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업무방해죄 적용, 메스 댄 의사를 상해죄로 처벌하는 격”

조혜정 2022. 12. 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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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 노동법연구소 ‘해밀’ 소장 인터뷰
김지형 노동법연구소 ‘해밀’ 소장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해밀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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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노동보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더 중요한 시대, 노동조합이 “불법과 폭력의 온상”으로 매도당하는 이 시절에 노동법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동법연구소 ‘해밀’은 이런 질문에 연구 결과와 공익 소송, 교육 등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온 곳이다. 오는 20일 창립 10주년을 맞는 해밀의 김지형 소장을 8일 오후 서울 중구 해밀 회의에서 만났다. 노동법 분야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김 소장은 대법관 퇴임 뒤 노동사건 전문 변호사, 노동법 연구자 등 40여명을 모아 해밀을 꾸렸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이 더 들더라도, 사회적 갈등을 조정과 중재로 푸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필요하다”는 그는, 노동 현안과 관련한 정부의 대응에 날 선 비판 대신 “문제를 풀어가는 위치에 있는 건 정부니까, 정부가 대승적으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거나 “(화물연대 파업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쪽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여러 차례 강조한 “우리 정부도 그렇게 할 것이라 믿는다”는 발언엔 ‘부드러운 설득’의 단단한 힘이 녹아 있었다.

노동법 이해하는 사용자 나오려면

―해밀은 설립목적을 ‘노동법에 정통한 법률가의 육성’ ‘노동법에 대한 시민교육’ ‘노동인권 분야의 문제 해결’ 등으로 밝히고 있다. 이에 비춰볼 때 지난 10년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해밀을 만들 때 할 일을 크게 노동법 교육, 싱크탱크 역할을 할 연구, 공익 활동 세 가지로 설정했다. 교육은 ‘해밀 아카데미’를 1년에 두번씩 계속해왔는데 변호사, 기자, 노조 활동가 등 매년 100명 안팎이 여기서 노동법 공부를 한다. 일종의 전문가 공동체를 만드는 데는 아카데미가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시민교육을 못 한 건 아쉽다.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노동법의 기본적인 내용을 강의하는 일을 구상했었는데, 예상보다 인력 풀이 더 커야 해 그것까지는 시도하지 못했다. 이건 만화 등 강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라도 이후 꼭 해볼 생각이다.

연구 활동으로는 매년 학술대회와 심포지엄, 포럼을 진행하면서 노동법의 주요한 쟁점을 논의했고, 자주는 아니어도 뉴스레터를 통해 현안을 다루기도 했다. 그 성과를 모은 결과물이 <해밀 총서―노동법의 미래담론>(모두 3권)이다. 하지만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조금 덜 채워졌달까, 아쉬움이 남는 게 역량 있는 새로운 노동법 연구자를 지원하는 일이다.

총서의 제목이 ‘미래담론’이고 이번 10주년 심포지엄(20일) 주제도 ‘노동법의 경계’다. 노동법은 법 분야 중에서도 제대로 갖춰진 역사가 짧아서 외연을 확장하고 계속 진화하는, 굉장히 열려 있는 분야다. 기존의 법리적 해석 못지않게 미래적 관점에서 연구 성과를 축적하는 것, 구체적인 의제와 현안의 답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진 연구자들이 그런 것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공익 활동은 아주 활발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사건에는 여러 형태로 참여했다. 최근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산재보험료를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는 것과 관련한 고용보험법 시행령이 없어, 입법부작위를 다투는 헌법소원을 다른 공익 변호사들과 함께 진행 중이다. 공익 소송도 앞으로 꾸준히 참여할 분야다.”

김지형 노동법연구소 ‘해밀’ 소장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해밀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변호사 3만명 시대’라지만, 노동 현장의 일상적인 위험과 불안정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도움받을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여전히 많지 않아 보인다.

“‘노동 변호사’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의 문제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노동자 보호에 헌신적으로 투신하는 분을 그렇게 생각했지만, 노동자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용자 쪽에서의 노동법 수요도 크게 늘었다. 해밀 아카데미 과정에 기업 사내 변호사들이 많이 오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노동자 측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활동만큼, 사용자 측 대응을 돕는 법률가들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노동법에 제대로 된 이해를 가진 사용자냐 아니냐에 따라 노동 분쟁에 대응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다. 일부 기업 측 변호사가 법리를 악용하고 꼼수를 부려서 논란이 되지만, 사실 그런 방식은 그 당시엔 즉각적인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노사의 신뢰 관계를 해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득이 안 된다.

사용자 측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역할은 노동법에 충실한 법리를 사용자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거다.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그 노동자 한 사람을 위해 싸우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부당해고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끔 사용자가 인식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면 그 사용자가 고용한 노동자의 수만큼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결국 어떤 관점으로 노동 문제를 풀어갈 것이냐가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법원 설치가 비중 있게 논의되면 좋겠다. 노동법원이 만들어지면 노동 사건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심판자가 생기고, 양쪽의 소송관계인도 노동 사건 쟁송 과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고 지금보다 훨씬 더 활발한 토론을 하게 될 거다. 인력 충원도 필요해진다. 노동 분쟁 해결이 진일보한다는 차원에서도 노동법원은 필요하지만, 노동 사건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확대한다는 부분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중대재해에 ‘실사구시’ 접근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 관련 조정위원회’ 위원장,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장,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산재 문제 대응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산재 발생은 여전하고, 기업과 정부가 이를 막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김용균 특조위 보고서 발간사를 쓸 때 생각을 정리하느라 열흘 정도 끙끙거렸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문장이 ‘일터는 깜깜했습니다’다. 특조위 첫 회의를 사고 현장에서 했는데, 진짜로 깜깜했다. 그런데 거기서 일하는 분들은 위험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에 대한 감각이 우리처럼 두드러진 것 같지 않았는데 이게 산재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깜깜한 일터가 앞으로는 환하게 밝아졌으면 좋겠다는 의미까지 그 문장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올해 고용노동부 통계로는 9월 말까지 산재 사망자가 510명이다. 정말 의미를 담아서 만들었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있고, 여러 형태의 문제 제기와 사회적인 논의가 있었지만 사망 사고 발생 건수는 차이가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6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앞에서 열린 김용균씨 4주기 추모제에서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아들의 조형물에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제일 중요한 건 최고경영자의 의지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중대재해 발생을 예방하자는 거다. 하지만 사업주의 문제의식은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어떻게 하면 내가 처벌을 면할 거냐고, 유수한 로펌의 도움을 받아 피해 간다. 기업을 돕는 법률가가 해야 할 일은 거기서 더 나아가,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용자가 ‘진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거다.

중대재해 위험 요인과 예방법은 업종마다, 개별 사업장마다 다를 수 있다. 일하는 사람들이 사이가 좋냐 나쁘냐에 따라서도 위험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안전 전문가가 현장의 안전 수요, 조직 분위기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법률 전문가와 협업해서 맞춤형 안전 설계를 해볼 수 있을 거다. 이건 내가 시도해보려는 중이기도 하다. 비용이 들긴 하겠지만,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가장 실효적인 방법이라고 사업주를 설득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도록 해보고 싶다.

큰 사고가 생기면 사업주 쪽에선 작업자가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위험에 둔감해진 상태였다거나, 실수를 했다는 걸 사고 원인으로 스스럼없이 내놓곤 한다. 그런데 ‘휴먼 에러’라는 말이 있다.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 때 들은 안전 분야 전문용어인데, 사람은 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이므로 실수가 있어도 안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제대로 된 안전 관리라는 거다.

작업자 실수를 주장하는 건 사용자가 책임을 덜려고 그러는 건데, 그렇게 접근하기보다 안전에 필요한 장구를 매뉴얼대로 다 갖추면 인센티브를 주는 건 어떨까. 인공지능 같은 스마트 기술이 크게 발전하고 있는데, 위험한 현장에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일정 정도 유지되지 않으면 알람이 울리는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건 어떤가. 고도화된 스마트 기술을 사람 살리는 휴먼테크로 활용하는 방식을 연구개발 역량이 있는 대기업이 고민해볼 수 있지 않겠나.”

―김용균씨의 4주기를 맞았지만,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은 또 다른 김용균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도 최근 노동부는 관련 법령을 개별 사업장의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여당은 재계의 끊임없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요구에 호응하고 있다.

“법제적인 부분으로 문제 해결이 얼마나 될지 의구심이 있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떤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가 되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더 관심 있게 생각해보자는 건 실사구시적인 측면이다. 안전과 법률 전문가의 협업, 휴먼테크 등에 기업이 먼저 스스로 나설 수 있도록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책 결정자가 귀 열어야”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한 화물연대 파업에 정부는 강공 드라이브로 맞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장 조사를, 국토교통부는 행정처분과 형사 제재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의 이런 대응이 적절했다고 보나?

“화물차주가 개인사업자인지 근로자인지 아직 법적인 다툼이 있고, 업무개시명령도 노동자에 대한 강제노역인지 경제 형편에 따라 사업주에게 명할 수 있는 것인지 위헌성 시비가 있다. 그런 부분의 법적 판단은 아직 유보돼 있어, 법리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걸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다.

다만,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크게 세 단계가 있다고 본다. 제일 좋은 건 예방, 문제가 생겼을 땐 적절한 대응, 마지막은 대응 과정을 포함해 고칠 부분을 찾는 개선이다. 그중 하나라도 제대로 안 되면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예방, 대응, 개선이 선순환해야 된다. 꼭 화물연대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 정부가 그렇게 할 거라고 믿고 싶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은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밀려 16일 만에 철회됐다. 하지만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은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약속만이라도 지키라며 파업 철회 사흘 뒤인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국회가 연장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전운임제는 올해 말 종료된다. 이 위원장은 “(파업이) 정부가 한 약속을 지키라는 투쟁이자 도로 위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사회안전망에 넣어달라는 화물 노동자들의 절규”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5일 오후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이봉주 위원장.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화물연대 파업의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 제대로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 운임의 적정성이나 이해관계 당사자 사이의 다툼으로 볼 건지, 근본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문제로 볼 것인지에 따라 예방, 대응, 개선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쪽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도 그렇게 할 것이라 믿는다. 화물연대와 화주뿐만 아니라, 이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이 참여해서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는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정부의 인식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이번 파업을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까지 표현했다. 사회적 대화의 책임자인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기획총파업”이라고 주장하고, 주무 장관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민주노총과 화물연대 등을 “조폭” “민폐노총”으로 비난했다. 노동계와 노조에 이토록 적대적인 정부의 태도가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은데.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이 문제 해결 방식에 귀를 열고 많이 들어서, 어떻게 하는 게 국가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겸허하게 생각을 해야 한다. 문제를 풀어가는 위치에 있는 건 정부니까, 정부가 대승적으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국회에선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손실에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두고 여야가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정미 대표(가운데) 등 정의당 대표단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 설치된 노란봉투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제한 관련 노동조합법 개정안) 제정 촉구 농성장에서 제8차 상무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손해배상 청구를 아예 못 하게 하는 건 한계가 있을 거라고 본다. 충분한 입법적 논의를 통해 제도를 만드는 건 의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쟁의행위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는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업 관련 법률 해석의 측면에서 보면,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쟁의행위의 목적, 수단, 절차, 결과를 굉장히 엄격하게 ‘좁은 문’으로 만들어놨다. 그러다 보니 쟁의행위를 위법으로 보는 폭이 넓어졌고,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온 거다. 업무방해라는 범죄행위를 구성하는 순간 영업권을 침해한 것이 되므로, 영업손실이 손해배상의 범위가 되는 구조다. 하지만 외국에선 파업을 업무방해로 처벌한 예가 없다. 각각의 국지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인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면 그에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손해로 인정한다.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방식부터 다른 거다.

쟁의행위는 물권, 채권과 같은 권리의 행사로 헌법이 인정하는 거다. 권리 행사가 불법행위를 구성하려면 권리남용이 인정되거나 범죄를 구성해야 하는데, 우선 권리남용은 그 요건이 엄청 까다롭다. 나한테 아무런 이득이 안 되고,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거나 해코지하려는 주관적 의사가 입증돼야 한다. 객관적으로도 사회질서에 반하는 권리 행사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권리남용이 아니라 업무방해라는 범죄로 쟁의행위라는 권리 행사를 포섭해왔다. 이건 의사가 수술을 하려고 환자 몸에 메스를 댄 걸 일단 상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는 거랑 똑같은 인식이라, 다른 나라에선 이런 구도가 성립할 수가 없다. 입법적인 접근은 그것대로 하더라도, 사법적인 재판의 영역에서 법리적인 해석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법원이 판단해야 될 일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할 자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정부가 집권하든 노동계와의 관계는 대체로 긴장 상태다. 역대 정부의 노동 인식, 노동 정책의 수립과 집행, 현안 대응 등을 평가한다면?

“그걸 평가할 정도의 구체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않아 답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정부가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노동 정책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숨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사안은 정부가 바뀌어도 계승할 수 있는 정책적 관대함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게 노사정 대화의 틀이다.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건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다. 어느 정부건, 정부는 중재자, 조정자로서 3자 대화를 통해 충분히 토론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근 대통령실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 부부나 한 장관 등을 상대로 각종 의혹을 제기한 정치인, 언론인 등에 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법조인으로서, 이런 대응을 어떻게 보나?

“꽤 오래전에 읽은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라는 책이 최근 떠올라서 다시 읽었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앤서니 루이스가 미국 수정헌법 1조인 표현의 자유 역사를 쓴 건데, 그 책을 보면 미국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처음부터 왕성하게 인정된 건 아니다.

1798년에 대통령을 조롱하면 처벌하는 법(선동법)이 제정돼 언론사 대표가 처벌받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가 반전된 게 1964년, 그 유명한 ‘<뉴욕 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이다. 이를 기점으로 언론의 자유, 특히 공직자 관련 명예훼손 사건에서 사실 여부와 관련 없이 공직자 비판과 감시가 가능해졌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어떻게든 제재를 가하고 싶겠지만, 공직자의 경우엔 아주 예외적으로 상대방이 거짓말인 걸 알고 악의적으로 했다든지, 사실 확인에 현저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을 공직자 스스로 입증할 수 없다면 당신이 다 감내하라는 게 미국 법리다. 우리 판례도 그렇게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법리대로 판단하고, 인내가 필요한 부분은 인내도 해야 되지 않겠나.”

김지형 소장 프로필
2019년~ 사법연수원 운영위원회 위원장
2020~2022년 2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2017년 7~10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
2017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2013~2015년 사법연수원 석좌교수
2012년~ 노동법연구소 해밀 연구소장
2005~2011년 대법원 대법관
2003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2001년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86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58년 전북 부안 출생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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