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동전 건넨 아이…"쪼금이라 미안해요"[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형·누나·동생·아저씨·아주머니·할머니·할아버지, 여기 빨간 냄비 좀 봐주세요. 아아, 날 외면하고 그냥 지나치지 말아요, 제발….'
텅 빈 자선냄비를 보며 그리 초조한 마음이었다. 모금 시작한 지 10분이 넘도록 아무도 안 와서였다. 빨간 종을 쥔 손이 위아래로 마구 흔들렸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0.5초 간격으로 나도 모르게 울리고, 아니 퍼붓고 있었다. 5초에 한 번씩 종을 울리란 담당자 말이 생각나 정신 차렸다.
구세군 자원봉사를 하기 전 홈페이지에서 글을 본 게 있었다. 모금한 돈으로 추운 산골 마을의 집을 따뜻하게 바꿔줬단다. 그 집에 사는 초등학교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할머니, 우리 집보다 밖이 더 따뜻하네." 겨울에도 두꺼운 옷을 입는 아이들을 위해, 구세군은 지붕과 난방을 고쳐주었다. 그제야 아이는 목욕하는 게 행복해졌단다. 소박한 해피엔딩.
그런 이야기를 떠올리니 괜스레 어깨가 무거웠다. 내가 열심히 해야만 내년에 또 다른 추운 집을 고쳐줄 거라고, 뭐 그런 생각 때문에. 종을 한 번 울렸다가, 두 번씩 울려봤다가, 세 번씩 흔들어보기도 했다. 양손에 종을 쥐고 쌍으로 무속인처럼 흔들어볼까도 싶었다. 아니면 막춤을 출까, '재벌집 막내아들' 회장 성대모사를 해볼까… 고민하던 바로 그때였다.
엄마 손을 잡고 다가온 똘망똘망한 남자아이. 아이는 빨간 냄비를 빤히 봤다. 그러다 호주머니에서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냈다. 그걸 잠시 들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의 "저기 가서 한 번 넣어봐"란 말에 다가오는 게 아닌가(심쿵).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기다렸다. '쨍그랑', 500원 동전을, 아마도 가진 것 전부를 기부한 아이는 날 보더니 수줍게 이리 말했다.
"쪼금이라 먄(미안)해요."
속삭이는듯한 그 말에 이미 냄비가 무언가로 가득 찬 듯, 화롯불에 펄펄 끓는 듯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어깨에 채 털어내지 못한 하얀 것들을 붙여두었다. 그러다 바삐 움직이며 그제야 바닥에 내려보냈다. 1호선에서 4호선으로, 혹은 그 반대로 분주히 오갔다. 난 그들이 보낸 한 해를 마음으로 응원하며 다독였다. 그러려고 종을 천천히, 또 명징하게 울렸다.
지나가던 몇몇이 고갤 돌려 바라봐주었다. 앞만 보고 가도 빡빡한 삶 아닌가. 그래서 그마저 고마웠다. 종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춰준 이들이 생겨났다. 인상 좋은 커플은 각자가 가진 만큼 꺼내어 냄비에 넣더니, 서로를 바라보며 쑥스럽게 웃었다. 친해 보이던 두 학생은 각자 2000원씩 꺼내놓고는 "정말 감사해요"라고 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휙휙, 빠르게 사라졌다.
머리가 새하얀 할머님 한 분은 지갑을 뒤적이더니,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어 기부했다. 그것도 모자라다 느꼈는지, 선한 이는 "카드는 안 되나요?"라고 또 물었다. 안 된다고 했더니 "너무 적어서 미안하다"며 뭇내 아쉬운 듯 발걸음을 옮겼다. 나누고도 미안하다니 다들 마음이 왜 그런지.
작아진 몸만큼 커다란 봉지 몇 개를 이고 가던 할아버지도 봤다. 아마도 배달하시는 듯했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던 할아버지는 자선냄비를 지나치시더니, 저만치서 바닥에 짐을 잠시 내려놓았다. 힘들어 쉬시나 했는데, 내 쪽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주섬주섬 보따릴 푸시더니, 꼬깃꼬깃한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냄비에 넣었다. 고맙단 말에 그는 "힘든 사람들 많이 도와줘요, 내가 힘들게 살아서 잘 알아"라고 했다.
장발의 한 남성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동전 한 움큼을 쥐어 넣으며 "노숙인을 위해서 꼭 써주세요"라고 말한 뒤 재빠르게 사라졌다. 그 역시 그 힘든 삶이 뭔지 잘 아는 이일지. 궁금했으나 묻지 못했다. 기부하는 이들은 어쩐지 다들 낯을 많이 가렸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빨랐다. 감사한 마음을 전할 시간 역시 짧았다.
자선냄비 앞에서 두 남성이 멈췄다. 나이로 보아 아버지와 아들인 듯했다.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레 다가와 내게 부탁을 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저… 정말 죄송한데, 우리 아들이 실은 장애가 있어요. 종을 울려보는 게 소원이라는데 한 번만 해봐도 혹시 괜찮을까요? 어려우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아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날 봤고, 난 흔쾌히 종을 넘겨주었다. 입고 있던 빨간 패딩도 벗어 아들에게 입혀주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일순간 환해지며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했다. 아들이 미소지으며 흔드는 종소리가 동대문역에 울려 퍼졌다. 나와는 달리 경쾌하고 가벼워, 신나고 즐거운 맘이 들었다. 그가 울리는 종소릴 듣고 한 어르신이 다가와 냄비에 선뜻 기부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난 그 둘의 사진을 한 컷 안에 남겨주었다. 아버지는 "좋은 분을 만나서 소원을 이루었다"며 자선냄비에 기쁘게 기부하고 갔다. 둘의 뒷모습이 몹시 따뜻했다.
때론 신세 지며, 때론 의지하며 또 나아가는 삶 아닌가. 1호선으로 향하는 계단엔 묵직한 짐을 홀로 끙끙대며 오르는 어르신이 자주 보였고, 그걸 모른척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또 있었다. 도울까 말까 망설이면서 자꾸 돌아보는 모녀의 시선에도 온기가 있었다. 어떻게든 돕고픈 마음.
어떻게든 기부하려, 상품권을 내밀며 "이건 안 될까요?"라고 묻던 중장년의 여성. 현금이 없다며 QR 코드를 찍어보더니, 어려운지 해보다가 포기하고 "다음에 많이 할게요"라고 사라진 사람도. 그러나 못내 맘이 안 좋았는지, 돈을 찾고 다시 돌아와 자선냄비를 기어이 채우고 떠난 선한 이의 뒷모습까지. 그런 마음이 가득했다, 어려운 세상이어도.
장장 여섯 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하는 구세군 자원봉사는 생각보단 고되었다. 담당자가 중간에 1시간만 쉬라 했으나, 그냥 괜찮다고 계속하겠다고 했다(조금 후회함). 바라볼 땐 연말의 낭만이었으나 직접 하니 영하 날씨에 춥고 떨렸다. 발가락이 점점 굳어가고 손이 발개졌다. 그래도 기부하는 이가 남기는 "추운데 고생 많아요"란 말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들려와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끝날 무렵엔 자선냄비가 꽤 차 있어서 뿌듯했다.
망설이는 마음도 잘 안다. 의심이 누구보다 많은 편이어서. 실제 기부를 바라보는 이들의 맘이 그랬다. 최근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기부 관련 조사를 했었다. 기부 단체를 신뢰할 수 없다(33.3%)거나, 기부금 관련 비리 사건 때문에 기부 의향이 없다(30.4%)는 응답이 나왔다. 기부 단체가 모금을 위해 속이기도 한다(54.8%)는 의견도 많았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몇몇 단체의 비리로도, 기부를 다 끊고 싶을 만큼 회의감이 들 거라고.
그러나 아무런 근거 없이,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이야기도 난무해 안타까웠다. 구세군과 관련해 찾아보는 과정에서 발견한 거짓 소문들. 예컨대, "구세군이 거리 모금해서 돈 벌어 빌딩을 세웠다"는 게 대표적이다.
여기엔 구세군 성금이 단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다. 1969년 구세군이 마포구 상암동 부지를 헐값에 사서 보육원을 지었었다. 당시엔 '쓰레기 매립지'에 낙후된 지역이었다. 그게 개발되며 약 850억원에 기적처럼 팔렸고, 그 일부로 충정로에 약 600억원을 들여 빌딩을 지었다. 건물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구세군 운영비를 보태어 쓰고 있다.
구세군 관련 영상 댓글엔 "구세군 거리 모금해서 종 치는 X에게 다 준다", "회식비로 다 쓴다"는 거짓말까지 난무했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봉사자들이 무급으로 대다수 참여하며, 함께하는 구세군 사관 학생의 월급도 '생활을 어떻게 영위할까' 싶을 정도로 적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는 "정해진 기부금으로 더 많이, 효율적으로 돕기 위해 단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러려면 인건비 등 운영비가 필요한데, 기부하는 분들은 '왜 너희가 돈을 쓰냐'는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좋은 마음으로 이 일을 하는 건 맞지만, 좋은 마음만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이미 최저 임금에 가까운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며 토로했다.
실제 구세군, 유니세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등 큰 기부 단체들은 다 각자의 방식으로 재정 내역을 공개하고 있었다. '투명경영'을 한다며 국세청 공시를 하고, 외부 회계 감사를 받고,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면밀하게 따져보는 이는 적은 듯했다. 지난해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을 어떻게 썼는지가 담긴 '연차 보고서'의 다운로드 횟수는 올린 지 5개월이 넘도록 100건에 불과했다.
연차 보고서를 받아서 열어봤다. 거리모금이 얼마인지, 그 외 지정기부금이 얼만지, 관리비로 얼마를 썼는지 등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사업비는 아동과 청소년, 노인과 장애인, 여성과 한부모와 다문화, 저소득 가정 등으로 나누어 각각 얼마씩 기부했는지 보여주었다. 허투루 쓰지 않는단 걸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하루 고생해서 모은 자선냄비 모금액으로 도왔단 사례도 나와 있었다. 마흔 살 여성이었고, 지난해 4월부터 가정폭력으로 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했단다. 주변 도움으로 임대주택에 들어갔으나 기본적인 생활 가전도, 겨울옷도 없어 지원이 필요했다. 구세군 자선냄비 긴급 지원으로 생필품과 50만 원을 기부했다. 이를 받은 그 여성은 이렇게 고마움을 표했다.
"많이 기쁩니다. 저도 형편이 나아지면 저처럼 힘든 사람들을 잊지 않고 도우며 살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에필로그(epilogue).
올 한 해 후원했던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기부금을 어떻게 썼는지 차근차근 따져보았다. 궁금한 건 단체에 직접 전화해서, 어떻게 쓴 것인지를 물었다. 보고서 중 이해되지 않는 항목도, 상세하게 알려달라 했다.
그 단체가 도왔다는 곳에도 연락을 직접 해봤다. 실제 기부한 게 맞는지를 다시 확인했다. 혹시나 실망이나 상처가 될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그런데 "힘든 시기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는 바라던 대답을 들었을 땐 뿌듯했다.
후원만 했지, 그리 감시해본 건 처음이었다. 해당 단체에 내년에도 후원하기로 맘먹었다. 내 불안과 불신 때문에, 정말 필요한 누군가를 돕는 일을 멈추기 싫어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누군가 기부하고 떠났을 때, 떠난 뒤에도 흔들리던 냄비를 보는 게 좋아서. 흔들림이 멈추지 않도록 더욱더 철저하고 똑똑한 후원자가 되겠다고.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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