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회 10년' 시행 지역 33배 급증 속 부작용 속출
44개 동 전면 시행 고양시는 단 2곳만 자치위원 정원 충족
(고양=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풀뿌리 자치 활성화를 위해 10년 전에 도입한 주민자치회가 빠르게 확산했으나 각종 난맥상이 드러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2020년 국회의원선거와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자치회가 급증하면서 선거에 악용되고 행정기관의 부당 간섭을 받는가 하면 금품 비리 의혹 등에 휩싸여 숱한 파문을 일으켰다.
자치위원들이 자질 부족과 파벌 조성, 사익 추구 등 각종 부조리를 견디다 못해 대거 사퇴한 탓에 상당수 주민자치회가 정족수조차 채우지 못한 채 개점 휴업 상태를 맞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서 급증했으나 성과는 빈약
주민자치회는 최일선 행정 단위인 읍·면·동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해 2013년 전국 31곳에서 시범 도입됐다.
동 행정 자문역할에 한정된 주민자치위원회를 대체한 주민자치회는 주민총회 소집과 마을 축제 개최, 소식지 발간 등 독자 업무 외에 노인대학이나 자전거 순찰대, 주민자치센터 등 시 위탁 사무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공감할만한 성과를 좀처럼 거두지 못해 박근혜 정부가 끝난 2017년 5월까지 전국에서 95개만 추가됐다.
이처럼 지지부진하던 주민자치회는 문재인 정부에서 확연히 달라졌다. 2020년 6월 기준 626곳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21년 12월에는 전국 1천13곳으로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가 20대 국정전략에 주민자치를 담고 자치위원 자격을 완화해 나이 하한선을 18세로 낮추고 외국인 참여를 허용하는 표준조례안을 만들어 지자체에서 활용토록 독려한 결과다.
민주당 선호 vs 국민의힘 외면
주민자치회를 시행한 읍·면·동이 도입 10년 만에 약 33배로 팽창한 데는 더불어민주당의 영향이 컸다.
연도·지역별 현황을 보면 2020년 4월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급증했고, 대구와 경북, 제주 등 3곳을 빼고 민주당이 싹쓸이한 광역자치단체에서 증가 속도가 매우 빨랐다.
박원순 전 시장이 거액을 지원한 서울에서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져 지난해 말 200곳으로 파악됐다. 인구가 약 400만 명이나 더 많은 경기도 209곳과 비슷한 수치다.
하지만 서울시는 진보 성향의 민간 종합지원센터를 만들어 약 950억 원을 지원했으나 관변단체로 전락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민의힘 출신이 광역자치단체장을 맡은 대구와 경북의 주민자치회는 각각 6곳과 28곳에 그쳤다.
인구가 더 적은 강원(48곳)과 전남(54곳)에 한참 뒤지는 수치다. 무소속 단체장인 제주에는 주민자치회가 아예 한 곳도 없다.
전국 읍·면·동의 약 30%가 주민자치회를 운영할 만큼 양적으로 성장했으나 여태껏 주목할만한 성과를 낸 곳은 매우 드물다.
무보수 명예직인 자치위원에 대한 우수 인력의 외면과 자치회 내분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정치권 결탁·금품 비리·관권 개입 등으로 오염
2013년 6월 주민자치회 최초 시범 사업지로 선정된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과 세종시 부강면 등 일부 지역에서는 시민자전거 대여 등 특화사업으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대다수 지역에서는 자치회장 권력화와 정치 중립 훼손, 금품 비리 의혹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경기 고양시의 한 주민자치회는 2020년 전국 주민자치 박람회에서 대상까지 받았으나 불과 1년 만에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부조리 지역으로 고발됐다.
자치회가 동장 개입 등으로 심한 내분을 겪다가 두 패로 갈라져 회장이 2명인 기현상이 빚어졌다는 글이 올랐다.
지방선거 시기에는 자치회가 정계 진출을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되거나 선거판에 휩쓸려 정치 중립 의무를 훼손하는 일이 속출했다.
인천 계양구에서 한 마을의 자치위원 32명 중 무려 23명이 사임해 특정 후보의 선거 운동원으로 활동하거나 본인이 구의원에 도전한 것이 그런 사례다.
충남 당진에서는 자치회 음악회에 현금을 기부한 기업인이 시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보행공간을 넓히면서 평창동 자치회에 1천600만원을 제공해 반대 여론을 무마하려 했으며 그 돈의 사용처조차 석연찮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고양시 사례로 본 자치회 개선 방안
그동안 7개 동에 그친 주민자치회를 올해부터 전체 44개 동에서 전면 시행한 고양시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파문과 일탈 현상이 생겼다.
고양시정연구원이 전체 자치위원 1천202명 중 644명(59%)을 설문 조사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소수 기득권 유지와 편 가르기, 사익 추구 등 부작용이 담겼다.
자치위원들은 상대 의견 무시와 독단 운영, 업무 비협조, 자기과시 등으로 갈등을 겪다가 무더기로 사임해 17일 현재 정원을 유지한 곳은 단 2곳에 불과하다.
올해 3천만 원씩 편성한 보조금을 90% 이상 집행한 주민자치회는 19개 동에 그쳐 절반 이상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또한 6시간 교육만 받고 추첨으로 자치위원이 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질 부족 탓에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추천 과정에서 무자격자를 가려낸 다음 추첨하되 추천 주체를 명확히 하고 사회적 약자 추천 비중을 할당함으로써 공개 추첨 위원의 함량 미달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시정연구원이 제언했다.
또한 현행 자치위원 선정제도를 유지하려면 주민자치에 밝은 인물 중심의 인재 풀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부언했다.
시는 특정 성향의 자치공동체지원센터가 자치 예산의 47%를 사용하는 폐단을 막고 주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에 주민참여포인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주민들이 지역 특색을 살린 마을 가꾸기나 행정 제안·의견조사 등에 참여할 때마다 포인트를 받아 지역 상품권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토록 하는 제도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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