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VC도 이젠 사양산업?···유동성 위기에 줄줄이 매물로

류석 기자 2022. 12. 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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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케이인베 모회사, 사업 재편 위해 매각
국내 최초 VC 다올인베스트도 시장 매물로
정부 예산 축소에 중소형사들 위기감 증폭
지난 13일 열린 'Korea VC Awards 2022' 행사에 참석한 VC들의 모습
[서울경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 유동성 위기를 겪는 여러 기업이 벤처캐피털(VC) 자회사들을 앞다퉈 매물로 내놓고 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인식되며 우후죽순 생겨났던 VC들이 어느새 찬밥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시장 침체로 벤처투자의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고, 그나마 믿었던 정부 지원마저도 축소될 조짐을 보이면서 VC 산업 자체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코스닥 상장사 씨티케이는 자회사였던 씨티케이인베스트먼트 지분 97.5%를 에스씨엘헬스케어와 미래컴퍼니에 200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2018년 설립 당시 출자한 자금 200억 원만 그대로 받아온 셈이다. 씨티케이인베스트먼트는 2018년 설립 이후 ‘와이어트’, '룰루랩' 등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운용자산도 1000억 원 가량을 확보했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이 거의 없이 주당 거래가가 액면가 수준으로 책정됐다. 씨티케이인베스트먼트가 작년 5억 원, 올해 3분기말까지 12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자산가치가 하락한 영향이다. 이번 매각 과정에서 씨티케이인베스트먼트의 순자산가치(자본총계)는 19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됐다.

씨티케이는 공시를 통해 매각 이유에 대해 "사업구조 재편을 통한 주력사업 강화"라고 밝혔다. 회사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신사업으로 시작했던 벤처투자는 이제 중단하고,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씨티케이의 실적 악화도 매각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씨티케이는 지난해 14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으며, 올해 초부터 3분기까지도 누적 적자가 143억 원에 달한다. 3분기말 기준 매출액도 전년 대비 40% 감소한 510억 원에 그쳤다.

◇대형 VC도 M&A 매물로 등장하며 시장 '술렁'

또 최근 국내 최초의 VC로서 업계 맏형 역할을 해온 다올인베스트먼트(298870)(옛 KTB네트워크)도 시장에 매물로 등장하면서 벤처투자 업계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다올인베스트먼트는 1981년 설립된 국내 1세대 VC로,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등을 초기에 발굴해 유니콘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다올올인베스트먼트 출신 심사역들이 다른 VC의 대표를 맡거나 핵심 인력으로 활약하는 등 전문인력 산파 역할을 해온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남달랐다.

다올인베스트먼트가 매물로 나온 것은 다올투자증권(030210)의 현재 겪고 있는 유동성 위기 탓이 크다. 레고랜드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불이행 사태로 다올투자증권이 큰 위기에 빠지면서, 자금 경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올인베스트먼트 매각을 결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현재 다올투자증권은 다올인베스트먼트 보유 지분 52% 전량을 매각할 예정이며, 매각가는 2000억 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금융지주와 신영증권 등이 잠재 인수 후보로 꼽히고 있다.

한때 소프트뱅크그룹의 소프트뱅크벤처스도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었다. 현재는 매각 결정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매각 배경으로는 소프트뱅크그룹이 운용하는 비전펀드의 부진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소프트뱅크그룹은 비전펀드의 투자 손실이 대규모 반영되며 올해 2분기 역대 최대 규모인 3조1627억엔(약 30조 3382억 원) 순손실을 기록했었다.

◇모태펀드 등 예산 축소에 중소형 VC 위기감 증폭

이처럼 대형 VC들도 모회사의 경영난으로 M&A 시장에 매물로 등장하는 상황에서, 중소형 VC들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헐값에 매각되거나 매각이 어렵다면 회사 자체를 청산하는 사례도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펀드 결성을 포기했거나 사업 철수를 준비하는 VC들이 몇몇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신규 펀드 결성에 실패하고, 투자가 중단되면서 개점휴업한 VC들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년간 미투자’ 사유로 시정명령을 받은 곳이 이랜드벤처스, 서울경영파트너스 등 8곳에 달했다. 작년에는 시정명령을 받은 곳이 2곳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높아진 수치다.

또 올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벤처투자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드는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VC들의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3년 모태펀드 출자예산으로 약 3135억 원을 편성했는데, 올해 예산 5200억 원보다 40% 줄어든 규모다. 또 여러 정책금융기관에서도 벤처투자에 대한 집행 금액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모태펀드 등 벤처 예산 증액은 현재로선 재정 여건 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예산을 줄이는 대신 여러 벤처투자 규제를 해소해주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류석 기자 ryupr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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