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은퇴 후 출판사 차리고 삼성 다룬 소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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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경래 첫 장편소설 '삼성동 하우스' 출간
KBS·뉴스타파 22년 "기자는 안 맞는 옷이었다"
퇴사 밝히고 암 판정에 "진짜 새 도전에 나설 때"
'이건희 동영상' 보도 배경인 '삼성동 하우스'
"기자들의 수많은 이야기, 다양한 콘텐츠 알려야"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작가로 전업한 김경래 전 뉴스타파 기자(49)가 장편 소설 '삼성동 하우스'를 펴냈다. 지난 8월 뉴스타파를 퇴사하며 기자 생활 22년에 마침표를 찍은 그는 최근 출판사 '농담과진담'을 차렸다. 기자에서 '작가'를 꿈꾸는 출판사 대표가 됐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만난 김 대표는 “기자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전업 작가에 대한 꿈”이라며 “아주 매혹적인 픽션을 써보고 싶었다. 동시에 여러 일을 못하는 성격 탓에 작가라는 꿈을 이루려면 기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뉴스타파 동료들은 그의 퇴사를 끈질기게 만류했다. KBS 기자 시절부터 그와 함께 취재해온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김경래 기자가 처음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믿지 않았다”며 “버디(buddy·단짝)라고 할 정도로 오랜 시간 취재를 같이 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이 말렸다. 그러나 김 기자 의사가 너무 확고해 더는 붙잡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지난 여름 건강검진을 통해 확인하게 된 '암 판정'은 전업에 대한 마음을 굳힌 계기였다. 신장 일부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은 그는 다행히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아무래도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이 있잖아요? 그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오진 못했어요. 내가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고. 그래도 겸사겸사 운동하면서 회복 중이에요. 뉴스타파에 퇴사 의사를 밝힌 건 암 판정 전이지만 이참에 정말 새로운 일을 해보자, 내 생활 방식을 180도 바꿔보자 결심했죠.”
김 대표는 2001년 KBS 공채 27기로 입사해 '미디어 포커스' 팀, 네트워크부, 경제부 등을 거쳤다. 신문기자를 꿈꾸던 그에게 비효율적인 방송 제작 문법이 맞춤옷은 아니었다. 하지만 권력 감시에 있어 성역 없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포커스'를 제작하며 좋은 보도의 필요성을 비로소 알게 됐다.
노골적으로 방송장악 야욕을 드러낸 이명박 정부 시절, KBS 언론인들의 공정방송 파업 앞선에서 '파업뉴스'를 제작하던 그가 2013년 8월 KBS에 사표를 던지고 뉴스타파에 새 둥지를 튼 일이 그리 놀랍지 않았던 이유다. 뉴스타파에서도 'MB의 유산 4대강', '원전묵시록', '삼성 이건희 성매매' 등의 특종을 남겼다.
굵직한 취재 성과에도 김 대표는 “나는 사실 기자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취재를 잘하는, 천상기자인 동료들도 많을 뿐더러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면이 있다. 20년의 기자 생활이 벅차고 힘에 겨웠던 이유”라며 “물론 그런 허명과 껍데기를 던지고 회사를 뛰쳐나오는 게 쉽진 않았지만, 이미 난 이야기 쓰는 것에 바람이 난 상태”라며 미소를 띠었다. 향후 5년 안에 3~4권의 소설을 써보고 출판하며 '생활'이 가능한지 고민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연봉 3000만 원의 전업 작가가 되는 것, 그의 '원대한 꿈'이다.
김 대표의 첫 장편소설 '삼성동 하우스'는 2016년 7월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배경으로 한 픽션이다. 이 회장의 성매매 의심 동영상은 여러 언론사에 흘러 들어갔지만 이를 취재하여 결과물로 만든 언론사는 뉴스타파뿐이었다.
“영상이 촬영된 시점은 2011~2013년이었는데 뉴스타파 보도 전에도 여타 언론사들에 영상이 넘어간 것으로 알아요. 우리도 오랜 시간 보도해야 하느냐 마느냐, 보도하는 것이 기자의 직업윤리에 부합하느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느냐 등을 놓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취재했죠. 그 과정에서 느낀 건 기사 가치는 일단 취재를 해보고 판단하면 될 문제라는 거죠. 그러나 영상을 입수한 여타 언론들은 취재 자체를 하지 않고 '아이템 킬'이라는 판단부터 한 거죠. 소설에도 이런 고민을 다뤘어요.”
대다수 언론은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에 삼성그룹이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자금 장소를 얼만큼 동원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대신 '이건희 동영상'을 촬영하고 돈을 요구한 일당들의 형사 재판과 실형 선고 등은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했다. 김 대표는 “불법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삼성 돈을 뜯으려 한 일당들의 범죄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면서도 “그런데 성매매 알선 혐의와 관련해 이 회장 측근들은 수사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성매매 혐의에 관해서도 삼성은 법망을 피해갔고, 이 회장은 '완벽한 피해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에서 그의 작가적 '상상'을 자극한 장면은 법정에 있었다. 판사는 2017년 8월 성매매 영상 속 등장인물이자 불법 촬영 및 성매매 혐의를 받는 조선족 여성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을 명했는데, 구속되기 전 한 남성과 끌어안고 한참 울었다는 것. 김 대표는 그 남성에게 사연을 묻고자 했으나 머뭇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세상에 공개한 보도가 두 사람을 결국 이별하게 한 것이었으니.
“좋은 기자, 훌륭한 기자였다면 그 남성을 쫓아가 어떤 연유로 눈물을 흘린 것인지 물어봤을 거예요. 근데 난 그런 기자는 아닌 데다가 혹시 뺨 맞을까 무섭기도 했고….(웃음) 남편이었을까. 남자친구였을까. 그냥 지인? 누구였을까?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 거예요. 조선족은 어떡하다가 한국에 오게 됐을까? 판결문을 보면, 여러 일당들이 동영상을 갖고 삼성을 협박하는데 이런 것들은 이제 상상의 영역으로 남게 되는 거죠.”
그의 책은 오늘의 저널리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뉴스타파와 김 대표는 '이건희 동영상'이라는 확실한 물증이 있었음에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을 했는지 수개월 동안 확인·검증한 뒤에야 취재물을 공개했다. 사실을 확인하는 탐사보도 기자의 고되고 비루한 노동을 소설에 얼마나 흥미롭게 녹여냈을지 관심이 가는 대목.
“탐사보도 기자라고 활극을 벌이고 추격전을 하는 건 아니에요. 몇 달 동안 자료 찾아서 엑셀에 기입하고 명단 훑는 게 전부일 수도 있고요. 그래도 그런 고단한 작업을 하는 기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언론 추세가 지르고 보자, 아닌가요? 진영 논리가 강해지면서 그렇게 질러도 환호를 받는데 결국 기사 퀄리티가 아니라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따지게 되겠죠. 삼성 보도에서 우리는 영상이라는 물증을 갖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육하원칙을 따져 확인을 다 마친 뒤 보도했어요. 지금처럼 육하원칙 가운데 하나만 있으면 보도한다거나 제보자 주장만 믿고 지르는 건 매우 우려스럽죠.”
기자와 작가는 글 쓰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자를 하다가 작가로 전업한 사례도 심심찮다. 소설 '표백',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재수사'의 작가 장강명은 동아일보 기자 재직 중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해 등단했다. '침묵주의보', '젠가'의 정진영 작가도 문화일보 기자 출신이다. 정치부 기자의 활극을 담은 소설 '민트 돔 아래에서'는 현직 한겨레 기자 송경화 작가의 작품이다. 기자들의 취재물이 드라마로도 제작되는 등 '저널리스트들의 이야기'에 대한 콘텐츠 수요가 늘고 있다.
김 대표는 “기자들은 취재원 섭외 루트를 알고 있고, 사람을 만나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사람을 만났을 때 이야기를 풀어가는 법을 체득하고 있다”며 “기자들이 접하는 다양 각색한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기사 외의 방식으로 알려졌으면 좋겠다. 물론 기자들은 기사 쓰기도 바쁘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있고 수많은 취재원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자들이 생산해내는 이야기 콘텐츠들은 우리 사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벌써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번엔 삼성동 하우스니까 '서초동 하수구'나 '여의도 블루스' 등의 이름으로 검찰과 정치 이야기를 다뤄볼까도 상상한다”라고 했다. “정말 써보고 싶은 건 장르 소설이에요. 여의도 정치를 소재로 좀비물을 써볼까도 싶어요.(웃음) 지금은 무엇을 쓸지 그냥 머릿속에만 맴돌고 있어요. 분명한 건 다음 작품은 추리소설을 염두에 두고 등장인물 한 명 정도는 죽이고 시작할 생각이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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