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문화이야기] 예술 경력 도합 97년, 롱런의 비결…"온전히 스스로 집중할 때 즐거워요"

김문영 2022. 12. 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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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수경·화가 권순철·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 인터뷰
수십 년 동안 하나의 세계를 탐구한 비법을 묻다
1963년생 작가 이수경, 1944년생 화가 권순철, 그리고 1980년생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경력 도합 97년으로 왕성하게 활동한 예술가란 점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이수경은 2001년 첫 '번역된 도자기' 전시 이후 올해 21년째, 권순철도 1978년 첫 개인전을 연 뒤 44년째, 사라장은 1990년 세계무대 데뷔 후 올해로 3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 닦으면서 하나의 세계를 탐구해온 이들의 심정을 묻고 그 비법을 담아봤습니다.

이수경 "유기적인 자연 같은 것 파생되는 느낌"

작품 '번역된 도자기: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과 이수경 작가 [사진=MBN]

버려진 도자기의 깨진 조각들에 금박을 더해 만든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로 국내외 화단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은 이수경 작가.

이 작가는 5m 크기 대형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을 국내에서 처음 전시(내년 2월 10일까지, 서울 더페이지갤러리) 중인데요.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은 2017년 세계 최대의 현대 미술 축제로 불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출품된 바 있는데, 이같은 '번역된 도자기' 연작은 이후 영국의 대영박물관뿐 아니라 미국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시카고미술관에 소장됐습니다.

파편들로 재창조한 작품들에 대해 이 작가는 "새로 번역되는 것"이며 "비온 뒤 식물이 다시 자라나는 것처럼 유기적인 자연과 같은 것이 파생되어 나온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다정하고 익숙한 존재로서의 동아시아 문화권뿐 아니라, 다른 문화를 만들어줄 수도 있는 씨앗같은 존재로서의 전통 등도 생각하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작품할 때는 저를 오로지 던져…그것 때문에 견딘 듯"

인터뷰하는 이수경 작가 [사진=MBN]

그런 이 작가는 오랜 작품 활동의 비법에 대해 "작품할 때는 저를 오로지 던지지 않느냐"며 "그 시간 외에 제가 진실되게 몸과 마음을 다한 순간이 있었나 싶고 그것 때문에 잘 견뎌온 것 같다"고 단번에 말했습니다.

심지어 저마다 가질 수 있는 아픔과 공포도 자신은 작품활동으로 이겨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저는 이상하게 헤어짐의 공포나 다른 공포가 아니라 죽음의 공포가 큰데, 온전히 집중하는 동안은 저의 존재가 사라지고 단절되는 공포로부터 제가 안심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제가 집중하는 시간이 취미가 아니라 업이니까 엄청난 행운이 아닌가 싶다"며 미소 지었습니다.

이 작가는 자기 작업을 할 때 인위적으로 구획하거나 조정하지 않고 자기를 가져다놓고 오래 바라볼 때가 많은데, 그럴 때면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자신의 미술세계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권순철 "한국인의 의연한 얼굴 찾고파"

작품 '어떤 얼굴을 찾아서'(왼쪽)와 작품' 어떤 얼굴을 찾아서'의 뒷면(오른쪽) [사진=MBN]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오랜 활동을 한 권순철 화가는 각종 역경을 겪었지만 의연한 한국인의 얼굴을 찾고 그리는 데 온 마음을 집중해 왔습니다.

작품 활동 초기인 196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권 화백은 한국인의 기본적인 특징을 찾기 위해 꾸준하게 길거리로 나가 스케치를 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4·19, 5·18 민주화운동 등을 겪으며 축적된, 한국인의 뇌리 속에 담길 만한 한 얼굴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전시 중인 '어떤 얼굴을 찾아서'도 그런 취지에서 그려진 그림(오는 24일까지, 갤러리 월화미술)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역사적 아픔을 잘 승화시킨 얼굴을 찾아 그는 낙원동과 종묘, 동대문시장,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 고속터미널 등을 다니며 서민들을 그려왔습니다.

그는 아직도 1970년대 한복을 입고 고속터미널에 앉아있던 노인 부부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자식을 보러 시골에서 도시로 왔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의연하게 사방을 보는 모습이 압도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하는 권순철 화가 [사진=MBN]

"서구 미술에 침식당해…우리 신사임당 보여줘야"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서구 미술로부터 침식당한 우리 미술계를 살리고, 제대로 한국적인 것을 내세워야 한다는 그의 의식입니다.

그는 "한국에서조차 미술 배운다고 하면 비너스상을 그리고 반 고흐나 세잔만 알지, 한국의 화가나 우리 선조들 그림은 잘 모르지 않냐"며 "20~30년 동안 생각했지만 우리의 것을 더 잘 알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컨대, 서양의 모나리자 대신 신사임당을 더 잘 그려 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그와 절친해 사석에서 그와 만나는 황석영 작가와 김훈 작가도 통절하게 느끼고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어 그는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6·25 전쟁 피해자나 위안부 할머니 등, 역사 속에 희생된 분들에 대한 큰 예술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 역시 서양이 홀로코스트를 참회하고 문학의 주제로 삼으며 기리는 것처럼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라장 "코로나 이후 미국 외 공연은 한국이 처음"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 [사진=MBN]

만 여덟 살에 세계 무대에 서고 세계적인 레코딩을 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은 오는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코로나19 이후 첫 내한 공연을 합니다.

사라장은 취재진 앞에서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공연을 멈췄다가 1년 전부터 미국에서 연주를 몇 개 시작하게 됐는데, 유럽과 아시아 등에선 아직 안 하고 있다"며 "제게는 특별한 한국에서 코로나 이후 미국 밖에서의 첫 공연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바이올리니스트'로도 불린 사라장은 "어머니께서 '코로나가 있으니까 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도 네 집에 있고 어머니의 날에도 처음으로 집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며 웃었습니다.

이어 "처음으로 평범한 삶을 알게 된 것 같고, TV와 넷플릭스도 한 달 내내 봐보고 요리도 처음으로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음악은 힐링…저는 너무 행복해요"

인터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 [사진=MBN]

나이는 1980년생으로 어리지만 벌써 데뷔 32주년. 수십 년 동안 바쁜 스케쥴을 소화했는데 지치지 않냐는 질문에 사라장은 "음악은 힐링(치유)"이라며 "전혀 부정적인 느낌을 가진 적은 없고 정말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어머니도 엄하고 하지만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제 곁에 좋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또 힐링되는 음악을 할 수 있기에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주 날에는 자연스럽게 어떤 음식을 먹고, 얼마나 잘지를 다 조정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편하게 웃으며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할 때는 파트너가 마음이 편안해야 좋은 연주가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연습은 쉼없이 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연주 한 번을 위해 리허설 전, 무대 뒤에서, 리허설 때, 비행기 탄 다음 연주 전 등 매일같이 연주한다는 것.

지방 연주를 하는 것도 너무 즐겁다고 말한 그녀는 이번 내한 프로그램에 들어간 바로크 음악도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저마다 다른 색이란 것을 느낄 수 있어 즐겁게 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그녀는 바흐의 곡은 엄격히 지킬 것들이 많지만, 비탈리의 곡은 트릴이나 아르페지오 등을 더 넣으며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 역시 매일마다 다를 수 있는 자유로운 곡이라고 소개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영상취재 : 민병조 기자, 이권열 기자, 전현준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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