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의 아트레터]알렉스 카츠의 80년 발자취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업 총망라
100세 가까운 고령에도 활발히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알렉스 카츠(Alex Katz)이다.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대규모 회고전 ‘알렉스 카츠:개더링(Gathering)’이 한창이다. 1940년대 초기부터 최근 작업까지 연대기 순으로 기획된 회고전이다. 카츠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페인팅이라는 보편적 시각 언어로 풀어내며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자신의 부인 아다(Ada)와 그의 아들 빈센트(Vincent)의 초상화가 대표적이다. 카츠가 1000여 점 넘게 작업해온 아다의 초상화 시리즈는 자연스럽게 ‘화가의 시그니처’가 됐다. 그 뿐만 아니라 주변 친한 지인들의 초상화, 여러 정물과 풍경화들은 20세기부터 현재까지를 가로지르며 시대적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카츠는 192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뉴욕 시내 공원,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 앉아서 하루 종일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보였고, 그런 카츠를 부모도 적극 지지해 주었다. 든든한 지원 덕에 카츠는 뉴욕의 명문 예술대학인 쿠퍼 유니언에 입학했고, 항상 스케치북을 지니고 다니며 주변 풍경과 인물들을 끊임없이 그렸다. 이는 나중에 카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카츠가 아티스트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40~50년대는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시절의 영향인지 그의 초기작들은 전반적으로 추상적이다. 전시된 초기 작품들은 간결한 선과 동일한 색으로 풍경을 그린 앙리 마티스를 연상시키며, 잔잔한 파스텔 톤의 색채는 미국 근대미술의 거장인 밀턴 에버리(Milton Avery)나 에텔 아드난(Etel Adnan)의 팔레트를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카츠는 이러한 거장들의 그림 스타일을 따라 그리며 페인팅에 대해 연구했다.
이런 탐구의 시기를 거쳐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카츠는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카츠의 화려하지만 깊이 있는 색채, 시원한 붓 터치, 독특한 구도가 이 시기부터 등장한다. 그는 당시 영화나 잡지에서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프레임 방식을 차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다. 그림의 소재인 인물·풍경들은 사람의 키보다도 훨씬 큰 크기인 그의 캔버스로 옮겨져, 익숙했던 풍경도 낯설게 만든다. 이번 구겐하임 회고전에 전시된 60년대 작품 ‘Blue Flag 4'(1967)이 대표적이다.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꽃의 양면성에 매료된 카츠는 이 시기부터 꽃과 관련된 많은 시리즈를 제작해오고 있다.
구겐하임 뮤지엄 꼭대기 층에 다다를수록 카츠의 최근작을 만나볼 수 있다. 따뜻하고 밝은 색채를 지닌 카츠의 과거 작업들과 달리 최근 작업들은 검정, 흰색과 같은 미니멀한 색들이 더 자주 등장할 뿐 아니라, 그림의 소재 또한 점차 추상화되고 있으며, 보다 철학적이다. 특히 2019~20에 제작된 ‘나무’ 시리즈는 하나의 나무만을 캔버스에 옮겨왔지만, 캔버스 화면에 압축된 나무 주변 풍경의 에너지를 함께 뿜어낸다.
가장 최근에 작업한 ‘바다’ 시리즈도 흥미롭다. 수면에 비치는 빛에 관심을 가진 카츠는 두꺼운 물감으로 물의 표면을 표현한다. 물감을 얇게 칠하는 그의 기존 작업 스타일과 확연히 다르다. 전시작 ‘White Reflection’(2020)에서 카츠는 오로지 흰색 물감만을 이용해 거대한 캔버스를 칠했다. 멀리서 보면 물감이 발려져 있지 않은 일반 흰색 캔버스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림 가까이에 다가가면 중간마다 두껍게 칠해진 흰색 물감들이 보인다. 물감 덩어리에서 반사되는 빛은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인생의 후반기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카츠는 이번 구겐하임의 회고전에서 작가를 넘어 한 개인으로서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드러내주었다. 점진적으로 자신을 비워나가고 있는 여정의 끝은 과연 어디일지 여운을 남기는 전시였다. /글·사진(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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