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은폐냐? 프레임 수사냐?…‘서해 피살’ 사건 파장 어디로
‘서해 사건’ 쟁점 따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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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21일 새벽 1시58분(추정) 서해 소연평도 남방 2.2㎞ 해역. 해양수산부 소속 서해어업지도관리단 공무원 이대준(당시 47살)씨가 실종됐다. 11시간여 뒤 해경이 정식으로 이씨의 실종 신고를 접수했지만,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사라진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우리 당국이 그의 위치를 파악한 건 이튿날인 9월22일 오후 5시 안팎. 이후 조사를 보면, 앞서 이씨는 이날 오후 3시30분께 황해남도 강령군 구월봉 인근 해역에서 북한 어로작업 중이던 수산사업소 부업선에 발견됐다. 전날 그의 마지막 흔적이 확인됐던 무궁화 10호가 있던 곳에서 북서쪽으로 27㎞나 떨어진 곳이었다.
북한 쪽 경비담당 군부대가 출동했고, 80m까지 접근해 신원확인을 시도했지만 배 위로는 끌어올리지 않았다. 그러다 오후 7시40분 북한군이 바다 위에 떠 있던 이씨를 한차례 잃어버렸고, 다시 1시간여 뒤 등산곶 해역에서 그를 두번째 발견했다. 하지만 결국 이씨는 구조되지 못하고 피살됐다. 이런 일련의 정황은 통일부가 작성한 ‘서해상 우리 국민 피격사건 관련 일지’, ‘북측통지문’ 등에서 드러난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은 2년여 뒤 윤석열 정부에 의해 재조명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사건에 관여했던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해양경찰청장이 구속됐다가 적부심에서 풀려났고,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구속 수감된 상태로 지난 10일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13일 노영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14일 박지원 국정원장이 검찰에 불려나가 조사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두 축인 국가안보실과 대통령 비서실을 비롯해 국가정보원, 국방부,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등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검찰의 주장을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공무원 이씨의 죽음을) 은폐하려 했고, 월북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일 이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 소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문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2003년·김대중 정부의 4억달러 대북지원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감스럽지만 책임지셔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해, 검찰 칼날의 최종 목표가 누구냐는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①실족? 자진 월북?
진실 공방은 2020년 9월21일 새벽, 이씨가 바다에 스스로 ‘뛰어들었느냐’, 뜻하지 않게 ‘빠졌느냐’에서 시작된다. 이씨가 머문 곳엔 하필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없었다.
‘자진 월북’이 아닌 ‘실족’에 무게를 두는 건 검찰이다. 검찰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며 “이씨가 월북을 하려고 했다면 최단 거리로 엔엘엘(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대연평도 북쪽 해변에서 2.7㎞ 떨어진 북한 내 섬으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씨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등에서 잔뼈가 굵은 1등 항해사라는 점을 들어 “서해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경로를 충분히 알수 있었음에도 거리가 10배(27㎞)인 등산곶을 목표로 장시간 표류를 계획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씨가 북한군에 발견됐을 당시 지녔던 ‘소형 부유물’을 무궁화 10호에서 가져갔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점, 이씨가 북한 쪽에 “월북”이란 표현을 밝힌 게 아닌 북한 관계자들끼리 “월북”이라는 말을 썼다는 점, 이씨가 “월북”이란 말을 썼다 해도 단순히 북쪽 경계를 넘어왔다는 의미였을 것이란 점 등을 거론하며 ‘자진 월북’이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은 이대준씨 피살사건 당시 합동참모본부가 내놓은 ‘서해 등산곶 해상 아(我) 실종자 발견 관련 적 활동 평가’ 분석보고서에서 “실종자(이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하는 근거로 제시된 것들을 반박하는 것이다.
검찰은 추가로 이씨가 착용했던 구명조끼에 ‘한자’(중국어)가 적혔지만, 무궁화 10호에 비치된 구명조끼엔 비슷한 종류가 없었다는 주장도 영장에 끼워넣어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근거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서훈 전 실장 등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이씨 피살 사건을 자진 월북으로 조작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앞서 당시 국방부는 △다른 승선원과 달리 구명조끼 착용 △시시티브이 사각지대 슬리퍼 발견 △소형 부유물에 의지한 점 등을 통해 ‘자발적 입수’를 방증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이씨의 근무 경험’을 보더라도,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정박해 있던 당시 기상은 파고 0.5m로 양호해 실족 가능성이 낮으며, 실족을 하더라도 배 양현 선미에 수면까지 줄사다리가 있어 이씨가 다시 배에 오를 수 있었”던 터라 그의 경험을 봤을 때 오히려 ‘자진 월북’의 가능성이 높다는 반박도 나온다.
검찰이 주장하는 ‘구명조끼에 적힌 한자’와 관련해서도 서 전 실장 쪽은 “검찰 영장에서 구명조끼와 한자가 확인된 건 2020년 9월28일이고, 당시 국가안보실 등이 월북 여부를 판단한 것은 이보다 한참 앞선 시기인데 검찰이 엉뚱한 근거로 서 전 실장의 혐의를 구성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②“은폐 시도” vs “프레임 수사”
해경이 이씨의 실종 신고를 접수한 건 21일 낮 12시51분께다. 해경·해군 등이 인근 해역 수색에 나섰지만, 이씨를 찾지 못했다. 검찰 영장에 따르면, 이씨 소재가 최초 확인된 건 이튿날인 22일 오후 3시30분께, 군이 북쪽에서 실종자 발견 정황을 포착하면서다.
여기서 검찰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사실을 보고받고도 어떠한 지시나 조치·대응도 하지 않는 사이 이씨가 피살됐다”며 미구조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서 전 실장은 이날 오후 6시35분께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해 공무원 실종 및 발견 내용을 담아 보고했다. 또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에서 이씨에 대한 신원 확인과 구조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최소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봤다”고 반박하고 있다. 당시 에스아이(SI·Special Intelligence) 첩보에는 “(이씨가) 보안원한테 살려달라 한다”는 북한 쪽 대화 내용만 있었던 게 아니라 “살았으면 건지고”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실종자 정황을 확인한 지 6시간 뒤인 밤 9시40분께 이씨가 피살됐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다시 청와대가 긴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피살 첩보가 접수된 다음날 새벽 1시 당시 서 실장과 박지원 국정원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참가하는 ‘1차 안보관계 장관회의’가 열렸다.
검찰은 당시 회의가 이씨 죽음을 확인한 뒤 이를 은폐하려는 취지로 열렸다고 본다. “(청와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이씨가 죽음에 이르게 되자 (서 전 실장) 자신과 정부에 대한 비판과 책임 추궁을 염려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미칠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 피살사건을 은폐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검찰은 영장을 통해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며 사건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해당 ‘원자료’는 회의 중간에 수시로 추가됐고, 이 과정에서 (주검) ‘소각’ 증거로 알려진 연평도 군부대 열상감시장비 자료도 추가됐다. 그런데 검찰은 참가자 전원이 이를 미리 다 알고 (피살 사실을) 은폐한 것처럼 프레임을 짜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정부 장관을 역임한 또다른 인사는 “당시 청와대는 북쪽 해역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매우 제한된 정보로 정무적 판단을 내려야 했다”며 “지금 와서 결과만 놓고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③“첩보 삭제” vs “배포선 조정했을 뿐”
검찰이 또다른 쟁점으로 삼고 있는 건 당시 서 전 실장 등이 은폐를 목적으로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는 대목이다. 실제 검찰은 영장에서 “9월23일 새벽 1시 1차 안보관계 장관회의 이전에 이미 밈스 등 첩보유통망을 통해 이씨의 피격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이를 은폐하기 위해 국정원, 통일부, 국방부,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등에 (이 사건은) 절대 비밀이니까 보안에 유의해라”, “외부에 이야기가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 지시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를 통해 서 전 실장 등이 이대준씨를 구조하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고, 정부의 대북 화해 정책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려는 부당한 목적이 있었다는 게 검찰 쪽 논리다. 아울러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사건 은폐’를 시도하면서, 북한군이 이씨를 사살한 ‘군사적 도발’에 국방부의 군사대비태세와 해경의 해상경계태세 강화, 국정원과 통일부 등의 비상 상황 대비 태세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장관급 인사의 말은 다르다. “회의 당시만 해도 청와대 안팎 수백명이 에스아이 첩보를 알고 있었는데 (은폐 지시가) 있을 수 있냐.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서 전 실장도 그렇지만 다른 참석자들도 은폐라는 생각 자체가 있을 수 없었다.”
검찰은 영장에서 “보안을 빙자한 사건 은폐 지시를 받은 서욱(국방부 장관)이 합참에 전화해 ‘작전보안을 유지하고 자료가 유출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에 따라 통신첩보수집 군부대 예하 18개 부대 5417건의 첩보와 밈스에 게시돼 있던 60여건의 첩보보고서가 삭제됐다”고 했다. 하지만 서 전 실장과 서욱 전 장관은 각각 검찰 조사 등을 통해 “지시를 한 적이 없다”, “(삭제가 아니라) 첩보 배포선을 조정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은폐를 넘어 ‘적극적인 조작’ 가능성에도 무게를 둔다. 해양경찰청이 내놓은 “이대준 신발 벗어놓고 실종, 수색 계속 중”이라는 보도자료(9월23일 밤 9시21분), 통일부가 유엔사와 북한군 간 판문점 채널에 보낸 “실종자가 귀측으로 표류했을 가능성, 실종자 발견되었는지 알려주기 바람”이라는 대북 통지문(9월23일 오후 4시35분)이 이씨의 피격 사망을 고의로 숨기고, 이씨의 행동을 월북으로 몰아가기 위한 사전작업(허위작성공문서행사)이라는 주장에 이른다.
이에 대해 노영민 전 실장은 지난 10월 서 전 실장 등과 함께한 국회 기자회견에서 “근거 없이 월북으로 몰아간 적이 없고, 그럴 이유나 실익도 없다. 자료 삭제 지시도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진실의 조각은 어디에
2020년 9월24일 오전 11시 국방부는 확인된 일체의 사실을 공개하는 브리핑 뒤 북한 만행을 규탄했다. 이씨가 숨진 지 1일13시간가량이 지난 시점이다. 이튿날 북한은 입장문을 내놓는다.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으며,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은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 북남 사이 관계에 재미없는 작용을 할 일이 우리 측 수역에서 발생한 데 대해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북한 쪽 입장문에도 분명한 진실의 단서는 없다. 서 전 실장은 지난 9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년 설을 하루 앞둔 1월20일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법정 공방에 돌입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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