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피 디스크가 대접받는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웃픈 현실 

박대원 일본통신원 2022. 12. 1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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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공·민간 기관에서 여전히 데이터 저장과 보관에 사용토록 지정
종이 건강보험증 폐지하고 ‘마이넘버카드’ 보급하자 국민들 거부감 이어져

(시사저널=박대원 일본통신원)

2022년에도 플로피 디스크와 종이 신분증을 사용하는 나라가 있다. 아프리카 후진국 얘기가 아니고, G7 국가이자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 얘기다. 저장용량이 약 2MB밖에 되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 한 장도 저장하기 어려운 플로피 디스크는 2011년부터 일본 내 생산이 종료되었다. 그러나 2022년 12월 현재에도 야마구치은행과 같은 일부 지방은행에서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1월24일 일본 도쿄 시부야 지구의 한 거리ⓒEPA 연합
일본 직장인이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는 모습ⓒTech Craze 유튜브 캡쳐

코로나 대응에서 두드러진 디지털 후진성

일본의 공식 신분증의 하나인 건강보험증은 종이 재질로 돼있다. 본인 확인을 위한 증명사진도 부착돼 있지 않다. 이름·생년월일·주소·성별 및 유효기간 등이 간략히 기재돼 있는 정도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증을 위조하거나 타인의 건강보험증을 도용하는 범죄가 적지 않게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13자리만으로도 전산 시스템으로 본인 확인이 바로 가능한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이 계속되던 2021년 9월, 스가 내각은 총리 직속 기구인 '디지털청'을 신설했다. 코로나19 감염자 수를 집계하는 과정에서 의료기관과 지자체가 팩스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거나, 감염 확산 우려에도 근무자들이 결재 도장을 찍기 위해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이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일본의 디지털 후진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종이 문진표를 수기로 작성하고 종이 접종증명서를 발급받고 있는 일본 국민에게 "한국에서는 카카오톡을 통해 잔여 백신 확인 및 예약이 가능하고 스마트폰으로 접종 증명까지 한다"고 전하면 대부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디지털청 출범 이후 일본 정부는 일본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장 대신 전자서명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공공기관이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률 개정 노력이 대표적 사례다. 디지털청의 12월7일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현행 법령 가운데 약 2100개 조항이 공공 및 민간기관에서 데이터를 저장하고 보존하는 매체로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도록 지정하고 있다. 구시대적인 규정으로 인해 중앙정부 및 지자체가 온라인으로 민원을 처리하거나 클라우드에 공문서 및 데이터를 보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해당 발표는 오래된 규정들을 수정함으로써 행정의 디지털화를 촉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디지털청은 또한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일본의 '마이넘버카드'를 전 국민에게 발급하고, 이를 각종 증명서로 활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마이넘버카드는 플라스틱 카드 형태의 신분증으로 2016년 1월부터 교부가 시작되어 올해 10월말 기준으로 일본 국민의 약 절반이 발급받았다. 일본 정부는 내년 3월말까지 전 국민에게 카드를 발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노 다로 디지털 대신(장관)은 10월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2024년 가을까지 종이로 된 건강보험증을 폐지하고 마이넘버카드에 건강보험증 기능을 연결하는 일체화 작업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마이넘버카드에 운전면허증 기능까지도 추가하겠다고 말했다. 마이넘버카드 한 장이면 온·오프라인상에서 각종 증명이 가능하니 발급을 서두르라는 독촉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마이넘버카드에 각종 공적 증명서를 통합하고 개인정보를 전산화해 일괄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되기 어려워 보인다. 마이넘버카드 보급이라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년 3월말까지 약 4개월간 일본 국민의 절반(약 6000만 명)이 마이넘버카드를 발급받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마이넘버 유출 소식이 보도되면서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일본 국민의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내각부 산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약 3만5000명분의 마이넘버가 분실되거나 유출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마이넘버카드 ⓒ일본 총무성

"내 개인정보가 일괄 관리되는 것 싫어"

마이넘버카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점도 큰 문제다. 도쿄도에 거주하는 M씨(40대)는 "애초에 마이넘버카드를 왜 도입해야 하는지,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기존 건강보험증을 폐지하고 마이넘버카드로 일원화한다는 소식에 굉장히 놀랐다. 의료혜택을 받기 위해 필수인 건강보험증과 마이넘버카드를 연계하는 작업은 사실상 전 국민에게 강제적으로 마이넘버카드를 발급하기 위함이 아닌가"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시즈오카현에 거주하는 Y씨(50대)는 "마이넘버카드를 발급해 정부에 의해 일괄적으로 개인정보가 관리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부모님과 자녀들에게도 마이넘버카드를 발급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가 올해 9월 발표한 세계 디지털경쟁력 평가에서 한국, 중국, 일본이 각각 8위, 17위, 29위를 차지했다. 디지털 시대에서의 국가 경쟁력 저하라는 위기감은 일본 정부가 일본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주요한 동기가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규정들로 인해 과거의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와 디지털화된 정보를 정부가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심리적 문제는 일본 사회의 디지털 전환을 저해하고 있다. 이에 더해 현금 결제, 폴더형 휴대전화, 수기 작성을 선호하는 고령의 연금생활자들이 디지털 전환을 주저하고 있는 점도 일본 사회에서 아날로그 방식이 유지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디지털청과 함께 디지털 전환에 힘쓰고 있는 총무성에서는 "누구 하나도 뒤떨어지지 않는" 디지털 사회의 실현을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디지털 사회 실현을 위해서는 수기 작성을 선호하는 일부 국민을 위해 전 국민이 일방적으로 디지털을 강요당하는 사회가 아니라, 대면 지원이 필요한 국민에게는 대면 지원을, 온라인상으로 '디지털하게' 민원을 처리하고 싶은 국민에게는 디지털 지원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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