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 해소방안 확정 후 빚 한도 늘려도 늦지 않아”
반대토론 후 관례 깬 본회의 부결 ‘파장’
“채권 발행 늘려도 내후년이면 껍데기,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살리자는 것”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한전채(한국전력공사(015760)(한전)가 발행하는 채권) 발행 한도 확대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한전이 2022년도 결산을 확정하는 내년 3월 이전까지는 시간이 있다. 전기요금을 비롯한 한전의 재무건전성 개선 계획을 확정 발표한 이후에 발행 한도를 늘려도 늦지 않다.”
한전법 개정안 부결 ‘파장’…“다수가 본인 의사 분명히 전달”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전법 개정안이 부결되면서 정부와 국회, 전력산업계에 파문이 일었다. 국회 상임위(산자위)와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은 이변이 없는 한 통과되는 게 관례였으나 이게 깨졌다. 국회의원 203명 중 61명(30.0%)이 반대하고 53명(26.1%)이 기권했다. 찬성표는 89명(43.8%)으로 과반에 못 미쳤다.
한전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전은 당장 내년 3월부터 한전채 발행이 막히고 채무불이행(디폴트)위기에 빠진다. 국가 전력망이 디폴트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양이 의원은 이 같은 해석을 부정했다. 본회의에선 통상 상임위의 결정을 존중해 웬만하면 찬성, 이견이 있어도 기권하고 마는데 이번엔 다수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게 그 근거다. 그는 “의원들이 내 말에 혹했다거나 의미를 몰라서 부결됐다고 의미를 축소할 수 없다. 다수 의원은 기권도 아닌 반대표로 분명히 본인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한전 정상화 계획 없인 빚 한도 늘려도 내년 중 자본잠식 위기”
양이 의원은 그만큼 현 한전 재무위기가 심각하다고 했다.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려 당장 급한 불도 꺼야 하지만, 이에 앞서 전기료 현실화를 통한 한전의 재무건전성 정상화 계획을 당장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어난 빚이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한전의 상황은 역대 최악이다. 올 3분기까지 21조8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 연간 최소 30조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매출의 절반 남짓이 적자다. 증권사는 이 추세라면 한전이 내년에도 12조~13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발 세계 에너지 위기로 발전 원가는 평소보다 2~3배 뛰었는데, 전기료는 올해 누적 약 15% 올리는 데 그쳤다. 그 부족분은 한전이 한전채 발행량, 즉 빚을 늘려 메웠다.
발행 한도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 발행량 확대는 국내 채권시장의 돈을 빨아들여 기업의 자금난을 부추기는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강원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 경색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양이 의원은 “올 초부터 계속 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얘기해 왔으나 충분한 대책이 이뤄지지 않아 왔다”며 “일각에선 한전채 한도를 늘리면 전기료를 안 올려도 될 것처럼 얘기하는데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면 한전은 껍데기만 남고 다른 기업이 줄도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마냥 손 놓고 있진 않았다. 올해도 전기료를 약 15%(1㎾h당 19.3원) 올렸다. 특히 대기업은 20% 이상(1㎾h당 28.5원) 올렸다. 1970~198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최대 폭 인상이다. 이와 함께 민간 발전사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2월부터 도매 요금 상한제를 도입하고 전 국민적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시작했다.
개정안 부결 후 정부·한전 재정정상화 수립 ‘속도’
한전법 개정안 부결과 재추진 과정에서 정부와 한전도 재정정상화 계획에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국회 산자위에 이 계획을 제출했고 오는 20일께 이를 반영한 전기료 (발전)연료비 조정단가를 확정할 예정이다. 현재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다.
결과적으로 양이 의원을 비롯한 이번 한전법 개정안 반대표는 표 떨어질까 전력 시장 정상화에 머뭇거리던 정치권에 ‘경종’을 울렸다. 시장은 정치권의 이 같은 변화를 반겼다. 한전 주가는 국회 본회의 부결 당일인 8일 주당 1만9350원에서 16일 2만1650원으로 11.9% 올랐다. 특히 부결 다음 날인 9일은 8.5% 급등했다. 시장은 한전의 디폴트 우려보다 전력시장 정상화 기대에 힘을 실은 것이다.
양이 의원은 “에너지 요금을 원가 이하로 억누르는 건 그 빚을 아이들에게 떠넘기고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것”이라며 “국민이 현 에너지 위기 상황을 이해 못 할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유불리를 계산하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가 이하의 요금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건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사람에 대한 사실상의 부자 감세”라며 “에너지 가격은 제대로 받고 전기료 인상으로 타격을 받을 에너지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대해선 그 피해액을 산정해 정부 재정에 반영하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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