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영권의 메시지...'16강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 [국영호의 스포츠人사이드 #25]

국영호 2022. 12. 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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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人을 통해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찾아봅니다.
연합뉴스 제공
“이제 토너먼트(16강)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조별리그를 통과할 수 있는지는 확인했고, 연습하고 고민하고, 온 힘을 다해 토너먼트에서 이길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월드컵 출전 ‘삼수’ 만에 16강 진출에 성공한 김영권(32·울산 현대)은 한국축구의 미래를 얘기했다. 정리하자면, 대한축구협회의 슬로건처럼 무빙 포워드(Moving forward), 즉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자'는 ‘전진’을 강조했다.

과거 ‘후진’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일궈낸 한국축구는 2014년 브라질 대회(1무2패)와 2018년 러시아 대회(1승2패)에서는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여러 이유로 인해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이상 브라질 대회), 슈틸리케, 신태용(이상 러시아 대회) 등 여러 감독이 거치며 선수들은 혼란스러워 했고, ‘16강 유산’은 그렇게 흐지부지됐다. 철학을 구현할 새도 없었고, 제대로 된 ‘과정’이 없이 처절하게 ‘결과’를 좇아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축구협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인데, 다행히 ‘학습 효과’로 인해 지난 4년은 뚝심으로 벤투 감독을 밀고 나갔고, 12년 만에 16강 진출해 반등에 성공했다.

이번에는 ‘16강 유산’을 이어갈 때다. 3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서 활약해 이 과정을 모두 경험하고 A매치 100경기에 출전하는 등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 김영권은 이제 브라질과 러시아 대회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수뿐만 아니라 대표팀을 둘러싼 모든 이들이 함께 할 때 비로소 ‘무빙 포워드’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연합뉴스 제공

“한국축구는 앞으로가 정말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선수들만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팬들이 있어야만 저희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영권과의 이 대화는 400회를 맞은 MBN 스포츠 토크쇼 ‘스포츠야’에서 이뤄졌다. 4년 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을 무너뜨린 결승골을, 올해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과 3차전에서는 역전승의 발판을 놓는 동점골을 넣은 ‘3차전 기적의 사나이’ 그 김영권이다.
MBN 스포츠야 제공

‘16강 유산’ 계승의 필요성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16강 유산’을 이어가려면 ‘포스트 벤투’, 즉 차기 감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다음 감독은 감독 본연의 높은 지도력은 기본이고, 벤투 감독의 그것을 심화시켜야 하며, 이번 16강을 경험한 선수들을 능력도 앞으로 더욱 끌어올려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2002년 히딩크 이후 그랬던 것처럼, 기대치가 높아져 여러모로 비교될 수밖에 없는 부담도 이겨내야 한다.

국적을 막론하고 적임자를 찾는 게 최우선이고, 국내냐 국외 감독이냐는 그 다음 문제이긴 하지만, 국내/외 감독을 분리해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게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12년의 국가대표와 해외 소속팀 생활 중에 다수의 외국인 감독을 경험한 김영권은 이렇게 설명한다.

“국내 감독님 같은 경우, 소통이 직접적으로 된다는 게 장점이지만, 외국 감독님은 통역을 거쳐서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적인 부분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외국 감독의 장점은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는 점 같아요. 선수들 정보를 모른채 처음부터 공정하게 시작한다는 점이죠. 선수에 대한 편견 없이 시작한다는 점이 대표 선수들한테는 가장 좋은 점이 아닐까 싶어요.”

Q.벤투 감독 후임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호한다는 뜻인가요?
“음, 노코멘트 안될까요. 하하.”
연합뉴스 제공

벌써부터 현직 및 ‘야인’인 국내 감독들이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보이고, 동아시아 팀을 경험한 유럽 출신 외국인 감독들이 이력서 제출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벤투 감독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펼친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매력적인 축구를 계승하려면 아무래도 외국인 감독에 무게가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데, 대한축구협회 고위층도 공감하고 있고, 고민 또한 깊다. 물론, “국내 감독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의견도 거세다.

(※한편으로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부터는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본선 참가국이 대폭 늘어나고, 아시아 출전권도 4.5장에서 8.5장으로 4장이나 늘어나면서 본선 진출이 ‘매우’ 수월해진다. 쉽게 말해 아시아 8위만 해도 본선에 간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값비싼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게 맞느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국내 감독도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의 근거는 현재 선수층이 워낙 탄탄하고 잠재력까지 갖췄다는데 있는 것 같다.)
AP연합뉴스 제공

‘리더’를 믿는다는 것

아무튼 내년 초 선임될 감독이 대체로 올바른 방향으로 대표팀을 지휘한다고 믿는다면, 벤투 사례처럼 월드컵 예선부터 본선 끝까지 맡기는 강단을 다시 한번 보여달라고 선수들은 벌써 당부한다. 대표팀의 조직력 유지와 안정화, 그리고 지속적 발전의 측면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내년 카타르 아시안컵 성적에 따른+추가 계약, 즉 1+3년 형태의 계약 기간이라면 또다시 과거처럼 ‘내용’보다는 ’결과’에 쫓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년 동안 준비한 결과가 이렇게 좋을 수 있다는 걸 선수들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도 느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다음 월드컵(2026 북중미)도 (이렇게) 준비를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저희 선수들 편에 서서 꿋꿋하게 지켜줄 감독님이 꼭 (선임)됐으면 좋겠습니다.”

말미에 불쑥 나온 ‘선수 편에 선다는 것’은 곧 감독이 외부의 공격에 선수의 방패가 되어주면서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인데, 가끔 “감독님을 위해서 뛰었습니다”와 같은 인터뷰가 나올 때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일부 선수가 이런 인터뷰를 했는데, 선수들이 현재 어떤 유형의 감독을 원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벤투 감독이 그랬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독님을 결정하는 부분에선 축구협회 입장도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선수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선수 입장도 굉장히 중요하고, 또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스타일의 플레이를 좋아하는지 이런 부분도 귀담아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차기 감독을 결정할 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선수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참고할지 궁금한 대목이다. 물론 위원회가 감독 선임 등 대표팀의 큰 그림을 그리는 주체이니만큼 결정은 존중해야 한다.
연합뉴스 제공

‘16강 자산’의 극대화

결국 어떤 감독이 선임되든 ‘16강 유산’ 가운데 핵심인 선수들의 능력을 얼마나 극대화하느냐 여부에 다음 월드컵의 성공이 달려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선수들의 ‘경험과 나이’는 큰 무기인데, 현재로선 전망이 밝다. 현재 주장 손흥민과 황의조, 이재성, 김진수가 30세에 접어들긴 했지만, 김문환이 27세, 황희찬과 황인범, 김민재는 26세, 백승호 25세, 조규성 24세, (작은) 정우영 23세, 이강인 21세에 불과하다. 대다수가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때 기량이 절정에 다다를 시점이다.

Q.이강인 선수가 이렇게 인상 깊은 활약을 펼칠 줄 예감했나요?
“어린 나이에 그렇게 축구를 한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것 같아요. 강인이의 노력도 있겠지만 저는 강인이가 ‘타고났다’고 생각하거든요. 타고난 부분이 정말 부럽고, 어린 나이에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부러웠고요. 저도 팬으로서 앞으로 정말 기대하고 있어요.”

Q.조규성 선수 활약도 예상했나요?
“좋은 선수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활약을 할 줄은 생각 못했고요. 큰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한데다 나이도 어리니까 앞으로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장난도 많이 쳤어요. ‘형 연락은 이제 안받겠지?’, ‘대표팀을 이제 아래 보듯이 보는 것 아니냐’고 장난쳤는데 ‘아, 형 하지마세요’라고 하더라고요. 한번 지켜보려고요. 하하.”
연합뉴스 제공

‘경험’의 힘

현재 32세인 김영권의 경우, 4년 뒤 36세가 되기 때문에 출전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의 페페와 브라질의 다니 아우베스가 39세 수비수였던 점을 감안하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김영권의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 특히 토너먼트 및 각종 우승 경험은 대표팀에 농도와 무게를 더해줄 수 있다. 물론, 기량을 유지한다는 전제에서다.

“4년 후는 사실 너무 먼 이야기이고, 제가 그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1년, 1년이 중요할 것 같아요. 어떻게 몸 관리를 해서 4년을 잘 견디느냐가 관건인데, 지금부터 잘 준비한다면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음만은 도전해보고 싶어요.”

Q.이번 월드컵 득점도 운이 좋았다고는 하지만 운도 실력, 경험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요?
“슈팅한 그 위치에 있었던 건 사실 공이 안보여서 보려다가 가있던 건데 그것도 운이 아닐까요. 하하. 제 앞에 그렇게 공이 떨어질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이밍도 그렇고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Q.호날두가 등으로 어시스트한 거라고 팬들이 좋아하는데, 이참에 감사 인사 한번 한다면요?
“(호)날두 형, 의도치 않았지만, 또 어떻게 어시스트가 돼서 고맙다는 말 전해주고 싶고 앞으로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AP연합뉴스 제공

‘우승’이라는 한

차기 월드컵으로 가는 길목에는 카타르 아시안컵이 있다(※내년 6월 개최 예정이나 내후년 1월 변경 가능성도 존재). 대표팀 전력을 중간 점검하는 한편, 아시아 정상에 도전해야 하는 대회인데, 과거 대표팀 베테랑 선수가 은퇴 무대로 삼아왔기에 김영권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2011년 카타르 대회, 차두리는 2015년 호주 대회, 기성용과 구자철은 2019년 UAE 대회를 마치고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아시안컵 우승이 없는 김영권(※2015년 호주 대회 2위)은 우승을 정조준한다(※대표팀은 1960년 대회 우승이 마지막). 일단 우승을 목표로 뛰고 나서 태극마크를 지속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가 없는 게 아쉬워서 꼭 우승하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카타르 아시안컵이 기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타르에서 ‘어게인 2022’해야 하지 않을까요.”

Q.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우승하면 은퇴하는 건 아니죠?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월드컵 3회 출전과 4회 출전은 또 다른 얘기잖아요. 그래서 (다음 월드컵 출전) 기대는 하고 있어요.”
MBN 스포츠야 제공

김영권은 중국 광저우에서 7년을 활약하며 리그 8회 우승,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등을 했고, 일본에서는 5년 간 활약하며 FC 도쿄와 오미야 아르디자, 감바 오사카에서 뛰었다. 올초 국내로 돌아와 울산 현대에 17년 만의 우승을 안겼다. 23세 이하 대표팀으로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국가대표팀으로는 동아시안컵에서 2015년과 2019년 우승을 경험했다.

침착하고 감각 있는 수비와 발기술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정감은 켜켜이 쌓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경험이 기적을 만든 게 아닐까 싶다. 한국축구의 자산으로서 경험을 전수하고 롱런하길 바란다.

[국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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