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불운' 당구 女王 울렸던 그 큐는 끝내 빠졌을까
16일 밤 막을 내린 올 시즌 프로당구(PBA) 5번째 투어 '하이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2022'.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처음으로 펼쳐진 투어는 남녀부 마민캄(베트남·NH농협카드), 히가시우치 나츠미(일본)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번 대회 단연 화제의 장면은 '당구 여왕' 김가영(하나카드)이 나선 4강전이다. 김가영은 쾌조의 컨디션으로 준결승까지 올라 백민주(크라운해태)와 맞붙었지만 좀처럼 보기 드문 불운 속에 웃픈 눈물을 삼켜야 했다.
김가영과 백민주는 지난 14일 여자부(LPBA) 4강전에서 격돌했다. 김가영은 지난 시즌 왕중왕전인 월드 챔피언십과 3번의 투어 챔피언십 타이틀에 이어 통산 5번째 우승컵을, 백민주는 첫 우승을 노리고 정상 길목에서 만났다.
초반에는 첫 결승 진출에 도전하는 백민주의 패기가 강했다. 백민주는 1, 2세트를 따내며 김가영을 압박했다.
하지만 김가영은 '포켓볼 여제'로 군림한 데 이어 3쿠션에서도 여왕의 자리에 오른 베테랑. 3세트 들어 김가영은 대반격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변수가 발생했다. 김가영은 4 대 3으로 앞선 3이닝째 큐가 닿지 않는 어려운 배치에서 연장 도구인 익스텐션을 손잡이에 달고 넣어치기를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이내 어렵다고 판단해 다른 샷을 치려고 익스텐션을 빼려던 차였다.
그런데 익스텐션이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살짝 당황한 김가영은 침착하게 타임 아웃을 부른 뒤 익스텐션을 빼려고 했지만 2단만 빠지고 1단은 요지부동이었다. 시간에 쫓긴 가운데서도 김가영은 앞돌리기 대회전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곧바로 김가영이 남자 심판에게 익스텐션 분리를 부탁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속절없이 김가영은 겸연쩍게 웃으면서도 익스텐션이 달린 큐로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구 선수들에게 큐 무게는 단 10~20g이라도 영향을 미친다. 더군다나 경기 중 갑자기 무거워진 큐는 감각을 유지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줄 수 있었다.
김가영은 백민주가 샷을 구사하는 틈틈이 자신의 대기석에서 익스텐션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안간힘을 써도, 바닥에 내리쳐도 큐에서 연장 도구는 빠지지 않았다. 상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 경기를 중단할 수도 없었다. 실제로 대기석의 백민주는 이 해프닝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익스텐션을 매단 채 경기하는 김가영을 외면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김가영은 무거워진 큐로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김가영은 10점에 먼저 도달해 세트 포인트를 맞았다. 1점만 더 내면 휴식 시간을 통해 상황을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1점이 어려웠다. 무거운 큐로는 정교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김가영의 뒤돌리기와 뱅크샷은 한 끗 차이로 빗나갔고, 김가영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백민주가 무섭게 추격해 결국 11점에 먼저 도달해 세트 스코어 3 대 0 승리로 첫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김가영은 아쉬운 가운데서도 백민주의 승리를 축하해주는 여왕다운 매너를 보였다. 경기 후 백민주도 "승리했지만 김가영 프로의 익스텐션 이슈로 조금 찝찝한 기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 여파 때문이었지 백민주는 8강에서 최강 스롱 피아비(캄보디아·블루원리조트)를 꺾는 등 엄청난 기세를 올렸지만 결승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문제의 익스텐션은 경기 후에도 풀리지 않았다. PBA 남성 관계자들이 들러붙어 빼내려고 했지만 큐는 그대로였다.
PBA 관계자는 "원래 선수들은 예비 큐 중 타격을 하는 상대만 준비하지 손잡이 부분이 있는 하대는 거의 휴대하지 않는다"면서 "김가영도 상대는 있었지만 하대가 없어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면서 "나중에 김가영이 큐와 익스텐션 제조사에 보내고 나서야 겨우 분리가 됐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LPBA 최다 우승에 도전했던 '당구 여왕' 김가영과 첫 정상을 노렸던 백민주.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익스텐션 사건(?)이 벌어지면서 김가영은 씁쓸하게 패배를 맛봤고, 백민주도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당구라는 종목에서만 볼 수 있는 웃픈 해프닝이었다.
정선=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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