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수호”…코미디언에서 ‘올해의 인물’로 거듭난 이 남자[위클리 기사단]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2. 12. 1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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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
美타임·英 FT 등 선정 ‘올해의 인물’
전쟁 초반 대피 대신 수도 키이우 남아
국민과 우크라군 격려하며 투지 불살라
야욕 위해 수천명 희생시킨 푸틴과 정반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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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서 국민들의 회복을 위해 힘쓰는 동시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에 앞장섰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 지 1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이 사이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전쟁 초기 러시아가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수일 안에 우크라이나를 정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성급한 예측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이 항전에 항전을 거듭하면서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드는 등 전황이 바뀌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가슴 속에 불을 지핀 이 남성을 향한 세계의 시선도 바뀌었습니다. 임기 초반 ‘정치 초보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이 남성은 우크라이나 사태 약 1년 만에 ‘자유의 수호자’로 거듭났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에서 그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신들의 극찬도 이어졌습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타임은 “용기도 두려움만큼 널리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FT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권위주의가 팽배하는 세계 경쟁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기수를 자처했다는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대통령 임기 초반 ‘정치 아마추어’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젤렌스키 대통령이 올해의 인물로 거듭난 데는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 그가 보인 대응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전쟁 발생 초기 세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해외로 피신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미국이 그에게 피난 통로를 제안했음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거절하고 수도 키이우에 남았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라며 “그 누구보다도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만큼 여기에 남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모습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물론 서방 국가들도 감동시켰습니다. 당시만 해도 개그맨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건 기대가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쟁 초기 전 세계의 관심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였습니다. 대대적 공세를 퍼부으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표적 1순위가 바로 젤렌스키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그를 암살해야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투지도 꺾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와 아이들이 러시아 폭격을 피해 대피한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참모진 및 경호원들과 지하 방공호로 이동했습니다. 곧 러시아 특수부대가 침투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에는 실패했습니다.

러시아군의 한 차례 공습이 끝난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통령궁 인근에서 영상을 찍고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던 말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여기 있다. 우리 모두 여기 있다. 우리의 군대도 여기에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참전 이후 부상으로 입원한 군인과 만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 = 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에게 라디오가 있었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SNS가 있었습니다. 그는 SNS를 통해 수시로 영상을 올리며 우크라이나의 피해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냈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국민들의 용기를 북돋우면서 ‘정의로운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갔습니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수천명의 목숨을 희생시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진두지휘에 자극을 받은 우크라이나군이 거세게 항전하면서 최근 전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키이우와 하르키우 등 주요 도시들을 노리는 러시아군과 맞서 싸우며 최근 함락됐던 우크라이나 영토의 절반을 되찾았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점점 후퇴하는 러시아군과 달리 우크라이나군은 기세를 몰아 진격해나가고 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FT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용감하기보다는 책임감이 더 큰 사람”이라며 “내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싫었다. 그 뿐이다”라고 전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기까지는 아직 오랜 시간이 남았지만 우크라이나 내 일부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이 나옵니다. 우크라이나군이 사전에 지뢰를 설치했거나 침공 직후 다리를 즉시 폭파시켰다면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추고, 이를 통해 수일 만에 수도 등 영토가 함락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끝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전면 침공을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것을 문제 삼는 일부 여론에 시달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국민들과 세계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진두지휘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것 같습니다. 전시 상황 속 젤렌스키 대통령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측근들 사이에서도 그의 용기를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안드리 예르막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3년 전 젤렌스키 대통령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 대통령이 그의 시대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며 “내가 옳았다”고 말했습니다.

율리아 멘델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대변인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두고 “세상이 평화로울 때는 위대한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한 경험과 훈련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전쟁의 혼돈 속에서 그는 혼돈 그 자체가 됐다. 마치 자신의 집에 돌아온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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