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클릭하기] 프레임이라는 전가의 보도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2022. 12. 17. 08: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오늘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미국의 '부동산 세금'(Estate Tax)은 200만 달러 이상의 상속자에게 부과되었다. 아들 부시 행정부(2001~2009년)는 이를 '사망세'(Death Tax)로 명명해 부정적 낙인을 찍고 대중을 현혹시켜 부자 감세를 관철시켰다.

석유기업, 자동차 회사 등의 책임 주체가 연상되는 '지구 온난화'는 자연의 변덕처럼 느껴지는 '기후 변화'로 대체되었다. 영화 <바이스>(애덤 메케이 감독, 2018)는 홍보 전문가 프랭크 런츠가 이 작업들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지목하는데, 개인적으로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2008년 미국 연수중이던 박건식 PD(현 MBC 공영미디어국장)의 “지구 온난화와 북극의 눈물” 칼럼(PD 저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프랭크 런츠를 수면 위로 올린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하며 박건식 PD는 '용어 싸움' 속에서 북극의 황폐화가 시시각각 가속화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이때의 '용어 싸움'을 프레임 이론으로 정리했다. 초판은 부시 행정부 시절이었던 2004년에 나왔다. 레이코프는 머리말에서 “당시 공화당은 쟁점의 프레임을 짜는 데 민주당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2004년을 열면서 나와 동료들은 프레임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를 넓힘으로써 민주당이 이 흐름을 뒤집을 수 있기를 바랐다”고 서술한다.

그의 프레임 이론은 거칠게 말해, 진보와 보수는 각기 서로 다른 의미 프레임을 가지며 개인 또한 진보와 보수 양 쪽의 가치를 무의식의 수준에서 내면화했기 때문에 어떻게 프레임을 활성화하는가에 따라 대중 설득 효과가 달라진다고 파악한다. 뇌과학, 인지심리학, 언어학에 기반하여 사망세,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결혼, 자유, 임신중단, 복지 등 여러 사회적 쟁점의 의미 프레임를 대조하는 레이코프의 작업은 꽤나 신선했다.

▲ EBS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예고편 갈무리.

손석희 교수가 호스트였던 EBS의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3부작(2012)은 프레임 이론을 대중적으로 한국의 시청자에게 알렸다. 레이코프의 인터뷰를 가져오고 정치 홍보의 명암을 부각시켰다.

JTBC로 자리를 옮긴 뒤 손석희는 한국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2015)에 추천사를 썼다. 프레임은 그의 '앵커 브리핑'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였다. 방송인 김어준도 프레임 개념을 유행시킨 인물이다. 교통방송의 <김어준의 뉴스공장>(2016~)을 진행하며 보수 언론이나 정치인의 언술등을 비평하는 가운데 그들의 기만적 프레임이 자주 거론되었다. 이후 프레임은 공식적 진술의 저의를 의심하는 일상적 비평 용어가 되었다.

당장 이 글을 쓰는 오늘 기준, 인터넷 포탈에서 프레임으로 뉴스를 검색하면 상단의 세 기사가 '화물연대 파업으로 프레임 강화'(뉴스1), '초부자 감세 프레임은 무식의 소치'(머니투데이), '야(野), 검찰 공화국 프레임 씌울 것'(YTN)이다. 여야, 진보와 보수 상관없이 공작·조작· 협잡의 프레임이 상례화되었다.

얼핏, 프레임 개념을 통해 언론 비평의 새 지평이 열린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이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프레임 이론을 접했을 때 가졌던 의문은 모두가 동등하게 프레임을 확산시킬 수 있는가였다. 레이코프는 누가 더 프레임을 잘 재구성하는가에 따라 대중 설득 결과가 공정하게 달리 나타날 것으로 보지만 특정 프레임을 보다 반복적으로, 널리, 강렬하게 실어 나를 수 있는 이들은 대체로 기득권이다.

더불어 어떤 기득권은 특정 프레임을 우세하게 전할 수 있는 행정력과 강제력을 지닌다. 예컨대 이태원 참사 관련 대통령 주재 중대본 회의에서 '압사'나 '희생자'라는 말을 기피하도록 설계하고, 이를 언론 보도 자료로 유포하며, 국가의 애도 기간 강제에 따라 모든 축제와 공연을 삭제한 그 곳에서 프레임이라는 중립적 분석틀은 제 자리를 찾기 힘들다. 프레임 비평은 모두가 프레임을 짠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무대가 기울어졌음을 말하는 데에는 인색하다.

▲ 한덕수 국무총리가 10월31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에서 열린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귀족 노조와 귀족 검사가, 민영화와 사유화가, 자유와 평등이 동등하게 이야기될 수 있을 때 프레임 분석은 의미가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상대방을 프레임이라 비난하는 언술은 현실의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은폐하는 또 다른 프레임에 불과하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