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의 영화뜰] 그 사랑에 설득되지 못했을지라도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2. 12. 1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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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올해 영화평론가 사이에서 두루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는 누가 뭐래도 '헤어질 결심'이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는 형사 해준(박해일)의 시점에서 한 번, 용의선상에 오른 서래(탕웨이)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시차를 두고 벌어지는 독특한 사랑을 추리극의 형식 안에서 풀어냈다. “마침내”,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와 같은 유행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마니아 관객층도 형성했다. 다만 무려 18년 만에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닌 작품을 내놓은 박찬욱 감독이 공히 대중적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친 데 비하면, 189만 명이라는 관객은 분명 만족스러운 수치는 아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던 그의 전작 '아가씨'는 428만 명, '박쥐'는 221만 명을 모았다.

▲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흥행이 영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영화가 대중을 얼마만큼 설득했는지에 대한 평가 기준은 될 수 있다. '헤어질 결심'은 정리하자면 애틋한 사랑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과연 어디에서 그토록 애틋한 사랑이 시작되었나'를 돌이켜봤을 때 끝내 아리송한 감정이 남는 작품이다. 특히 서래의 아름다운 외모와 특유의 품위 있는 분위기에 한눈에 매료된 해준의 입장은 그런대로 이해가 되면서도, 해준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 조금은 뒤늦게 밀려온 서래의 입장은 영 갸우뚱한 측면이 있다. 영화 말미 서래가 해준의 삶에 영원히 각인되기 위해 아주 섬뜩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세상에서 소멸시켜버리는 결정을 내리기에 더욱 그렇다. 아무리 사랑이 소리소문없이 오는 것이라지만, 서래의 사랑은 대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기에, 얼마만큼 강렬한 불꽃을 터뜨렸기에 자신을 파멸하는 선택에 이를 수 있었나.

'헤어질 결심' 만큼 한국인에게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콜 미 유어 바이 네임'으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본즈 앤 올'도 비슷한 종류의 물음표를 남긴다. 현재 상영 중인 이 작품은 인간이 인간을 먹는 카니발리즘이 소재다. 식인 충동에 시달리는 소녀 매런(테일러 러셀)과 소년 리(티모시 샬라메)의 위태로운 동행을 그린다. 세상이 거부하는 습성을 지닌 채 태어났기에, 죽을 때까지 사무치게 고독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본질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상대를 만나 결국 살과 뼈를 비롯한 모든 것(bones and all)을 내어주게 되는 연인의 이야기다.

▲ 영화 '헤어질 결심'과 '본즈 앤 올' 포스터.

'헤어질 결심'이 추리물의 틀 안에서 장르적 재미를 추구한다면, '본즈 앤 올'은 앓는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징그럽고 소름 끼치는 식인 장면을 수 차례 등장시키며 독보적인 긴장감과 개성을 확보한다. 친구의 손가락을 씹는 소리가 '우두둑' 들려오는 초장부터 '공포 로맨스'라는 작품의 정체성에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때문에 “잔혹한데 황홀하다”(정시우), “멜로지만 차갑다, 공포지만 따뜻하다”(허남웅)와 같은 형용모순의 호평을 끌어낼 수 있었다.

다만, 식인 장면의 정서적 충격이 너무 강했던 건지 “나를 뼈까지 먹어달라”고 호소하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 앞에서 감정적 동질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카니발리즘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부러 완전히 떼어놓고 해석하면, 이 영화를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오직 한 사람에 대한 헌신'이라는 은유로도 읽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강렬한 감정에는 도리어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입장도 있게 마련이다. 현실의 감각을 훌쩍 뛰어넘어 문자 그대로 '온몸을 바쳐버리는' 장르적인 사랑은 지극히 평범한 이의 심장에 파동을 일으키기엔 너무 특별했다.

▲ 영화 '본즈 앤 올' 스틸컷.

어쩌면 사랑 이야기에 '이유'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모자란 일일 수도 있다. 무수한 인간이 사랑을 하고, 그 형태와 모양에 제약은 없기에, 각자의 타오르는 사랑을 머리로 분해하기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태도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다만 그 이유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에 설득되고 싶다'는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거기에서 위안을 받는 마음에 공감하는 게, 인간이 영화를 비롯한 대중예술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정서적 만족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설령 그 사랑들에 설득되지 못했을지라도, 또다시 마음을 뒤흔들어줄 사랑 이야기를 찾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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