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人터뷰] ② "우리가 알던 석학 아냐…세상 바꾸자던 눈빛 잊지 못해"
[아이뉴스24 김동현,원성윤 기자] "두꺼운 책 쓰는 그런 석학들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꿔나가자던 눈빛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전 세계 다양한 분야 석학과 전문가들 강연을 전달하는 EBS '위대한 수업-그레이트 마인즈'. 지난 14일 경기도 일산 EBS에서 만난 '위대한 수업' 제작진인 김민지 PD는 사회학자 장 지글러를 촬영하며 그에게서 절박감을 느꼈다.
김 PD는 "스위스 제네바 국립공원에서 야외촬영을 했었다. 1934년생 장 지글러는 그 노장의 나이에 3시간 가까이 뜨거운 햇볕 아래서 주먹을 쥐고 울분을 토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때 묻은 외투와 안경, 꼬질꼬질한 양복을 입고 3시간 동안 한국 시청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그때 그 에너지가 잊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석학이라고 하면 책상 앞에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나"면서 "제가 느낀 장 지글러는 본인이 생각하는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행동으로 실천하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위대한 수업' 허성호CP, 김민지 PD, 박진우 PD, 최현선 PD와의 일문일답이다.
◆ '다큐 프라임'은 1시간으로 연출하셨잖아요. 15분 분량으로 짧게 가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허성호 CP : 지루해서 못 볼까 봐 그렇죠.
◆ 유튜브로 봤는데 클립들이 여러 개 잘려져 있어서 주제별로 보기가 좀 편하더라고요. 숏폼에 대한 어색함은 없었나요?
김민지 PD : 사실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강연을 15분으로 만든다는 것에 새로움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50분으로 만든다고 하면 제작진도 되게 벅차고 숨이 찰 것 같은데 15분으로 나눠 매일매일 방송이 된다고 하니까 저희도 어쨌든 이게 지루하고 어려운 강연이 아니라 대중 친화적이고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자는 취지가 있었어요. 15분이라는 결정 안에서 만들어 갈 때 조금 더 이제 호흡이나 이런 것들, 자료를 넣거나 이렇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저희도 조금 새롭게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 처음에 누가 기획했습니까?
허성호 CP : 김유열 사장님이 신입 PD일 때부터 꿈꿔왔던 것이라고 하셨죠. 사장님이 부사장 시절에 굉장히 강력히 밀어붙였던 프로젝트입니다.
◆ 지금도 혹시...?
허성호 CP : 아닙니다. 제작에는 개입 안 하십니다. 제가 잘 쳐내고 있습니다(웃음).
◆ 세계 석학을 섭외한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았을 거 같은데요.
허성호 CP : 저희가 어느 정도 자신감은 좀 있었던 게 '다큐 프라임'이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거기도 석학들이 짧게 계속 나오거든요. 연이 닿는 네트워크가 있었습니다. 저희가 그래서 저희는 최소한 이 정도 급 이상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 최근 타방송사들도 지식 콘텐츠를 활용한 방송들이 많은데요.
김민지 PD : 대한민국의 유일한 교육 공영방송이라는 이점이 해외에서 많이 어필이 된 거 같아요. 상업적인 게 아니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적극 섭외에 응한 것 같아요.)
◆ EBS에 대해 외국에선 신기해하지 않습니까?
김민지 PD : 한국은 이렇게 교육에 많이 투자하냐고 놀라죠.
◆ 기획 의도를 보면 코로나19로 인한 계층 간 지식격차를 줄이겠다고 하셨는데요.
허성호 CP : 요즘 유튜브 등을 보면 가짜 뉴스도 많고 자칭 전문가들도 너무 많아요. 저희는 진짜 그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를 모셔서 사회 보편적인 지식으로 공유하자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저희가 미진한 면은 분명히 있지만 기획 의도는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해요. 고급 지식을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거나 지식을 모방하는 분들은 굉장히 많이 있어요.
◆ 유사지식인들 말씀이죠?
허성호 CP : 네. 유사 지식. 변형됐죠. 본인 뇌에서 구성을 다시 거친 해석들이 난무하는데 진짜 이 주장을 처음 낸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그 입으로 들어보자. 그래서 그걸 알리는 차원이었죠.
◆ 시즌2는 시즌1과의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김민지 PD : 여성 석학 비중이 굉장히 늘어났고, 인종이 다양해졌죠. 시즌 1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미권 석학 중심이 아니냐 하는 일부 비판이 있었어요. 그래서 시즌2에서는 뉴욕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제인 구달, 알렉시스 더든 등 학자까지도 나오죠. 그래서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2023년 방송되는 중국 기획에서는 아시아 석학들도 굉장히 많이 나와요.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하는 건 확실히 차별화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석학들 섭외과정이 궁금합니다. 주제들을 미리 정하고 섭외하시는지.
최현선 PD : 저희가 먼저 공부를 해서 초대장을 보내요. 초대장에는 '당신에 대해서 제가 이렇게 연구했다. 공부했다. 이런 주제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써요.
◆ 공부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한국에 없는 책들은 원서도 보고 해야 될 거 같은데.
최현선 PD : 가장 큰 어려움은 뇌과학이었습니다(웃음). 프로그램 첫 촬영이라 프로그램 색깔도 중요해서 영문 논문을 PDF로 다운 받아서 머리 쥐어뜯어가면서 다 읽었어요. 한글로 읽어도 잘 모르겠는데 영문으로 다 읽어가면서 했던 그렇게 공부했어요.
◆ 섭외나 촬영 과정에 까다로웠던 분은요?
박진우 PD : 피에르 가니에르라는,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 쉐프가 있어요. 처음 섭외부터 촬영까지 8~9개월 걸렸어요. 처음에는인터뷰 시간을 많이 빼주실 수 있다고 했는데, 촬영 직전에 한 시간으로 줄었어요. 그러다 저희가 스튜디오를 구했더니 그냥 자기 주방으로 가자고 했죠. 저희가 꽃을 사들고 쫓아가서 읍소하면서 한 시간이라도 더 빼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기분이 좋으셨는지 원래 하기로 한 요리 2개에서 3개로 늘려서 했어요.
◆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불평등'으로 읽힙니다.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장 지글러 교수도 인터뷰하셨는데. 책이 출간된지 꽤 됐지만 여전히 세계는 불평등합니다. 스스로 자괴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민지 PD : 엔딩에서 하셨던 말씀이 크게 와닿았어요. '나에게는 이 강연 촬영도 투쟁의 과정이다. 나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씀을 하세요. 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 나가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보통 그 나이(만88세)가 되면 글쓰기를 그만두고 편하게 살고 싶잖아요. 그런데 여전히 그 눈빛에서 오는 그 총명함과 분노가 느껴지고 그것을 스스럼 없이 말하는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 방송을 통해서 한 명이라도 마음을 돌리고 싶어하는 그 분의 절박함이 느껴져서 정말 감동했어요.
◆ 슬라보에 지젝 방송을 보면 한국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최현선 PD : 지젝은 총 네 번을 만났어요. 그것도 인터뷰 전까지. 한국 상황을 다 알고 계셨어요. 박카스 할머니부터 미투 운동, 강남역 10번 출구의 정확한 명칭에 이르기까지. 왜 사람들이 거기에 결집을 했는지 세세하게 그리고 급변하는 상황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계셨어요.
◆ 맥스 부트의 강연은 무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참 좋은 방송이 됐을 거 같습니다.
허성호 CP : 저도 역사 전공자지만 사학자들이 원래 말이 되게 많습니다. 아는 걸 많이 쏟아내려고 하는 습성이 있거든요. 역사 이야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들려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현재의 전쟁과 기술 발전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해줍니다. 원래는 3시간 정도 촬영하기로 했었는데 5시간을 찍고 가셔서 5부작으로 준비한 게 9부작이 됐어요(웃음).
◆ 혹시 해외 나가셔서 '두유 노 싸이'(Do you know PSY?) 하셨습니까.
허성호 CP : 요즘에 그런 부끄러운 일은 안 하려고 노력합니다(웃음). 밖에 나가보면 국격이 굉장히 많이 올라갔다는 걸 느낍니다. 옛날에는 'Do you know BTS?가 필요할 때가 있었어요. 특히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인정 욕구가 굉장히 강할 때요.
◆ 우리는 백인들에게 인정받고픈 욕구가 강하죠.
허성호 CP : 맞아요. 그런데 이제는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왔다는 걸 체감하죠.
대담 - 원성윤 아이뉴스24 통합디지털미디어센터장
진행·작성 - 김동현 아이뉴스24 디지털미디어센터 기자
/김동현 기자(rlaehd3657@inews24.com),원성윤 기자(better2017@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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