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김치 좋아한다고?…그래도 ‘동치미’ 맛은 모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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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 이 아삭한 게 뭐냐 ."
센 저온에서 단단하게 얼린 얼음이라야 칵테일이 맛있다.
제빙기 얼음이 마음에 안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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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냉면-맥주 먹고 칼바람 맞는 ‘맛’
계절 별미로 ‘순수한 맛’ 내기 어렵지만
소주·레드와인에도 ‘미치게 좋은’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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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속이 뻥 뚫리게 시원하다!”
뭔가 통쾌한 상황, 복수 같은 것들, 우리는 사이다, 라고 부른다. 맛있는 동치미를 부를 때도 사이다처럼 시원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진짜로 사이다를 탄다. 그거, 맛없다. 어쩌다 제대로 된 동치미, 다시 말해서 사이다 안 타고 ‘동치미 엑기스’(진짜 이런 걸 판다)도 안 넣고 순순하게, 순수하게 익은 동치미를 가게에서 만나기란 어렵다. 내가 그런 동치미를 만나면 주인이 한정도 없이 고맙다. 자, 좋은 동치미를 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동치미는 물김치다.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다. 부동산이 돈인 세상, 동치미를 보관할 정도로 넓은 가게는 월세도 비싸다. 보통 배추김치는 ‘집중된’ 맛이다. 동치미는 ‘분산되는’ 맛이다. 많은 양의 심심한 국물에 무가 둥둥 떠 있다. 부피가 크다. 더 넓은 공간과 더 큰 김치냉장고가 필요하다. 뒷마당 같은 게 있으면 모를까.
그래서 좋은 동치미는 대개 지방의 넉넉한 마당 있는 집에서 낸다. 조건이 되는 것이다. 톡톡 쏘는 동치미 한 그릇! 문제는 동치미는 돈을 못 받는다. 심지어 리필도 공짜다. 그러니 진짜 동치미를 못 만든다. 아니 안 만든다. 어디선가 맛있는 동치미를 내거든 아낌없이 주인을 칭찬해줘도 좋다.
아작아작 씹히는 무와 동치미 국수
동치미는 국수를 말기 좋다. 냉면도 원래는 동치미라고 하지 않았나. 이가 시리게 ‘닉은 동티미’(냉면의 본고장 평양사투리)에 메밀국수 말아놓은 게 냉면이다. 한겨울 동치미 냉면에 얼음 같은 맥주를 두어 병 마시고 칼바람 부는 거리에 마서면 한기가 몰려온다. 그게 진짜 좋다. 이는 딱딱 부딪치지, 오한이 덮쳐서 ‘으으으’하고 어금니를 사려 물어야 하는데도 좋다. 변태다. 자학이다. 어쨌든 좋다. 아작아작 씹히는 무가, 콤콤하게 익은 무가 있는 동치미 사발을 하나 놓고 소주든 맥주든 마셔라. 이게 한국의 맛이다, 라고 해도 무방하다.
요즘 외국인들이 한식 잘 먹는다고들 하는데, 목포 금메달식당주인 박여사가 주는 1년짜리 삭힌 홍어와 익은 동치미 맛은 잘 모를 거다. 그건 우리 말 조사를 제대로 활용하거나 사자성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배내부터 천생으로 알게 되는 맛 같다. 동치미 무를 씹고, 국물을 목젖이 떨도록 다 들이켜고, 마지막에 삭힌 고추 한 조각이 입에 남아 혀를 톡톡 쏠 때 한없이 나타나는 만족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동치미는 여러 가지 안주로 변주하기 어려운 김치다. 그 자체로 이미 순백한 청직(淸直)을 선언한다. 김치처럼 볶거나 끓여봤자 망한다. 심지어 치즈버거에도 어울리는 배추김치와는 다른 종자다. 김치이되 김치랑 다른 길을 걷는다. 요즘 요리사들은 배추김치로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맨다. 1960~70년대 선배들은 부대찌개를 완성했다. 그 느끼한 햄과 소시지에 김치가 없었다면 현대의 부대찌개 전성시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1980년대 선배들은 김치볶음밥을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건 배추김치니까 된다. 동치미는, 난공불락이다.
그래서 내가 시도해 본 게 백김치였다. 동치미는 무맛이 9할이다. 무의 품종, 시기가 중요하다. 배추는 좀 덜하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서양식 주점) 가게에서 사철 내놓을 수 있는 와인과 맥주 안주로 선택한 게 백김치였다. 그거, 좋아들 한다. 서양 요리 안주를 먹을 때 백김치 한 쪽은 속을 풀어준다. 칼로 자르지 않고, 세로로 죽죽 찢어서 낸다. 젓가락과 함께.
동치미는 시도 못 했다. 겨울이다. 내가 먹으려고 해봤다. 레드와인에, 맥주에 동치미를 먹어봤다. 동치미가 아니라 동미치다. 미친다. 좋다. 소주에는 당연히 좋지. 막걸리? 원탑이지. 칵테일은 안 될까. 왜 안 돼. 된다. 올리브와 동치미 무를 썰어서 셀로판지 붙인 칵테일용 이쑤시개에 꿰었다. 술은 캄파리에 소주나 보드카. 탄산수나 토닉 오케이. 쭉 마시고 이쑤시개를 들어 우적우적 씹었다. 동치미가 다 한다. 조상님께 감사하다. 백석 시인이 쓴 시가 생각난다. 평양냉면 얘기할 때마다 사람들이 꺼내는 시. <국수>라는 시.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중략) 겨울밤 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한국-이탈리아 합작 ‘붉은 끝동’ 동치미
맑은 술에 붉은 캄파리를 섞으니 예쁘다. 고춧가루를 색을 내어 잘 만든 물김치 같다. 붉은 물김치 색이라 동치미가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합작.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은 오후가 되면 카페에 가서 캄파리 아페리티보를 시킨다. 캄파리에 소다수나 스파클링 와인을 차갑게 섞어낸다. 인생의 여유를 만끽한다.
동치미를 안주로 주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올리브와 궁합이 이리도 좋을 수가. 그냥 소주도 안동 소주도 좋으리라. 차갑게 해서 얼음 왕창 넣고(꼭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파는 돌얼음이어야 한다) 탄산수나 사이다 넣어서 칵테일을 만드시라. 거기에 잘 익은 동치미 삭삭 잘라서 곁들여라. 억지춘향 퓨전이 아니다. 어쩐 친구는 먹고 나서 이러더라.
“야, 이 아삭한 게 뭐냐.”
설마 동치미이겠거니 생각이 안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잘 어울린다. 북관에 있던 백석처럼 개털 모자를 쓰고 독한 이북식 소주를 마시고 털이 숭숭 난 삶은 돼지비계를 씹어도 좋겠지만, 오늘은 한이 합작 캄파리소주 칵테일에 동치미다. 돌얼음 잊지 말도록!
<팁>
*일반 얼음은 빨리 녹는다. 센 저온에서 단단하게 얼린 얼음이라야 칵테일이 맛있다. 좋은 바텐더는 종종 얼음을 사서 쓴다. 제빙기 얼음이 마음에 안 들어서.
*캄파리(또는 아페롤) 20㎖, 안동소주(그냥 소주면 30㎖) 20㎖, 레몬즙 소량, 탄산수나 토닉워터 100㎖, 얼음 가득. 처빌이나 민트 허브를 올리고, 동치미를 주사위 모양으로 썰고 올리브를 끼워서 곁들여 마신다. 캄파리가 없으면? 그냥 소주(40~60㎖)랑 토닉워터 조합만으로 대체하시는 거 추천.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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