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 “충전 줄에 손도 안 닿아”…장애인 ‘전기차 장벽’ 없앨 방법은?
장애인·전문가 “세부 설치 지침 마련도 필요해”
(시사저널=변문우 기자·정용석 인턴기자)
유튜브 채널 '위라클'을 운영하는 휠체어 장애인 박위(35)씨는 전기자동차를 혼자서 충전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소셜 실험'을 진행했다. 박씨는 본인이 주로 이용하는 서울 용산역 대형 쇼핑몰과 용산구 소재 모 신축 건물의 주차장 등에 설치된 일반 전기차 충전시설들을 찾았다. 하지만 이 시설들은 그에게 무용지물이었다. 휠체어 장애인들은 문이 완전히 열려야만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옆에 다른 차가 주차돼있으면 내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주차된 차가 없어도 접근성이 문제다. 박씨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것은 바닥에 얽혀있는 충전줄이었다. 이 줄에 휠체어 바퀴가 걸릴 수도 있다. 여기에 차와 충전시설 간 폭도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긴 역부족이었다. 또 충전기 앞까지 도달한다 해도, 박씨의 팔은 충전기의 선까지 닫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빈손으로 주차장에서 차를 뺄 수밖에 없었다.
최근 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발맞춰 전기자동차의 보급과 수요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박씨의 사례처럼 일반 전기차 충전시설은 장애인들에게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충전 스크린 높이와 이동 유효폭 등 접근성에 제약이 많아서다.
물론 장애인을 비롯해 교통약자를 위한 전기차 충전시설은 따로 존재한다. 하지만 해당 충전시설들은 서울 8개, 경기 11개 등 전국적으로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국회나 지자체 차원에서 교통약자 전용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사항을 명문화한 법안 등은 전무한 상태다.
"장애인도 전기차 충전 쉽게" 법안·조례안 속속 발의
이에 국회에선 교통약자 전용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환경친화적 자동차 충전시설과 전용주차구역을 설치할 때, 장애인용 충전시설 및 전용주차구역을 포함해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조수진 의원은 "장애인의 환경친화적 자동차 이용도 증가하는 만큼, 이를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적 보완도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서울 용산구가 전국 최초로 '교통약자 전용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관련 조례안'을 만들었다. 해당 조례안은 지난 16일 용산구의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조례안은 교통약자 전용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등을 지자체장의 권한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충전시설 설치가 의무화된 것은 아니다. 다만 관련 예산이나 사업을 계획·집중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윤정회 용산구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은 "전기차 보급이 장려되고 있지만 교통약자 분들이 충전기를 이용하기에는 제약이 많은 실정"이라며 "해당 조례 제정을 통해 교통약자가 불편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나아가 이동권 보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도 마련 환영하나 세부 지침도 중요"
장애인들은 해당 법안이나 조례 제정 추진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다. 서울 용산구로 매일 출퇴근하는 휠체어 장애인 회계사 장지혜(28)씨는 "이러한 변화들이 반갑다"며 "용산에서 시작된 조례 제정을 출발점으로, 앞으로 이런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뻗어나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시도 용산구의 조례안 제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그린카충전기획팀의 인성주 주무관도 "그동안 충전시설 확보가 안 돼 전기차를 구매를 꺼리는 장애인분들이 많았다"라며 "이번 조례안 마련으로 장애인도 마음 놓고 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관련 전문가들은 교통약자를 위한 충전소 설치 지침도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기차 수요는 늘고 있지만 교통약자를 위한 충전소 설치 지침은 없는 까닭이다. 환경부의 '전기자동차 충전인프라 설치·운영 지침'도 주차면적만 규정할 뿐이다.
장유진 장애인제도개선솔루션 간사는 "해당 법안과 조례가 발의됐다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라면서도 "충전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어떤 부지에 지어야 한다는 등 세부 지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충전기 높이, 충전기 사이 간격, 휠체어 이동을 위한 유효폭 등을 규정해 설치 후 이용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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