서구를 근대사회로 변화시키는 자극제가 된다.
튀르키예는 광활한 영토와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농업과 관광산업이 발달했다. 약 8500만 명의 내수시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튀르크 경제권 등 거대시장과 인접했다. 1996년 1월 유럽연합(EU)과 관세동맹을 체결하면서 수출입 제도 전반을 EU 규정에 맞췄다.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관세·물류 측면에서 EU와의 교역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중동·북아프리카 주요국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임금수준은 유럽보다 낮지만 노동력은 우수해 제조업 발달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
실제 튀르키예는 자동차·전자·철강 등 완성품 제조 중심의 산업구조를 잘 갖춰 제조업 생산량의 60% 이상을 수출한다. 백색가전은 아르첼리크·베스텔 등 자국 브랜드가 내수시장의 상위권을 차지하며, 생산량의 75% 이상을 수출한다. 방위산업에서도 자국산 장갑차, 드론, 전차 등을 수출한다. 포드·르노·현대 등 14개 완성차 기업과 1100여 개 부품공급업체가 연간 150만 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이 중에서 80% 이상을 EU 등지로 수출한다.
물론 튀르키예의 산업은 핵심기술과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이는 500억달러가 넘는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으로도 꼽힌다. 튀르키예 정부가 기존 산업의 고도화, 미래 전략산업 육성, 중간재 국산화를 국가산업정책의 근간으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다.
EU 기준 탄소중립 계획 수립
튀르키예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생산기지 또는 유럽의 자동차 공장이라고 불리지만 자국 승용차 브랜드를 보유하지 못했다. 전기자동차 등 미래차 보급률도 높지 않다. 인구 1600만 명에 이르는 튀르키예 제1의 도시 이스탄불에서도 전기차는 흔히 볼 수 없다. 대형 쇼핑몰 주차장에서나 전기차 충전시설을 볼 수 있다.
최근 튀르키예에 변화가 감지되는데 그 중심에 토그(Togg)가 있다. 튀르키예는 1960년대에 첫 자국 브랜드 승용차를 개발하다가 중단한 아픈 경험이 있다. 자국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튀르키예의 오랜 염원은 2023년 최초의 승용차 토그 양산으로 실현되리라고 기대한다. 토그는 2018년 6월 자국의 대표급 기업들과 증권거래소가 합작해 설립한 컨소시엄 기업이다. 현 튀르키예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자국 브랜드 자동차 개발 프로젝트이며, 국산 부품 사용 비율 85%를 목표로 한다.
2019년 토그의 프로토타입(시제품) 공개에 참석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60년 묵은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토그 자동차의 첫 사전 주문 손님이 되겠다”고 했다. 튀르키예 정부와 국민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위주의 산업구조를 탈피하고 자국 모빌리티 산업 육성을 위해 토그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토그는 2020년 7월 부르사 지역에 첫 모델인 C-SUV(전기차) 공장 건설에 착수해, 2023년 3월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2030년까지 세단, 왜건, 컨버터블, 쿠페 등을 차례로 출시해 연간 100만 대를 생산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튀르키예 산업기술부도 2022년 7월 전기차 기술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정책 추진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22년 6월, 27개 EU 회원국이 기후변화에 관한 포괄적 정책에 합의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기로 한 바로 직후의 일이다. EU는 터키의 최대 교역국이다. 따라서 튀르키예는 중장기적으로 유럽의 탄소중립 기조와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미 2023 기후변화행복전략, 2050 기후변화전략 등을 통해 산업 전반의 친환경화와 국가적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는 중장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전기차 기술 로드맵은 앞선 정책과 방향을 같이하면서 부문별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시기별 세부 목표를 수립한 것이 특징이다.
로드맵에 따르면 국가적인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①수출 증대와 국산화 ②기술과 혁신 ③인적자원과 인프라 부문으로 나눠 2030년까지 추진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수출 증대와 국산화 부문에서는 국가 총수출에서 자동차 수출 비중을 현재 약 17% 수준에서 20%까지 높이고, 2030년까지 상용차 수출 세계 5위권 진입 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기술과 혁신 부문에서는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율을 35%까지 높이고, 전기차 250만 대를 보급하기로 했다. 인적자원과 인프라 부문에서도 2030년까지 공공 전기차 충전기 25만 대 설치, 배터리 생산센터 설립 등을 중장기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기별로 단계적 목표치를 제시한다. 전기차 판매 비율은 2023년 7.5%, 2025년 10%, 2030년 35%, 전기차 보급은 2023년 11만 대, 2025년 40만 대, 2030년 250만 대, 공공 전기차 충전기는 2023년까지 1만8천 대, 2025년 5만3천 대, 2030년 25만1천 대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로드맵은 전기차 수요 확대를 위해 파격적인 세제 감면과 정부기관의 전기차 사용 의무화도 포함하고 있다. 일반 차량의 특별소비세는 차량 가격의 최소 45%에서 최대 220%인데, 전기차 특별소비세는 160㎾ 이하 최대 10%로 파격 인하했다. 전기차 충전소 설치 관련 법안 도입, 대중교통에서 전기차 사용 확대 등 미래형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매력적인 동반자
미래차로의 전환은 단순히 차량의 전동화(Electrification)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이동 수단’에서 ‘생활공간’이 되어 생활양식을 통째로 바꾸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차세대 미래차 산업의 핵심은 전기·수소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이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센서, 카메라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기술(IT) 부품, 차량용 운영체제(OS),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정보시스템) 플랫폼 등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소프트웨어, 반도체, 배터리, 통신은 기존 자동차산업의 핵심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내연기관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산업 생태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미래차 산업은 기존 완성차·부품 업계뿐만 아니라 기계·전자·소프트웨어·정보통신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각국 기업들이 경계를 허물고 전략적 제휴와 공동 연구개발, 표준화 등에서 경쟁과 협력이 요구된다.
미래차 산업은 우리가 잘하고 또 잘할 수 있는 분야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리튬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하고, 수소차를 양산하고, 5세대(5G) 이동통신을 상용화한 것이 우리 기업들이다. 미래차의 핵심기술인 배터리, 반도체, IT 분야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30년 미래차 경쟁력 1등 국가 도약’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2030년까지 전기·수소차 국내 신차 판매 비중 33%, 세계시장 점유율 10%를 목표로 정했다. 정부는 미래차 부품·소재 기술 분야에 투자를 확대해 우리 기업의 혁신을 지원하고, 서로 다른 업종과 대·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미래차 시장의 규칙은 축구와 다르다. 산업 간 경계도 없지만 반드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할 필요는 없다. 경쟁이 필연적이지만 협력도 허용된다. 반도체, 통신, 배터리, 소프트웨어 개발, 데이터 수집과 분석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우리 기업들은 내연기관 중심에서 미래차 산업 생태계로 전환하는 튀르키예 기업들의 매력적인 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다. 형제의 나라 한국과 튀르키예의 미래 동반자적 협력과 발전을 응원한다.
이도형 KOTRA 이스탄불무역관 차장 dhlee@kotra.or.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주가조작 돈댄 공범 3년 구형, 김건희 유죄 땐 윤 대통령에 불똥 [논썰]
- 앤절리나 졸리, 유엔에 환멸 느꼈나?…“난민 특사 그만두겠다”
- 외국인들이 한식 잘 먹는다고?…익은 동치미 맛은 모를 거다
- 푸틴·시진핑에 손내민 빈 살만…사우디는 왜 미국과 거리두나
- “내 이름을 써도 괜찮아요”…‘미투’ 물결이 시작됐다
- 금강송도 말라간다…죽음 내몰리는 백두대간 침엽수
- “돈 벌면 무죄”라는 진양철과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판결
- 충남·호남·제주 대설주의보에 한파까지…내일 아침 더 춥다
- 스웨덴, 동물원 탈출 침팬지 사살…“마취해 생포했어야” 논란
- “파업 업무방해죄 적용, 메스 댄 의사를 상해죄로 처벌하는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