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의 와인...‘달콤 쌉싸름’ 맛에 빠지다 [전형민의 와인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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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전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입니다. 몬태규와 캐퓰릿 두 원수 가문에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비밀 결혼식을 올리는데요. 이때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하고 결혼 미사를 주재한 로렌스 신부의 탄식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와인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지만, 와인러버들 사이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와인’ 또는 ‘사랑의 와인’으로 불리는 녀석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녀석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북동쪽 베네토에서 양조하는 ‘아마로네(amarone)’ 입니다.
아마로네는 베네토 지방에서도 비옥한 지역에 속하는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지역에서 생산됩니다. 이 지역에서는 아마로네 말고도 일반 레드 와인인 ‘발폴리첼라’와 스위트 레드 와인인 ‘레치오토(recioto)’를 생산하는데 레치오토와 아마로네는 긴밀히 연결돼 있습니다. 아마로네가 레치오토 양조자의 실수로 발견된 와인이기 때문입니다.
레치오토는 양조 과정에서 효모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중단시켜 단맛을 강조한 와인인데요. 어느 날 한 양조자가 레치오토를 양조 중인 오크통을 잊어버리고 방치하고 맙니다. 거의 2년이 지나 양조장의 구석에서 그 오크통을 다시 찾은 양조자는 그 속에 효모가 잔여 당을 전부 알코올로 변형시킨 와인을 발견합니다. 이 와인은 단맛과 쓴맛이 공존하는 오묘한 맛을 냈습니다. 아마로네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입니다.
특히 양조 과정에서는 4세기부터 쓰인 유서 깊은 기법인 아파시멘토(appassimento) 제조법이 쓰입니다.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일찍 수확한 포도를 한알 한알 골라내 알갱이가 반 정도 크기로 줄어들 때까지 3~4개월 정도 나무 등으로 엮은 발 위에서 말리는 방식입니다.
말로는 단순하지만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되는 일입니다. 곰팡이를 방지하기 위해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말려야하고, 제한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포도알을 말리기 위해 나무발을 켜켜이 쌓아올려야 하죠. 이렇게 쌓아올려진 모습이 현대의 아파트와 닮았는데, 실제로 영어 아파트(apartment)의 어원은 이 아파시멘토 기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포도알을 말리면 수분이 날아가면서 당도가 높아지고 포도송이의 무게가 30%~50% 정도 줄어 듭니다. 건포도화된 포도를 가지고 와인을 양조하면서 기존 방법으로 양조된 와인보다 농축되고 집중된 와인이 나오게 되는거죠. 과실미와 농축도가 좋으니 당도가 뛰어난 것은 당연하고, 당도가 높으니 알코올 도수도 기존 와인들보다는 올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아마로네는 마냥 쓰기만한 와인은 아닙니다. 단지 스위트 와인이던 레치오토보다 쓸 뿐이고, 일반 와인들에 비하면 여전히 단 편입니다. 양조자마다 자신의 개성을 담아내지만 아마로네의 기본적인 느낌은 이렇습니다.
처음 입에 닿았을 때는 농축된 과실미를 바탕으로 탄탄한 단맛이 느껴집니다. 이내 말린 허브의 복합적인 내음이 지나갑니다. 와인을 목으로 넘길 때 즈음이면 어느 새 입안에는 달달함은 사라지고 쌉싸름하면서도 매력적인 뒷맛이 지배하게 됩니다.
아마로네는 단맛과 쓴맛이 한 모금에 느껴지는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팔렛(palate·와인에서는 미각을 통칭합니다) 덕분에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지역에서 양조되고, 시작은 달콤하지만 그 끝은 쌉싸름한 오묘한 와인. 가히 ‘사랑의 와인’이라고 부를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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