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 냄새 진동 정치권에 더 그리운 ‘忍冬의 향기’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인동초는 김대중과 동의어… 혹독한 정치겨울 이겨낸 강인한 덩굴풀
꽃 예쁘고 향기 좋아 천연항생제…꽃말은 ‘사랑의 인연’
唐草紋의 모델… 金銀花,귀신 쫓는 벽귀초 별칭도
인동덩굴은 풀 아닌 나무…忍冬草는 잘못된 용어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무시로 인동 삼긴 물이 나린다./자작나무 덩그럭 불이/도로 피어 붉고,/구석에 그늘 지어/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산중에 책력(冊曆)도 없이/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인동덩굴과 관련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시가 정지용 시인의 ‘인동차(忍冬茶)’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뒤 향기로운 꽃을 피운 인동덩굴의 잎을 말린 인동차가 장작불에 달군 훈훈한 온기가 눈보라 휘날리는 엄동설한, 적막한 산중 설국 암자에 수도하는 탈속 승려 또는 고옥의 노인의 창자를 타고 흐른다. 생과 사를 초월한 무념무상, 해탈의 경지에 인동차가 함께한다.
인동덩굴 꽃은 5∼6월 초여름에 흰색에서 노랗게 변한다. 노랗게 변한 향기로운 꽃잎을 따다가 그늘에 말려서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인동차가 된다.재스민차 못지않게 향기롭다.
인동이란 이름은 남쪽지방에서 겨울에도 잎이 푸르름을 유지하며 겨울을 보내므로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버텨내는 강인한 식물을 뜻한다. 북쪽지역에서는 잎의 일부가 남아서 반상록 상태로 겨울을 넘기는데 남도에서는 겨울에도 거의 잎을 달고 겨울을 넘긴다.
인동덩굴은 ‘인동초’로 잘못 알려져 곧잘 풀로 오인받는데 나무인 목본식물이다. 인동덩굴은 겨울을 이겨낸 후 곧바로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빨라도 5월 초여름이 돼야 첫 꽃봉오리가 맺힌다. 향기가 좋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다.
인동덩굴 꽃 모양은 특이하다. 다섯 장의 꽃잎 중 네 개가 합쳐져 위로 곧추서고 나머지 한 장만 아래로 늘어지며 그 사이에 다섯 개 수술과 한 개 암술이 혀를 내밀듯이 길게 뻗어 있다.
꽃을 피운 인동덩굴은 밤에 달콤한 향기를 내뿜어 야행성 나방을 통해 수정된다. 두 가지 색의 꽃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는 인동덩굴은 갓 피기 시작해 꽃봉오리가 벌어질 때는 흰색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노란색을 띠기 때문에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불린다. 귀신을 쫓는 벽귀초라고도 불린 겨우살이덩굴이다. 이포화(二苞花), 이보화(二寶花), 이화(二花), 쌍화(雙花), 다엽화(茶葉花) 등의 이름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타이완, 중국이 고향인 인동덩굴은 미국으로 건너간 뒤 그곳 초원을 온통 덩굴로 뒤덮어 유해식물로 지정되고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했다. 유럽으로 건너간 인동덩굴은 꽃에 꿀이 많아 꿀젖이라는 뜻의 ‘허니서클(honey-suckle)’이란 이름을 얻었다. 꽃을 잎에 물면 달콤한 꿀물을 맛볼 수 있다.
인동초는 김대중 대통령과 동의어다.
<DJ를 존경하는/사람들은/그를 인동초라 부른다네./모진 찬바람과/더불어 날아온 눈 속에서/서릿발 얼음과 함께피는 꽃/피빛 붉게 되어 절망을 털어버린 꽃/민중과 눈 맞추여 희망을 주던 꽃/더러는 인동초 같은 사람이/천년만에 나온 호남사람/백제땅 사랑이라 부른다네./해마다 겨울이면 피어나는 꽃/인동초 같은/그사람이 그립다 그리워/제2 제3의 인동초 같은 사람은/또 언제 현현하려나/기다리노니 기다리노니/두손 모아 기다리노니...>
문일석 시인의 ‘인동초’ 다. 김 전 대통령은 1987년 9월, 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망월동 묘역 참배 자리에서,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 동안, 강인한 덩굴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한 포기 인동초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동트는 민주와 민중의 새벽을 앞장서 열어갈 것입니다”라고 했다. 암살과 사형의 위기 등 갖은 풍상을 견딘 김 전 대통령은 인고의 상징인 인동초의 또다른 이름이다. 거짓과 속임수가 진실과 정의를 몰아내고,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정치인이 득세하는 부패한 우리 정치권에 인동의 꽃 향기가 그립다.
우리 선조들은 인동덩굴을 좋은 일만 생기는 길상화로 여겼다고 한다. 덩굴이 뻗어나가는 모양을 문양으로 형상화한 당초문(唐草紋)은 인동덩굴이 모델로,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와 등 유물과 고분의 문양등에 다양하게 활용됐다. 고구려 강서대묘 천장 굄돌과 발해의 도자기 그림을 비롯해 백제 무령왕의 관식, 천마총의 천마도 둘레에도 당초문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경복궁 자경전의 굴뚝에도 등장하는 당초문에는 인동덩굴처럼 조선왕실이 뻗어나가 번성하길 바라는 소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겨울을 견뎌냈으니 겨우살이덩굴이라는 이름이 일반적이다. 귀신을 쫓는 벽귀초라고도 불린 인동덩굴은 한방에서도 귀중한 약재다.
인동은 꽃이 예쁘고 향기가 좋아서 관상용으로 재배하기도 하지만 천연항생제로 부를만큼 뛰어난 약용식물이다. 해열 해독 항균 항염증 이뇨작용과 백혈구의 탐식 작용을 촉진시키는 등 아주 유용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꽃이 지고난 자리에는 열매를 맺으나 열매는 많이 달지 못하고 간혹 2~7개씩 모여달린다.열매색은 검다. 열매는 둥굴고 윤기가 나며 약용하지 않는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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