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 모란트, 멤피스의 봄날 이끌까?
1995년 창단한 멤피스 그리즐리스는 약체 이미지가 짙다. 항상 못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다른팀들에 비해 역사가 짧고 그 기간 동안 디비전 우승 한번이 가장 큰 타이틀일 정도로 보여준 것이 적은 이유가 크다. 반면 1998~99시즌, 50경기에서 8승 42패(승률 0.160)로 바닥을 찍는 등 안 좋은 쪽으로 임팩트가 더 뚜렷했다.
짧은 역사, 시원찮은 성적만큼 구단을 대표하던 스타들도 적은 편이다. 영구결번을 받은 선수들로 대상을 좁혀봐도 뛰어난 수비력과 허슬플레이를 통해 에너지 넘치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컨퍼런스 결승행을 이끈 토니 앨런, 안정적인 경기 운영능력과 빼어난 클러치 플레이어로 12년간 활약한 마이크 콘리, 리그의 유명 사고 뭉치에서 멤비스의 천사(?)로 거듭났던 잭 랜돌프, 10년 넘게 골밑을 지켜주었던 스페인 특급 마크 가솔 정도다.
이렇듯 NBA 역사에서 조연 색깔이 강한 멤피스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미지에 변화가 오고 있다. 차세대 스타가 선두에서 팀을 이끌며 팀 성적과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냥 중이기 때문이다. 자 모란트(23‧191cm)가 그 주인공으로 어쩌면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록될지도 모를 인물이다.
현재의 기대치로 보면 먼 훗날 멤피스의 위상은 ‘자 모란트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구분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많다. 팬들은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를, 스테판 커리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처럼 모란트에 의해 멤피스가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하는 시기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모란트가 지명된 2019년 드래프트는 멤피스 팬들 입장에서는 잊을 수 없는 해가 됐다. 물론 지명 당시만 해도 만세를 부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2순위는 충분히 높은 픽이고 모란트 또한 대학 시절 폭풍같이 성장하며 차세대 스타 후보 중 한명으로 평가받기는 했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온통 ‘날으는 냉장고’ 자이언 윌리엄슨(22‧198cm)에 쏠려 있었다.
아마 시절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리우며 일찌감치 1순위 후보로 전망됐고 이를 입증하듯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지명했다. 가능성을 인정받는 자원들은 다수 있었으나 누구라도 아마 때부터 스타로 불렸던 자이언의 이름 값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팀 던컨, 르브론 제임스 등이 그랬듯 ‘자이언 드래프트’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해당 선수들이 프로에 데뷔하면서부터 멤피스 팬들은 누구도 자이언을 지명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자이언이 대학 시절 괴물이었던 것도 맞고 프로 무대에서도 몸상태가 건강할 때의 위력은 매우 위력적이었으나 활약상은 모란트도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자이언이 부상으로 첫해부터 제대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이 모란트는 바로 두각을 나타내며 펄펄 날기 시작했다. 신인왕도 그의 몫이었다.
보통 포인트가드는 폭발적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득점을 주도하는 에이스 유형과 넓은 시야, 빼어난 패싱센스를 통해 팀전체 흐름을 이끌어가는 사령관 유형으로 나뉜다. 팀 또한 그들의 성향에 맞춰 색깔이 입혀지는 경우가 많다. 모란트같은 경우 아직 나이가 어린 관계로 어떤 유형으로 발전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은 전자에 가깝다.
신장은 188cm에 불과하지만 윙스팬이 201cm에 이르고 무시무시한 점프력에 바디밸런스까지 안정되어 있는지라 엄청난 림어택 능력을 보여준다. 동료의 패스를 공중에서 받아 몸을 비틀어 이중동작으로 앨리웁 덩크를 성공시키는 모습은 흡사 한 마리 날아다니는 짐승을 연상케 한다.
운동능력 좋은 가드들이 그렇듯 모란트 또한 돌파 후 림어택을 즐긴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발견됐다 싶으면 수비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레이업슛을 올려놓거나 덩크슛을 꽂아 넣고 속공상황에서 따라붙는 수비수들을 스피드로 제쳐버리며 슬램덩크를 작렬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발이 매우 빠른데다 순간 움직임까지 좋아 일단 한번 가속이 붙으면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더해 플루터 역시 점점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어느 정도 거리에 들어왔다싶으면 반박자 빠르게 던질 때가 많은데 직접적인 림어택을 예상하고 있던 수비 입장에서는 혼돈이 올 수밖에 없다. 던질 수 있는 거리도 넓은 편이며 슛 타이밍도 들쭉날쭉 한데다 체공능력까지 좋아 묘기성 플루터도 자주 보여준다.
다소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단단한 몸으로 수비진을 벗겨내듯 스쳐 지나가며 좋은 손끝 감각으로 득점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풀잎을 밟고 날아가듯 달리는 무협소설 속 신법 ‘초상비(草上飛)’가 연상될 정도다. 목표가 발견되면 체구보다 다소 큰 검을 들고 높이 뛰어올라 거침없이 상대를 베고 찌른다. 검끝을 흔들어 상대를 속이는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이 그렇듯 다양한 기술로 여러 영역을 오가며 득점을 성공시킨다.
데릭 로즈를 연상시키는 슈퍼 슬래셔로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란트가 자신의 공격만 보는 코뿔소형은 아니다. 대학 시절부터 코트를 넓게 보는 시야나 패스 센스 등은 인정받았던 선수답게 프로에서도 질 좋은 패스를 통해 팀 전체의 컨디션을 끌어 올려주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준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타입이 아닌 동료들과 함께 하는 합주도 즐긴다.
헤지테이션, 다양한 종류의 크로스오버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지라 자신 쪽으로 수비수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빈곳의 동료를 봐주는 시야가 상당하다. 일단 돌파가 워낙 위력적인지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수비 동선도 함께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킥아웃 패스가 들어가던가 아님 빈 공간으로 날카롭게 찔러준다.
다른 능력치에 비해 슈팅, 수비 등에서 살짝 아쉬움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부분 또한 매 시즌 발전하고 있다. 슈팅같은 경우 슈터급은 아니지만 매경기 2개 가량의 3점슛을 성공시키고 있는데 성공률(34.7%)도 나쁘지 않다. 거기에 더해 미드레인지 점퍼 시도도 점점 늘고 있다. 수비 또한 경험이 쌓이면서 성장중이다는 평가다.
올 시즌 모란트는 23경기에서 평균 27.6득점, 7.9어시스트, 6.7리바운드, 1.2스틸을 기록중이다. MVP 경쟁자가 될지도 모를 선수들과 비교하면 최상위급 성적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모란트의 포지션은 포인트가드다. 자신뿐 아니라 동료의 찬스까지 봐줘야 하는 포지션 특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소속팀 멤피스가 서부 컨퍼런스 1위를 달리고 있다는 부분에서 가산점을 받을만하다.
지난 16일 있었던 동부 컨퍼런스 2위 밀워키 벅스와의 승부에서는 142-101, 41점 차로 크게 이겼다. 7연승의 신바람 행진을 내고 있는 중이다. 딜런 브룩스, 타이어스 존스가 고르게 잘해준 가운데 에이스 모란트는 25득점, 10리바운드, 9어시스트로 전방위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거침없는 멤피스의 짐승남이 올시즌 소속팀을 어디까지 올려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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