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막히면 돌아가라’ 금주령에도 아랑곳 않은 루이스 엠 마티니
수없이 많은 사건이 벌어졌던 미국에서 술에 관한 역사상 가장 큰 일을 꼽아보라면 십중팔구는 금주법(禁酒法·the prohibition law)을 꼽을 것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미국은 1776년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이 중심이 돼 세운 나라다. 청교도들은 성경에 써있는 그대로 믿는 독실한 신앙과 금욕주의, 영적인 대각성을 내세웠다. 건국 초기 개척 과정에서 고단한 하루를 지내려면 술이 필수였다.
그러나 건국 후 50여년이 지난 1820년대부터 기독교 단체와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음주는 가정폭력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고, 하층 노동자 계급의 빈곤과 근무 태만을 불러 정치적 부정까지 조장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들 주장에 힘입어 이미 1861년 미국에서는 당시 33개였던 연방 주 정부 가운데 13개 주에서 음주를 금지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금주 운동은 탄력을 받았다.
술을 만드는 데 쓰이는 곡물을 아껴야 한다며 ‘전쟁 중인데 술이 웬말이냐’는 인식이 퍼졌다. 당시 유럽에서 건너와 미국에 자리를 잡았던 독일 이민자들이 양조업으로 부를 쌓는 것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결국 1917년 미국 전역에서 술 제조, 판매·운반, 유통·수출입까지 모두 금지하는 수정헌법 18조가 국회를 통과했다. 1920년에는 마침내 금주법이 발효됐다. 기독교와 여성 단체가 금주 운동을 벌인지 꼭 100년 만이었다.
이후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음주를 법으로 전면 금지하자, 미국인들은 밀주(密酒)를 담가 팔았다. 몰래 담근 술을 파는 불법 조직들은 거액을 거둬 들였다.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이때 세력을 불렸다.
가장 처음 ‘공공의 적(Public Enemy)’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알 카포네는 1927년 당시 주류 밀매로만 1억달러(약 1300억원)에 달하는 수입을 올렸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현재 2조20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산발적인 범죄 집단이었던 다른 갱단 역시 밀매 수익을 기반 삼아 기업형 범죄조직으로 탈바꿈했다.
그 사이 미국 와인업계는 암흑기에 빠졌다. 제조는 물론 판매·운반, 유통·수출입에 걸쳐 술과 관련이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도산하는 업체가 부지기수로 나왔다. 1919년 금주령 발효 직전 1000여곳 정도였던 미국 와이너리 수는 1934년 금주령 폐지 직후 150여곳으로 줄었다. 15년 만에 85%가 사라졌다.
루이스 엠 마티니는 이 시기를 버티고 살아남은 나머지 15%에 해당하는 몇 안되는 와이너리다. 이 와이너리를 세운 루이스 엠 마티니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899년 열 두살 나이로 아버지가 살던 미국에 첫 발을 디딘 이민자다.
마티니는 미국에서 와인을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꼈지만, 제대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에서 양조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열 아홉살이 되던 해 이탈리아 북부 지역으로 떠난다.
그리고 다시 미국에 돌아와 몇 차례 본인 이름을 걸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지만, 곧 금주법이 시행됐다. 와인 양조에 불타오르던 서른두 살 청년 마티니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와인 양조를 멈출 수 없었다.
그는 합법적으로 와인 만드는 방법을 백방으로 찾았다. 당시 금주법을 어기지 않고 술을 만들거나 유통하려면 오로지 가톨릭 성찬 미사에 쓰이는 미사주를 공급하거나, 의사가 환자에게 약용으로 처방하는 의료용 주류를 만드는 방법 뿐이었다.
마티니는 ‘엘 엠 마티니 포도 생산 회사(the L.M.Martini Grape Products Company)’라는 이름을 걸고 미사용 와인과 의료용 와인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만 보면 술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포도로 만든 다른 제품을 파는 회사였다.
그러나 미사용 와인과 의료용 와인만 팔아서는 남아도는 포도를 전부 쓸 수가 없었다. 마티니는 이 점에 착안해 일반인에게 ’금단의 열매(Forbidden Fruit)’라는 포도 농축액을 만들어 팔았다. 농축액 그 자체에는 법에 저촉될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 그는 ‘물과 이스트(빵을 만드는 데 쓰이는 효모)를 넣고 화씨 85도 이상으로 두지 마세요. 와인이 되어버립니다’라는 경고를 붙였다. 경고문을 빙자해 와인 만드는 법을 알려준 것이다. 마티니가 만든 ‘금단의 열매’는 캘리포니아를 넘어 미국 각지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마티니는 1933년 금주법이 풀리자 마자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지 가운데 가장 금싸라기 땅이라는 세인트 헬레나(St. Helena)에 포도밭을 구입했다. 여기에 지금까지 이어지는 루이스 엠 마티니 와이너리를 세웠다.
마티니를 포함한 미국 와인 생산자들은 당시 금주법만 사라지면 다시 미국산 와인이 선풍적으로 팔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금주법 철폐 이후 미국 와인업계는 오히려 이전보다 침체했다.
지난 15년간 술을 마시지 않았던 미국인들은 계속해서 술을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 경우가 잦았다. 혹은 금주법 시기 은밀히 거래하던 밀주에 입맛이 길들어진 애주가들은 금주법 철폐 이후에도 도수가 높고 거친 독주를 선호했다.
마티니는 미국인 입맛을 와인으로 돌려 놓기 위해 여러 양조 기술을 새로 도입했다. 1936년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발효 탱크를 미국에서 가장 먼저 설치한 곳이 루이스 엠 마티니다. 1951년에는 이른 봄 포도밭에 내리는 서리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형 송풍기를 도입했다.
마티니가 미국인이 좋아하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적용했던 기술들은 이제 모든 와인 생산자들이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마침내 2008년 미국 와인생산자 협회는 마티니가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에 미친 지대한 공로를 인정해 그를 명예의 전당에 추대했다.
루이스 엠 마티니는 국내에서도 팬 층이 두터운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다. 와인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나파밸리 유명 와이너리 치고 가격이 저렴한 편인데다, 여러 한식에 두루 어울리는 맛과 향 덕분이다.
루이스 엠 마티니 소노마 카운티 카베르네 소비뇽은 소노마 카운티 여러 포도밭에서 수확한 카베르네 소비뇽을 섞어 만든 와인이다. 포도 수확은 포도 밭과 포도 상태에 따라 손과 기계를 함께 사용했다.
포도 줄기를 제거한 후 평균 12일 정도 탱크에 담궈 포도 열매가 가진 색상과 풍미를 최대한 끌어냈다. 이 와인은 ‘2022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신대륙 레드와인(3만~6만원대)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롯데칠성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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