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기발함은 어디까지…턱 콤플렉스 보듬어 복합 예술로
“천재다 천재!” 그를 눈앞에 두고도 낯간지러운 말이 술술 나왔다. 그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지난 10일 저녁 7시 그 순간에 경험한 이창호는 딱 그랬으니까. 코미디언 이창호가 서울 상수동의 어느 골목길, 집을 개조해서 만든 작은 전시장에서 개인 공연을 열었다. <턱치회>다. 공연명만 들어서는 그가 무대에서 자신의 턱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원초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연상된다. 가끔은 팬들의 ‘턱’도 무대에 불러내면서. 한바탕 표 구하기 전쟁을 치른 그의 팬들조차도 “무슨 내용인지 상상이 안 간다”고 말할 정도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코미디인가, 전시회인가, 행위 예술인가. 이창호와 함께 <턱치회>를 기획한 소속사 메타코미디 김성구 크리에이티브 매니저는 “행위 예술을 포함한 전시회”라고 정리했다. 이 설명도 다 담았다기에는 아쉽다. 그냥 ‘이창호의 코미디, 버전1’이라고 해두자. 입구를 중심으로 오른쪽 뒤편에는 그가 힘들었던 시절 자주 갔던 영등포 시장과, 가장 편안한 공간인 집을 배경으로 각각 촬영한 턱 사진을 전시했고, 가운데에는 그의 턱을 다각도에서 들여다본 엑스레이 사진과 석고상이 놓여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행위 예술 퍼포먼스는 <턱치회>의 핵심이다. 관객들이 차례로 높고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는 이창호의 턱을 만지고 지나간다.
그냥 모인 턱들이 아니다. 이창호의 턱들은 콤플렉스로 연결되어 있다. 이창호는 <턱치회>를 통해 자신의 콤플렉스였던 두꺼운 턱을 과감하게 내세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고 말한다. 이날 공연이 끝난 뒤 <한겨레>와 만난 이창호는 “주름진 턱을 가진 나를 보며, 옥죄어온 시선에서 벗어나 본인의 콤플렉스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턱 사진들은 각각 메시지를 갖는다. 김성구 매니저는 “턱을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은 의학적으로 이창호는 턱이 있다는 걸 증명해준다”는 코미디적인 이유와 함께, “엑스레이만 보면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데도 우리는 그동안 껍데기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왔다.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봐달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턱을 만지는 퍼포먼스에서도 입 위쪽은 메이크업을 해서 미디어 속의 이창호를 표현했고, 턱이 있는 입 아래는 하지 않았다. 그는 “콤플렉스를 그대로 드러내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됐음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턱치회>는 ‘이창호의 턱을 만진다?’라는 말만 들으면 그저 웃기기만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예술성도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였다. 코미디가 기본 바탕인데 그들은 웃기려 들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진지하게 임했다. 전시회 사진을 설명해주는 이는 코미디언이 아니라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 최예림 도슨트다. 이창호의 행위 예술 퍼포먼스 때는 임이환 첼리스트가 현장에서 라이브로 연주했다. 이창호는 관객들이 턱을 만지는 내내 웃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콤플렉스를 떨쳐내는 의식이라도 하는 듯 진중한 표정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간 이들도 공연을 볼 수록 마음이 가득 채워져서 나왔다. 공연장을 찾은 한 관람객은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무엇이 싼마이고 무엇이 고급인가, 예술의 계층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결국, 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편견은 무엇인가를 향해 가는 이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김성구 매니저는 “사람들이 코미디 장르를 예술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식을 깨고 싶었다. 신선하고 파격적이면서 코미디 자체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창호는 “한때 활발했던 코미디언의 장르를 넘나드는 퍼포먼스는 유튜브 시대를 맞아 비디오로 집중된 경향이 있다. 앞으로도 영상이나 공연을 넘어 미술, 전시, 사진, 그라피티, 무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콜라보’를 하며 코미디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턱치회>는 그 첫번째인 셈이다.
< 턱치회>는 이창호와 함께 메타코미디의 김성구 매니저, 이정빈 브랜드 매니저, 이종선∙ 이동림 디자이너, 강민지∙이한결∙곽승은 크리에이티브 매니저가 함께 완성했다. 이창호는 이 공연을 팬들의 사랑에 감사하고, 코미디의 발전을 위해 사비를 들여 제작했다. 시작은 간단했다. “팬들이 내 턱이 두껍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턱을 갖고 뭔가를 해볼까.” 이창호의 콤플렉스였던 그 턱은 팬들의 사랑으로 전시 공간에 나오게 됐고, 그 덕에 수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게 됐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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