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허가에 보험급여 등재까지 '산 넘어 산'
정부 "규제 개선 통해 신기술-규제 간극 좁힐 것"
제약바이오 산업은 규제 산업이다. 한 나라의 의료 헬스케어 산업의 수준은 규제 수준에 수렴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최근 다양한 규제 혁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산업 종사자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대표는 지난 16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2 바이오 미래포럼'에서 디지털 바이오 신산업 조성 전략과 관련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날 행사엔 정일영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신산업전략연구단 단장,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이예하 뷰노 대표, 송상옥 스탠다임 연구소장(공동창업자) 등이 연사로 참여했다.
전 세계적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AI 기술을 통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거나 진단 및 치료에 AI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국내 AI 의료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낡은 규제와 기술적 한계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정규 대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약 허가에서 고려하는 사항은 안전하고 효능이 좋은 약을 신속하게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라며 "평균 10년 이상이 걸리는 백신·치료제를 1년 만에 내놓을 수 있던 코로나19 사례처럼 안전성 입증과 신속한 허가가 균형을 이뤄야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AI 의료 산업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건 급여화다.
AI 의료기기와 같이 새로운 의료 기술을 수반한 의료기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외에도 보험 급여 등재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식약처 허가를 받으면 해당 의료기기를 의료기관에 판매할 수 있다. 다만 보험에 등재되기 전엔 건강보험코드가 부여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 신기술 의료기기에 대한 진료비를 환자에게 청구할 수 없다. 의료기관이 직접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만큼 사실상 의료 현장에선 신기술 의료기기 도입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문제는 보험 급여 등재 절차가 까다로워 대부분의 혁신 의료기기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수가에 진입하려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 한다. 의료기기 자체의 성능과 안전성과는 별개로, 의료기기를 통한 '새로운 의료행위'가 건강보험권에 진입할 만큼 임상적 가치가 있는지를 증명하는 절차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임상문헌을 중심으로 평가하는데 최초 개발 제품은 임상문헌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의료기관이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의료기기를 도입할 유인이 없으니 임상 근거를 쌓는 게 훨씬 어렵다.
이정규 대표는 "보험에 등재되고 의료 현장에서 쓰여야 안전성도 입증할 수 있는데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현장에서 사용하지 못하니 안전성을 입증할 기회 자체가 없다"면서 "신의료기술평가도 중요하지만 신기술이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 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덧붙였다.
이예하 대표 역시 규제 개선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뷰노는 AI 기반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뷰노의 AI 기반 심정지 예측 의료기기 '뷰노메드 딥카스'는 지난 6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대상으로 선정됐다. 유예 대상으로 선정되면 건강보험 등재 전 일정 기간 의료 현장에서 비급여로 사용할 수 있다.
이예하 대표는 "딥카스가 국내 첫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실제 의료 현장에서 2년간 사용 후 임상 근거를 쌓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며 "이제 뷰노가 해야 할 일은 고도화된 제품을 개발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국내 AI 의료기기 기업들이 실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그는 "국내 주요 상장 AI 의료기기 기업은 4곳 정도인데 모두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혁신을 일으키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면 진단 보조 솔루션에 머무를 게 아니라 실제 환자에게 도움 될 의료기기나 서비스를 만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뷰노, 루닛, 딥노이드, 제이엘케이 등 AI 의료기기 기업들은 매년 외형 확장을 지속 중이지만 아직 영업이익은 내지 못하고 있다.
정일영 단장은 "국내 디지털 바이오 산업은 이제 기회의 창이 열리는 단계인데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건 여러 기업과 서비스가 나와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과 규제의 간극을 좁히는 방향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차지현 (chaji@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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