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vs. ‘샹파뉴’…축구 전술·스타일에도 문화가 배어있다?

김태형 2022. 12. 1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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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책] 매주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흰색 바탕에 하늘색 줄무늬, 리오넬 메시가 이끌고 있는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 유니폼은 흰색과 하늘색이 섞여 있습니다. 유니폼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별칭도 이들 색을 나타냅니다. 월드컵 조별 리그가 열리고 있던 지난달 27일 미국의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팅뉴스는 국가별 축구 대표팀의 별칭을 소개했는데요.

이번 월드컵 결승에 오른 아르헨티나는 '라 알비셀레스테'(흰색과 하늘색)입니다. 역시 결승전에 진출한 프랑스는 '레 블뢰'(파랑)입니다. 현대 축구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잉글랜드는 세 마리의 사자, '삼사자 군단'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 대표팀의 별칭은 '사무라이 블루'라고 전했습니다.

1986년 멕시코 대회 때부터 10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은 어떻게 소개를 했을까요? 애칭이 두 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나는 '태극 전사'(Taegeuk Warriors), 다른 하나는 '아시아의 호랑이'(Tigers of Asia)입니다.

이처럼 축구 국가대표팀마다 고유의 애칭이 있는데, 그렇다면 나라마다 축구 대표팀의 스타일도 다른 것일까요? 이종성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책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에서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해 답을 제시해줍니다. 축구에도 역사와 문화가 배어 있어, 나라마다 고유의 전술과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라는 게 이종성 교수의 얘기입니다. 이 교수는 책에서 먼저, 아르헨티나를 예로 듭니다.

백여 년 전인 1920년대, 아르헨티나에는 유럽에서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건너옵니다.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건너온 유럽 사람들에게 축구는 최고의 오락거리가 됩니다.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은 당시 단순한 일을 반복해야 했던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이 묘기를 부리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개인의 자유를 만끽했고, 일을 끝내고 즐기는 축구 경기야말로 공장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했다고 전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들의 묘기는 드리블과 패스였다. 공간을 헤집는 선수들의 드리블과 마치 탱고 댄서의 정교한 발놀림과 같은 터치로 공을 받아내는 기술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아무리 창의적인 패스를 구사한다 해도 이를 받아주는 선수의 볼 터치가 투박하면 골이 될 확률이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볼 터치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저 공을 차는 게 축구가 아니라 터치를 할 수 있어야, 다시 말해 공을 부드럽게 다룰 수 있어야 축구라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아르헨티나에서는 그래서 축구를 터치의 예술로 봤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탱고 축구도 볼 터치에서 탄생했다. 공은 받는 게 아니라 기타처럼 튕기고 어루만져야 한다는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시절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특별한 축구 스타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지금은 당연시되는 멀리서 빈 곳으로 공을 차 넣는 잉글랜드의 축구 스타일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수비 라인부터 드리블과 패스를 통해 상대 골문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나아가서 골을 넣는 게 축구의 묘미라고 봤던 것이죠.

이웃 나라 브라질은 또 다른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이종성 교수는 브라질은 예술적인 볼 터치를 한 단계 발전시킨 축구 스타일을 내세웠다며, 이를 '리드미컬한 드리블 축구'라고 말했습니다.

브라질에서 10명의 필드 플레이어는 자신의 포지션에 관계없이 적어도 상대 수비수 1명을 스스로 제칠 수 있는 드리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 브라질 특유의 변화무쌍한 드리블 때문에 우리는 브라질 축구를 '삼바축구'로 형언하게 됐다.

2차대전 이후 세계 각국의 축구 스타일은 급격하게 변모하게 되는데, 유럽의 네덜란드에서는 '토탈사커'가 등장합니다. 수비수도 때로는 공격수의 역할을 하고, 공격수도 때로는 수비수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공격 시에는 모든 선수가 공격에 참여해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내는 개념인데, 이종성 교수는 이를 네덜란드의 간척 사업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농토가 부족했던 네덜란드는 간척사업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왔던 대표적인 국가였다. 어떤 의미에서 토털사커는 축구장의 공간을 패스로 창조하는 일종의 간척사업과 다름없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결승전을 치르는 프랑스의 경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특유의 스타일을 선보였는데요. 이 교수는 샹파뉴, 즉 샴페인 같은 축구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 축구 스타일은 '샹파뉴(샴페인) 풋볼'이라는 표현으로 집약된다. 코르크 마개를 열면 쏟아져 나오는 발포성 포도주 샴페인에 어울릴법한 신나는 축제 분위기의 공격 축구라는 의미다.

취재진과 전화 인터뷰를 한 이종성 교수는 이제는 각 나라 축구 대표팀마다 타국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국가별 축구 스타일이 비슷해진 면이 있지만, 저마다의 역사와 전통이 남아 있기에 이번 월드컵 결승전은 아르헨티나의 '탱고 축구'와 프랑스의 '샹파뉴(샴페인) 축구'의 대결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책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은 이처럼 월드컵에 얽힌 여러 얘기를 펼쳐냅니다. 축구 경기장 안에서 벌어진 일만이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 일어났던 갖가지 사연과 사건을 들려줍니다.

20세기 초, 아직은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던 유럽에서 어떻게 축구의 인기가 퍼져나가 전 세계가 함께 하는 월드컵이 됐는지를 풀어내고, 이민자 출신들이 유럽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얼마나 힘이 됐는지를 진단하고, 중국의 '축구 국기'가 왜 계획대로 되지 않았는지를 분석합니다.

책은 이와 함께,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장과 도로, 숙박시설 등을 건설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얼마나 침해됐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희생됐는지, 피파가 중계권료에 얼마나 심하게 집착하는지, 월드컵의 어두운 면도 논합니다.

책을 쓴 이종성 교수는 스포츠 기자로 일하다가 스포츠 문화사로 석사 과정을 밟고, 남북한 축구 역사를 다룬 논문 '남북한 축구역사 1910-2002: 확산과 발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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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월드컵
이종성 지음 / 브레인스토어 (2022년 12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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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김태형 기자 (in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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