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철의 행동경제학]확증편향, 민주주의 위기를 가속화한다
한국의 정치적 갈등, 세계 최고 수준
자신이 믿는 가치만을 옳다 여기고
반대되는 견해엔 눈과 귀 닫아버려
대화·타협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우리나라의 정치적 갈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11월 16일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국의 퓨리서치센터는 19개 주요국의 정치적 갈등 수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퓨리서치센터는 각국의 성인들에게 ‘지지하는 정당이 상이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90%에 달한 우리나라가 조사 대상 국가들 중 1위를 했다. 2위는 대선 결과에 불복한 공화당원들이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 이후 극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88%)이 차지했다. 지난해 조사에서 미국은 90%로 우리나라와 함께 공동 1위를 했었다. 팔레스타인과의 유혈 충돌 위험이 상존하는 이스라엘(83%)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은 40%로 가장 낮았다. 19개국 평균은 60%로 지난해(50%)보다 더 악화됐다. 한편 ‘매우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49%로 미국(41%)보다 8%포인트나 높은 압도적 1위다. 그만큼 정치적 갈등의 강도가 미국보다 훨씬 더 세고 심각하다는 얘기다.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 간의 갈등은 왜 생기는 걸까. 그리고 그러한 갈등은 왜 점점 더 격화되는 걸까. 행동경제학은 확증 편향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자신의 선택 또는 자신이 가진 신념·관념·이념·철학·가치관·사상 등을 지속적으로 정당화하려는 편향을 의미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의 애덤 그랜트 교수에 의하면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의사나 태도를 결정하고 나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만을 찾아 축적하고 그것과 반대되는 정보는 아예 무시해 버린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견해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찾아서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증거들만 찾아내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만을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한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다른 정보에 대해서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 그래서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일치하는 콘텐츠만 소비하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반대되는 콘텐츠는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하는 언론 기사와 유튜브 영상은 열심히 찾아내 몰입해서 보지만 상반된 정치적 견해를 다룬 언론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 대해서는 가짜 뉴스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하려고 하고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배척한다.
정치 영역에서 확증 편향은 필터 버블(filter bubble)로 인해 더욱더 심화된다. 필터 버블은 미국의 정치 참여 시민 단체인 무브온(MoveOn)의 이사회 의장을 지낸 일라이 패리저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필터 버블이란 페이스북·유튜브 등의 인터넷 기업이 사용자 정보를 분석해 사용자가 보고 싶어하는 콘텐츠만 필터링해 추천함으로써 사용자가 자신의 견해와 다른 콘텐츠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결국에는 자신을 자신만의 이념적 버블 안에 가두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필터 버블로 인해 우리가 확증 편향의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면 우리의 지식과 가치관이 편협해지고 사회의 다양성이 위축되며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사회적 합의가 어려워진다. 결국 우리가 힘들게 구축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 갈등이 너무 적어도 문제다. 민주주의라는 엔진은 갈등이라는 연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너무 심한 갈등이다. 확증 편향으로 인해 극에 달한 우리나라의 정치적 갈등과 분열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협치와 국민 통합을 지향하고 언론은 선동적인 기사를 자제하고 국민은 열린 마음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발전하는 정치 체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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