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법정]⑫'간통죄' 5수 끝에 위헌…결혼·연애관 변천사
형사처벌 폐지에도 민사 책임 여전…위자료 산정 한계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건의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한국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올해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헤어질 결심'에서 미망인(탕웨이)이 결혼한 형사(박해일)에게 고백하며 한 말이다.
탕웨이의 마음은 한국 사회에선 '금지된 사랑'이다.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도덕적인 비난까지 피하긴 어렵다. '이래선 안된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리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 영화의 재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 영화가 10년 전에 개봉했더라면 관객들의 반응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20년 전이라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개봉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같은 인식 변화는 '간통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변화와 일맥상통한다. 5번이나 헌법재판소(헌재)의 문을 두드린 끝에 위헌 판결을 받았다. 간통죄 논의 과정에는 결혼과 연애에 대한 시대상이 그대로 녹아 있다.
◇ 간통 여성 처벌부터 고소제도 논란까지…시대변화 반영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간통죄 제정과 폐지의 역사는 여성인권 신장과 결혼·이혼에 대한 시대 변화의 흐름을 반영했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1905년 국내 첫 형법으로 꼽히는 형법대전은 간통 시 여성에게 더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조선왕조 처벌 규정을 따랐다. 1908년에는 남녀불평등주의를 취한 일본의 영향으로 남자는 처벌하지 않도록 개정됐고,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일본법이 적용됐다.
해방 후 법전편찬위원회 주도로 간통죄 규정을 제외한 형법초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반면 남녀 모두의 간통죄 처벌 규정을 마련한 정부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새로운 논란이 제기됐다.
정부는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해야 가족과 사회라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국가 운영을 위해 간통죄 처벌은 불가피했던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애정 행위를 결혼이라는 제도를 구실로 국가가 구속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은 계속됐다. 위헌 논란을 낳은 간통죄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헌법재판소 문을 두드렸다.
독특한 고소제도의 부작용도 끊이지 않았다. 간통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지만, 혼인관계가 끝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에만 고소가 가능했다. 이 때문에 간통 당사자의 배우자가 고소 여부를 두고 간통자나 상간자를 공갈·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 헌재 5번 만에 '위헌' 결정…"비도덕적 행위라도 개인 사생활"
1990년 간통죄는 처음으로 헌재 판단을 받았지만 6:3 합헌결정으로 소수 위헌 의견에 만족해야 했다. 3년 뒤에도 결과는 같았다. 당시 헌재는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제의 유지, 가족생활 보장, 간통으로 야기되는 혼외자녀 발생과 이혼 등의 예방을 위해 규제는 불가피하다"며 간통의 사회적 해악을 지적했다.
2001년에는 8:1 합헌 결정에도 '폐지 여부를 입법자가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소수의견이 나왔고, 2008년에는 4:4:1(헌법불합치) 의견으로 위헌적이라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정족수 6인에는 이르지 못했다.
헌재는 다만 "혼인관계를 보호하고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제재는 적절하다"면서도 "처벌 자체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으나 구체적인 행위를 규정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2015년 2월 26일, 간통죄는 다섯번째 심판에서 7:2 위헌판결을 받으며 제정 62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헌재는 간통행위를 국가 규율함으로서 헌법 10조가 보장하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즉 자기운명결정권(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봤다. 또 성생활이라는 사적 행위를 제한하므로 헌법 17조가 보장하는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구속할 수 없다 인식 변화가 반영된 셈이다.
다수 재판관(박한철·이진성·김창종·서기석·조용호)은 "사회구조와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 의식이 바뀌면서 간통을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국민의식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비도덕적인 행위라도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혼인과 가정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이혼 청구,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상 제도도 있으며 오히려 간통죄가 유책 정도가 훨씬 큰 배우자의 이혼수단으로 이용되거나 일시적으로 탈선한 가정주부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간통죄 유지에 따른 부작용도 지적했다.
◇ 민사 처벌 여전…최태원 SK회장, 위자료 1억 지급
시대 변화로 간통죄는 폐지됐지만 간통 당사자의 혼인 파탄 책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결혼은 법률상 쌍방 간에 이뤄진 '계약'을 침해하는 행위이기에 민사·가사 소송을 통한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비 등의 책임을 진다.
민법 840조는 배우자의 부정 행위를 이혼사유로 정하고 있고, 843조는 이에 대해 상대방에게 재산적,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이를테면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최태원 SK그룹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도 법원은 최 회장의 책임을 물어(유책사유)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 전문가 "형법 폐지에 위자료 산정 한계"…법적 안정성 고려 반론도
전문가들은 간통의 형사처벌 조항이 사라지고 혼인 파탄의 책임을 금전적으로 판단하면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졌다고 지적한다. 정신적 고통에 따른 손해배상, 즉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는 일부 당사자가 '간통죄가 폐지됐으나 배상책임도 덜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공공연히 펼친다는 것이다.
황수철 가사전문변호사(제이씨엔파트너스 법률사무소)는 "형사적으로 처벌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위헌 결정이 나온만큼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이 무거워져야 보완책이 되는데 일반 이혼소송 위자료는 3000만~5000만원 수준으로 과거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자료 산정은 여전히 옛날 기준으로 책정되는데 형사 처벌을 구할데도 없어 되려 민사적 도움 받을 길이 줄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해배상액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사망 사건의 정신적 손해배상 비용은 1억2000만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혼 사건의 경우도 최대 1억원에 불과하며 현실적으로 일반 가사 사건은 최대 5000만원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실제 노소영 관장은 최태원 회장을 상대로 3억원의 위자료 지급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1억원 지급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통상 인정되는 위자료 최대치를 책정했다고 평가했다.
법적 안정성과 이혼에 대한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위자료 지급액을 단기간 내 큰 폭으로 올리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한 민사담당 판사는 "간통죄 위헌 결정 이전에는 실형을 피하기 위해 합의금 명목으로 거액이 오갔다"며 "국가의 힘을 빌려 보상을 많이 받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자료 액수보다는 재판 승소 여부를 따지는 정서적 영향도 있다"며 "시대적 흐름이 바뀌면서 위자료가 올라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법적 안정성을 고려하면 갑자기 큰 폭으로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ausur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한달 120 줄게, 밥 먹고 즐기자"…편의점 딸뻘 알바생에 조건만남 제안
- 지퍼 열면 쇄골 노출 'For You♡'…"이상한 옷인가?" 특수제작한 이유에 '반전'
- "순하고 착했었는데…" 양광준과 1년 동고동락한 육사 후배 '경악'
- 숙소 문 열었더니 '성큼'…더보이즈 선우, 사생팬에 폭행당했다
- 미사포 쓰고 두 딸과 함께, 명동성당 강단 선 김태희…"항상 행복? 결코"
- "로또 1등 당첨돼 15억 아파트 샀는데…아내·처형이 다 날렸다"
- "자수합니다"던 김나정, 실제 필로폰 양성 반응→불구속 입건(종합)
- '나솔' 10기 정숙 "가슴 원래 커, 줄여서 이 정도…엄마는 H컵" 폭탄발언
- '55세' 엄정화, 나이 잊은 동안 미모…명품 각선미까지 [N샷]
- "'누나 내년 35세 노산, 난 놀 때'…두 살 연하 예비신랑, 유세 떨어 파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