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타봐라" 임원에 지시…자존심 접은 정의선 진짜 속내는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2) 전기트럭 vs 수소트럭
현대차, 수소차 기술도 '글로벌 탑티어' 수준
수소트럭 '엑시언트' 누적주행 500만㎞ 달성
테슬라 세미 트럭에 주행거리·성능은 못 미쳐
정의선 "테슬라 타보고 장단점 몽땅 뜯어봐라"
애플에 무너진 '노키아의 길' 가지 않겠단 의지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발 빠르게 전환
“빌 게이츠가 원한다면 세미 트럭을 직접 운전해볼 수 있습니다”
테슬라 대형 전기트럭 ‘세미’의 첫 인도식을 며칠 앞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행사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를 초대하는 트윗을 날립니다.
머스크와 게이츠는 앙숙입니다. 두 남자는 2년 전 코로나 봉쇄로 설전을 벌였고 지난 4월엔 테슬라 공매도를 놓고 문자 메시지로 다투기도 했습니다. 세미 트럭이 공개 5년 만에 납품을 시작한 뜻깊은 날, 머스크는 왜 게이츠를 초대한 걸까요.
게이츠는 2020년 자신의 블로그에 “전기차가 배터리 기술의 큰 발전에도 대형 화물차나 여객기의 대체재가 되기 힘들 것”이라며 “무거운 장거리 차량엔 다른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테슬라 세미와 같은 대형 전기트럭은 성공이 어렵다고 본 것입니다. 머스크는 이 같은 게이츠의 비판을 잊지 않고 “직접 운전해보라”며 조롱한 셈입니다.
‘꿈의 에너지’ 수소
그렇다면 친환경 장거리 상용차엔 전기차 외에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당시 게이츠는 바이오 연료라고 언급했지만, 전문가들은 수소전기차를 유력한 경쟁자로 보고 있습니다.
수소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무한 에너지이자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입니다. 수소의 질량당 에너지 밀도는 휘발유의 4배로 효율이 높습니다. 수소를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해선 연료전지가 필요합니다. 수소를 넣으면 전기가 나오는 발전기로 장시간 충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점이 전기차보다 유리합니다.
수소전기차는 전기차의 배터리 대신 연료전지 발전기와 수소탱크를 탑재합니다. 전기차와 수소전기차의 차이점은 전기를 차 밖에서 만드냐(전기차), 안에서 만드냐(수소차)입니다(권순우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
장거리 차량엔 수소차가 적합?
전문가들은 대체로 주행거리가 짧은 도심 주행엔 전기차, 주행거리가 긴 버스나 트럭 등 장거리 대형차량엔 수소전기차가 유리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비용 때문입니다. 수소전기차는 공차중량이 전기차에 비해 가볍습니다.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모두 주행거리를 늘리려면 배터리 적재량을 늘리거나, 수소탱크 개수를 늘려야 합니다. 배터리 무게에 비해 수소탱크가 가볍기 때문에 차량이 커질수록 수소전기차의 무게는 가벼워집니다.
40t 대형 트럭의 경우 전기차 파워트레인이 수소전기차에 비해 3t가량 무겁습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주행거리 100㎞까진 전기트럭 비용이 저렴하지만 100㎞를 넘어가면 수소트럭이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됩니다. 트럭에 비해 가벼운 소형·중형 승용차는 전기차의 경쟁력을 갖는 구간이 이보다 길어집니다.
정리하면 전기차는 주행 거리를 짧게 설계할수록 배터리가 덜 들어가서 저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수소전기차는 수소만 더 실으면 되기 때문에 주행거리에 따른 가격 인상률이 낮습니다. 대신 연료전지 시스템을 탑재해야 하므로 기본 가격이 비쌉니다.
수소 인프라 구축이 걸림돌
이론적으로 보면 대형 상용차 시장에서 수소전기차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대중화 걸림돌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수소차가 다니려면 수소전기차 충전소가 필수입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한국 기준 충전소 설치 비용은 20억~30억원으로 전기차 대비 40~50배 높습니다. 정부에서 보조금으로 50%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부담입니다. 현재 서울 수소차 충전소는 10여곳에 불과합니다. 수소 연료비도 전기보다 비쌉니다.
소비자들의 수소에 대한 인식도 장애 요인입니다. ‘수소폭탄’이라는 이미지 때문입니다. “우리 집 근처 수소충전소가 폭발하면 어쩌나”라는 우려는 충전소 확장을 더디게 합니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초기 인프라 구축을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소차 진영에 무엇보다 치명적이었던 건 ‘니콜라 사기’ 사건입니다. 니콜라는 2015년 창업한 미국 수소전기트럭 회사입니다. 한때 시가총액이 포드를 넘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공매도 업체 힌덴버그리서치가 니콜라의 기술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폭로되면서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실제 수소트럭이 달리는 영상은 동력 없이 내리막길에서 굴린 것으로 드러나 업계와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한때 제2의 테슬라로 거론됐던 ‘스타’의 몰락은 인프라 투자가 절실한 수소차 업계에 큰 타격을 줬습니다.
현대차 수소트럭의 도전
현대차는 지난 8일 수소전기트럭 ‘엑시언트’의 국내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당초 내년이었던 일정을 앞당겼습니다. 업계에선 테슬라의 세미 트럭 인도를 의식한 행보로 보고 있습니다. 엑시언트는 2020년 스위스에서 운행을 시작한 뒤 2년 만에 누적 주행거리 500만㎞를 넘은 세계 유일 양산형 수소트럭입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수소차 양산 기술을 갖추고 있는 완성차 업체는 현대차와 도요타가 유일합니다. GM의 연료전지 원천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수소전기차를 양산한 적은 없습니다.
공개된 제원만 보면 엑시언트 수소트럭은 테슬라 세미 트럭에 못 미칩니다. 엑시언트의 출력은 최대 476마력, 세미는 1000마력으로 알려졌습니다. 1회 충전 주행거리 역시 △엑시언트 570㎞ △세미 800㎞입니다. 그러나 테슬라가 세미 트럭 공개 후 인도까지 5년이 걸린 점을 생각하면 엑시언트도 향후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판매 가격은 테슬라가 세미의 가격을 공개하지 않아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습니다. 엑시언트는 국고보조금 2억5000만원과 지자체 보조금 2억원을 반영하면 1억6000만~2억1600만원 수준입니다.
테슬라는 2017년 세미 트럭 첫 공개 당시 500㎞ 모델 15만달러(약 1억9500만원), 800㎞ 모델 18만달러(약 2억3400만원)를 제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가격보단 높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벤처 캐피탈인 루프 벤처스(Loup Ventures)는 “세미의 가격은 경쟁 차종보다 30% 높은 18만달러와 21만달러(약 2억7300만원)로 예상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겸손함 뒤에 숨은 야심
지난 16일 조선일보는 현대차·기아 임원들이 테슬라 차량을 타고 서울 양재동 사옥을 출퇴근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정의선 회장이 “임원들이 테슬라를 직접 타보고 장단점을 보고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는 모델3와 모델Y 60여 대를 리스했고 임원 1인당 1~3개월간 빌려주고 있습니다. 이 시승 행사는 200명 임원을 대상으로 1년간 진행된다고 합니다.
타사 차량 이용을 꺼리는 보수적인 완성차 회사 문화에서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자존심은 접어두고 전기차 1등 회사를 철저히 배우겠다는 의지입니다. 이 뉴스는 테슬라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자 발 빠르게 뒤쫓아간 삼성전자와 과거의 영광에 머문 노키아가 어떤 다른 길을 걸었는지 소비자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구글을 업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올랐습니다. 반면 노키아는 휴대폰 사업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팔리며 한순간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테슬라가 일으킨 친환경 모빌리티의 물결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현대차는 적어도 노키아의 길로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합니다. 그 성과는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른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 중에서 현대차만큼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차에 진심인 곳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현대차의 수소트럭이 ‘꿈의 에너지’ 시대를 열 수 있을지 기대해 봅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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