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예고된 의료붕괴'..."3년간 봉쇄 말고 뭐했나?"[김지산의 '군맹무中']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이달 4일 중국 포털 왕이에 '왜 모든 곳에 충분한 규모 병실을 건설해야 할까? 이것만이 중국의 의료 붕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39도 고열인 아이를 안고 미친 듯이 병원 안으로 돌진하는 부모가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산소를 흡입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입원하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썼다. 그는 "환자의 가족 감정을 달래고 사회 안정을 유지하려면 촘촘하더라도 많은 수의 병실을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로 코로나를 폐기한 뒤 급격하게 늘어난 코로나19 감염 환자들 때문에 중국 의료 시스템이 마비되자 등장한 글이었다. 댓글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한 누리꾼은 "전염병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뭘 했나?"며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질타하는가 하면 또 다른 누리꾼은 "병원 입구에서만 10억명이 울부짖는다"고 썼다.
가장 많은 '좋아요' 추천을 받은 댓글은 "병원을 지으면 의사는 땅에서 솟아나나? 의사 한 명 만드는 데 5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중국 의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이었다.
의사 부족이야말로 중국 의료 위기의 핵심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9명으로 OECD 평균 3.4명보다 0.5명 적다. 중국에서 연간 양성되는 의대생이 60만명이다. 이중 실제 의사가 되는 이는 고작 10만명 정도다.
어렵게 의대에 입학해놓고 왜 미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포기하는지, 한국 사람 눈으로 바라보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와 다른 첫 번째 지점은 의대 입학이다.
입시 전문 사이트 겅싼가오카오가 분석한 2023년 전국 의대 입학 합격선에 따르면 가오카오(중국판 수학능력시험, 750점 만점) 점수 기준, 이과생은 상하이 푸단대가 687점으로 가장 높고 간쑤중의약대학이 426점으로 가장 낮았다. 문과생을 보면 푸단대가 605점, 랴오닝허스의대가 474으로 각각 최고, 최저점이었다.
중국 최고 명문 베이징대를 보자. 2020년 지역별로 베이징대 입학 합격선이 높게는 문과가 678점, 이과가 703점이었다.
고득점자들이 의대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의사가 기피 직업이어서다. 여러 요인 중에서도 주된 건 저임금이다. 대형 의료계 종사자 커뮤니티인 딩샹위안에서 2018년 약 1만5000명 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7.5% 의사들이 수입에 '만족한다' 30.2%가 '보통이다', 62.2%가 '불만스럽다'고 답했다. 60% 의사들은 '다른 직군으로 이직하고 싶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 해 한 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의사들 연평균 수입은 약 6만7000위안(약 1260만원)이었다. 같은 해 전국 대기업 근로자 평균 임금이 6만8380위안이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어느 직군보다 오랜 기간 공부하고 수련한 것을 고려하면 권장할 만한 일이 못 된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에게 폭행당하고 심지어 살해되는 일도 간헐적으로 벌어진다. 2011년 타임스지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으로 중국 의사를 꼽았을 정도다.
의사 기피 현상은 의사 수 부족을 야기하고 진료에 과부하가 걸리며 결국 의사를 그만두면서 의사는 점점 줄어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악순환의 최초 고리는 역시 '돈'이다. 보상이 적으니 사람이 몰리지 않으면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근본에는 낮은 의료비가 자리 잡고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공립병원이 국가 보건의료 체계의 핵심이었는데 개혁개방 시대에 이르러 만성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보건의료 예산을 감축했다. 그러자 공립병원 전체 수익에서 정부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7.8%에서 2016년 9.1%로 고작 1.3%p 증가에 그쳤다. 고령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중국의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시장은 정부가 통제한다. 수급은 엉망이 되고 가격정보는 왜곡됐으며 시장 경쟁은 느슨해졌다. 적정 수준의 의료인 급여를 챙겨주지 못하는 지경에 몰리면서 중국 의료의 양과 질은 늘어나는 인구와 치솟는 고령인구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2019년 말 우한 폐렴 사태 이후 중국 정부는 3년간 도대체 뭘 했느냐는 누리꾼의 질타는 빈말이 아니다. 막무가내 봉쇄에 몰입할 게 아니라 제로 코로나 기간을 정해놓고 예방 접종률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최근 몇 년 사이 의대 졸업생들을 어떻게든 끌어모으는 식으로 가용한 의료인을 집중적으로 양성했어야 했다.
중국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제2, 제3의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는 시대에 통제와 통계 왜곡, 인민의 희생 위에 양적 성장에만 몰두할지, 성장이 다소 더디더라도 G2(주요 2개국)에 걸맞은 의료복지를 실현할지 선택해야 한다.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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