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면]손흥민처럼 잠시 멈춰라, 메시처럼 때론 걸어라
오광춘 기자 2022. 12. 17. 07:40
이번 월드컵 기간 ESPN이 내놓은 '손흥민의 일시정지' 기사는 참 좋았습니다. 우리 축구의 16강 길을 열어준 골, 그러니까 포르투갈전의 마지막 순간을 세밀하게 들여다봤습니다. 손흥민의 치고 달리는 순간부터 황희찬이 마지막에 슛을 결정하는 순간까지, 그 짧은 시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묘사했는데 그 분석이 신선했습니다. '환상적인 골'이란 수식어가 놓치고 있는 그 순간을 차분하게 살펴본 게 돋보였습니다. 몇 문장을 소개합니다.
손흥민이 60m 넘게 공을 몰고 달려가서 패스한 순간을 이렇게 포착했습니다.
손흥민이 60m 넘게 공을 몰고 달려가서 패스한 순간을 이렇게 포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깐 멈춥니다. 하나, 둘. 손흥민이 얼마나 오래 공을 잡고 있는지 셀 수 있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서 앞에 선 포르투갈 수비수 3명을 쳐다봅니다. 다음 순간 왼쪽에서 페널티지역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황희찬을 봅니다. 잠깐의 정지가 없었다면 그 다음에 뒤따를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사의 마무리도 훌륭했습니다.
역습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또 이를 위해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손흥민의) '축구 지능', 또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일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정심', 수비수들이 에워쌌을 때 공을 그 사이로 통과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또 동료에 대한 '믿음'. 이런 것들이 좋은 선수와 위대한 선수를 가르는 일종의 작은 순간입니다.
모두가 손흥민의 무서운 '질주'에 찬사를 보낼 때, 잠깐의 '멈춤'을 주목한 시각이 놀라웠죠. 축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부분을 볼 수 있게 됐을 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메시 역시 그런 재미를 던져줍니다.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많이 걸어다니는 선수'로 확인받았으니까요. 축구 하면 많이 뛰고, 빨리 달려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메시는 그런 인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영국의 스포츠 매체 '토크스포트'는 이번 월드컵에서 메시가 가장 많이 걸어다닌 선수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미 조별리그 통계에서도 이 통계는 유효했죠. 메시는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많이 걷는 선수로 분석됐습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메시는 아르헨티나의 4강전까지 6경기를 뛰면서 53.11km를 누볐고, 그 중 30.61km를 걸어다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월드컵 경기에서 절반 이상(57.64%)을 걸어다닌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떻게 축구 선수가 이렇게 많이 걸어다닐 수 있는지 의아하죠.
메시의 '걸어다니는 축구'는 영국 BBC에서도 집중조명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수비수 출신 퍼디낸드는 '걷는 축구'를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메시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갑자기 살아난다”면서 “어느 위치에서도 경기를 풀어낼 수 있는 선수”라고.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의 과거 발언도 상기시켰죠. 과르디올라는 “메시가 걷는 건 경기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다. 머리를 계속 움직이면서 수비라인의 오른쪽, 왼쪽을 살피고 그 중에서 약점을 찾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게으른 축구가 아니라 어슬렁거리면서 뭔가 기회를 엿본다는 거죠. 한편으로 그 '느림'이 있기 때문에 한 순간에 치고 들어가는 '빠름'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거겠죠. 축구는 계속 빠른 것보다는 속도의 차를 통해 상대를 따돌리는 과정이라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한 없이 질주하고, 더 빨리 뛰어야 성공할 것처럼 보이지만 잠시 멈춰서고, 때론 걸으면서도 축구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일궈낼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축구의 또다른 면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듯. 월드컵은 축구 보는 법도 한번쯤 되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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