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7- 맛과 향 ②

노성열 기자 2022. 12. 1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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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미각 감지 구조 혀에는 좁쌀보다 작은 미뢰(맛봉오리)가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미뢰는 꽃잎처럼 생긴 맛세포들이 겹친 구조로, 음식물의 분자가 들어오면 미각 수용체에서 전기 신호를 발생시켜 뇌로 전달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맛과 향(香·냄새)의 두 번째 탐험입니다. 지난번에 맛은 5가지, 즉 오미((五味)로 분류할 수 있지만향은 수만 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이 맛과 향은 도대체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경로로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왜 향은 종류가 그렇게 많을까요.

음식을 섭취하면 이빨로 잘게 부수고 소화 효소인 침을 섞어 우선 혀로 처음 맛을 보게 됩니다. 혀에는 좁쌀처럼 작은 돌기들이 골고루 분포하고 있는데 이를 유두라고 합니다. 젖꼭지란 뜻이죠. 이 유두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맛 돌기, 맛봉오리로 통용되는 미뢰(味뢰· taste bud)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미뢰는 영어 번역처럼 맛 세포(taste cell)가 흡사 새싹이나 꽃잎 모양으로 겹쳐진 구조로 돼 있습니다. 그 꽃잎 사이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분자들이 들어와 맛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입니다.

미뢰에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의 오미(五味)를 느끼는 G 단백질 결합 수용체(GPCR·G-Protein Coupled Receptor)가 있습니다. 미국의 의대 교수 2명이 GPCR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밝혀내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죠. 그런데, GPCR은 지난번에 냄새 센서라는 후각 수용체와 같지 않나요? 맞습니다. GPCR은 화학적 자물쇠인 점에서 후각과 미각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 게이트입니다. 냄새와 맛을 내는 음식의 분자가 들어오면 마치 꼭 맞는 열쇠를 끼운 자물쇠처럼 결합해 신경세포에서 전기 신호(활동전위·pulse)를 발생시키고 이것이 뇌로 전달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에구, 구려” 라든가, “아, 달다”라든가 하는 감각을 느끼게 되는 거죠. GPCR은 이외에도 시각이나 다른 자극의 수용체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맛을 느끼는 1차 관문 미뢰는 혀의 위뿐 아니라 혀의 옆면, 입천장, 목구멍(인·후두)에도 분포하고 있습니다. 맥주는 목으로 맛보는 것이라며 꿀꺽꿀꺽 삼키고 “캬아” 하며 ‘목 넘김이 좋다’고 선전하는 TV 광고에도 일리는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배운 혀의 맛 지도는 과거의 틀린 개념으로 이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혀의 끝부분에서 단맛을 느낀다는 식으로 동서남북 분할 선을 그리고 각각의 맛 담당 구역이 따로 있다고 가르치던 이론이죠. 5가지 맛은 혀의 모든 부분에서 모두 느끼고 다만 강도만 차이가 날 뿐입니다. 인간이 막 태어나 신생아일 때는 혀와 여러 군데에 미뢰가 훨씬 많이 분포해 있다가 10세 이후 성장하면서 서서히 퇴화한다고 합니다. 아기 때 아무 맛도 없는 밍밍한 분유를 맛있게 잘 먹는 것을 보면 어른보다 맛감각이 더 예민한 것 같기는 합니다.

과학기자뉴트리노의생활과학

자, 혀에서 처음 맛을 느낀다는 것은 음식물을 분해한 3대 영양소의 분자가 미뢰 속 맛 세포의 맛 수용체로 들어가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고 이것이 뇌로 전달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죠? 그러니까 혀는 수용할 뿐이고 최종 판정하는 주체는 뇌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맛있다’ ‘향기롭다’고 판단하는 것은 뇌이고, 우리는 뇌로 맛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되죠. 우리 뇌는 인체 중 가장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기관입니다. 뇌를 구성하는 860억 개의 신경세포가 초당 수십 번의 전기 펄스를 만들어 다른 세포들과 통신을 합니다. 몸 안에서 이런 전기를 생산하려면 세포막의 이온 채널을 열었다 닫았다 개폐해야 하는데 여기에 막대한 포도당(ATP) 연료가 들어갑니다. 뇌는 우리 몸의 2% 정도 무게이지만 전체 에너지 소모량의 20%를 씁니다.

이때 사용되는 에너지의 절반을 전기 펄스 만들기에 쏟아붓습니다. 전기 펄스는 미네랄인 나트륨 이온이 세포막의 채널을 안팎으로 오가면서 전위치를 형성시켜 만들어지고, 이 나트륨 채널을 여닫는 신호가 글루탐산(아미노산)의 역할입니다. 포도당은 연료, 나트륨은 재료, 글루탐산은 촉매인 것이죠. 우리 뇌가 왜 단맛, 짠맛, 감칠맛에 열광하는지 아시겠나요? 설탕과 소금, 고기는 뇌가 기본적으로 원하는 생산 자원이니까 이들을 ‘맛있다’고 해석하며 더 많이 섭취하려는 건 뇌의 생존 본능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혀와 뇌로 먹는다고 표현하면 될까요?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뇌의 주관적·감성적 판정이니까요.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목으로도 먹고, 코로도 먹고, 귀로도, 심지어 눈으로도 먹습니다. 한 마디로 온몸 전체에서 맛을 느끼는 것이죠. 그것은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영양분 공급이란 생물학적 수요를 넘어 쾌락을 추구하는 문화적인 욕구 충족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재미로 먹기도 합니다. 과자 같은 간식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먹는 과정과 경험 그 자체를 즐기는 거죠. 대다수 동물은 살기 위해 먹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먹기 위해 살기도 합니다. 생존뿐 아니라 먹는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맛있게, 멋있게 먹으려 애씁니다.

먹는다는 행위에서 맛과 멋을 찾는 식도락(食道樂) 문화는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특성입니다. 그래서 ‘맛있는 과학’은 물리·화학·생물의 원리 말고도 감각과 인식을 다루는 심리학·뇌과학의 영역도 일부 다룰 예정입니다. 음식과 요리의 과학뿐 아니라 맛의 과학까지 폭넓게 본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입으로 음식물을 삼키지만 눈과 코, 귀로도 먹습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기분 좋은 향을 선호한다는 뜻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 현대 요리에서 장식(plating)의 중요성은 점점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진과 동영상의 이미지에 익숙해진 현대인이 음식의 비주얼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코는 입이 먹기 전에 먼저 음식물을 1차 판정합니다. 먹기 시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맛있을지 없을지, 더 먹어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미심쩍은 음식에는 코를 먼저 들이밀어 킁킁댑니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더 잘 알고 있겠죠?. 사각사각하는 소리도 입맛을 다시게 합니다. 먹방에는 쩝쩝, 꿀꺽꿀꺽하는 소리 ASMR들이 넘쳐납니다. 식품회사들은 더 재미있는 소리를 내는 과자 개발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五感), 즉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은 뇌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는 센서에 해당한다. 뇌는 이들 입력 감각을 모아 외부 세계에 대한 해석을 창조하고, 이것이 우리가 느끼는 ‘현실’이다. 게티이미지

이렇게 인간은 입과 눈, 코, 귀의 오감으로 음식물을 먹지만 최종 판정을 내리는 곳은 결국 뇌입니다. 뇌는 모든 감각을 모아 느끼고(인지), 다음 행동(결정)을 지시하는 콘트롤 타워입니다. 뇌가 좋다고 판단하면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분류됩니다. 몸에 좋고 기분도 좋아지는 좋은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뇌과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본격 연구된 지 200년이 채 안 됩니다.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맛의 과학자들이 아무리 음식의 물성을 파헤쳐도 뇌의 원리까지 깨우치기 전에는 맛의 비밀을 완전하게 풀 수없는 것이죠. 오로지 인간만이 맛과 멋으로 먹기 때문에 우리는 ‘맛있는 과학’에 더 열정적으로 매달리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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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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