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 열라면’ 창작자에게 집밥 비법을 물었다[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
“온전한 라면 한 개는 부담스럽지만 푸짐하게 먹고 싶을 때, 꼬들하게 익힌 면발을 후루룩, 순두부 한 큰술 푹 떠 꿀떡, 깊은 밤 속까지 뜨끈해집니다.”
왜 이렇게 끓일 생각을 못 해봤을까. 물은 200㎖만 냄비에 붓는다. 팔팔 끓으면 ‘뚝’ 자른 순두부 반 봉지를 먼저 넣고 끓인다. 면과 스프도 절반만. 잘 익으면 불을 끄고 ‘톡, 톡, 톡, 톡’. 순후추를 네 번 뿌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야식의 죄책감을 덜어주면서도 충만감은 라면 온 개를 넘어서는 이 레시피는, 트위터 사용자 ‘마포농수산쎈타’가 2020년 7월에 올린 것이다.
그는 수년간 트위터 계정에 소박하고도 맛깔나는 일상의 끼니를 공유해왔다. 요리를 두려워하던 이가 그의 레시피를 따라하고 ‘감동의 인증샷’을 올리는 게 트위터에서 꽤 흔한 일이 됐다.
그때마다 마포농수산쎈타는 ‘꾸벅,...’하고 감사의 답장을 보낸다.
랜선으로 밥상과 술상의 영감을 나눠온 그가 최근 요리책을 냈다. <밥 챙겨 먹어요, 행복하세요>. 트윗 말미에 덧붙인 인사말이 그대로 제목이 됐다.
“요상한 건 이 책이 에세이도 아니구 요리 레시피인데 희한하게 마포농수산쎈타님이 말씀허시면 가슴이 벌렁 벌렁 뜨끈뜨끈해지는 거예요.” <술꾼도시처녀들> 작가 미깡은 마포농수산쎈타의 말투(혹은 글투)를 빌려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마포농수산쎈타의 요리엔 오랜 세월 스스로를 먹여온 생활인의 관록이 묻어 있다. ‘새마을 운동’ 모자를 쓰고 소주를 거머쥔 일러스트대로 그는 연세 지긋한 아저씨일까?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밥상 앞에 매일 남의 행복을 빌어주는, 소탈하고 푸근한 그를 있는 그대로 좋아할밖에.
먹을 것을 직접 만들어 나와 남을 먹이는 마음에 대해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면으로 질문을 보냈더니 트위터의 어투 딱 그대로 답이 왔다. 계란을 ‘겨란’으로 쓰고, 구두점 앞에 반점을 찍는 등 그만의 특색이 담긴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전한다. 집밥이 막막한 이들이 참고할 만 한 내용이 많았다.
“짤 수도 싱거울 수도, 그럴 수도 있는 거지!”
- 처음 쎈타님 계정을 보고 밥집 혹은 술집이라도 해본 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메티즌> 인터뷰를 보니 음식 관련 일을 하신 적이 전혀 없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쎈타님의 ‘생존 요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요걸 딱 먹고싶은데, 막상 밖에서 사먹게 되면은
아차..이 맛이 아닌데,.싶을 때가 있지요..
이를테면 어디보자,. 제육볶음이 있겠어요,.
이름은 같아두 집집마다 가게마다
고추장 삼겹살같기도, 바싹볶은 돼지불고기같기도, 또 야채 왕창에 국물 자작하게 볶아내는 집도 있지요.,
먹고싶은 맛의 음식을 딱 먹고싶다.. 그런 욕심으루 밥해먹기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 다만 한 달간 요리학원에 다녀본 적은 있으시다고요. 요리학원에서 뭘 배우셨는지 궁금해요.
요리학원에는 순전히 변덕으로 다녀보았는데요.,
늘상 손닿는대로 뚝딱 대충 만들어먹다보니
정해진 레시피따라 계량눈금을 맞추고 하는게 영 성미에 맞지는 않더라구요.. 아이구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가르침 중에 두가지가 참 기억에 남아요,.
하나, 도마가 지저분하면 뒤집어라.
둘, 음식을 담을 때는 봉긋하게.
돈까스 옆에 똑같이 양배추채를 담더라두
봉긋하게 모아담으면은 훨씬 보기에 예쁘구 좋습니다 ^ ^
- 요리 또는 밥을 한다는 것에 관해, 누구에게 혹은 어떤 환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으신 것 같나요?
처음 음식을 하게되면은
이거 실패하면 어쩌나..하구 걱정이 앞설텐데요,.
간이 싱거우면 양념을 더 하면 되는 일이고,
간이 짜면 물을 부으면 되는 일이고,
덜 익었다면 한번 더 익히면 되는 일이고,
너무 익혔다면 또 그럴수 있지..
늘 휘리릭 뚝딱.. 그거 뭐 별거 없다는 식으로 음식을 하시던 어머님께
실패를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운 덕이지요.,
- 책에 실린 ‘외할머니 이북식 만둣국’ 레시피가 인상적이었어요. 고기를 쓰지 않는 담백한 조리법 같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요리를 잘 하셨나 봐요.
외갓집엘 가면은 꼭 바삭한 고추부각이 수북하게 담겨있었지요,.
어린 입에는 짭쪼롬하기도 하고, 가끔가다 아주 매운 고추가 들어있기도 했지만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가 않어서 끝도없이 집어먹게 되거든요..
그러다보면은 반지르르하게 참기름 바른 쑥개떡을 내어주시는데
쑥이 어찌나 많이 들어갔는지
더부룩하질 않고 꿀떡 넘어가는게 기가막히구요,.
투박하지만 손맛 좋은 음식들에 평소 두세배는 먹게 되지요.,
언제 또 당신보다 키가 커졌냐며
엉덩이를 한대씩 철떡 얻어맞고 그랬어요,.
먹는걸로 야박하게 구는 거 아니라는 말과 함께
배고픈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밥 한사발씩 내주시곤 했지요..
아주 호쾌하고 멋진 분이십니다..
“작은 실패가 쌓이면 경험이 됩니다”
- 쎈타님은 원래 좀 ‘간을 잘 보는’ 그런 사람인가요? 요리 처음 할 때부터 ‘맛있게 잘 한다’ 소리를 듣는, 뭐든지 밖에서 한 번 먹어보면 곧잘 따라하는 그런 사람이요.
아이구.. 그건 또 영 아닌 것 같어요,.
오늘만해도 모처럼의 파래무침이 짭게 되어서는
얼른 파래 한덩이 더 넣어다가 이렇게 저렇게 수습을 했거든요..
얼추 이렇게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덤볐다가
내가 지금 뭘 먹고있나.,
쓰린 마음으루 먹는 날도 있습니다..
- 라면이나 우동 같은 기성 제품을 끓일 때, 봉지의 레시피는 철썩같이 지키는 타입이신가요?
에고.. 아주 대충대충 하는 편입니다..
평소 라면 끓일 때 물이 이정도 될텐데
그것보다 좀 적으니까 이정도려나,. 하구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했다가
어이구 깜짝 놀래서 반성하고 그래요..
- ‘작은 실패가 쌓이면 경험이 된다’는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트위터엔 맛있는 것만 올려주시지만, 처음 요리할 땐 당황하신 적도 있었을 것 같네요. 인상적인 실패의 기억을 나눠주신다면요?
처음 감자전을 해봤던 날이 기억나네요,.
어디서 또 양파를 좀 넣으면 맛나다는걸 주워듣고서는
감자에 양파를 왕창 갈아넣었더니..
어이구 이게 웬걸 죽이 된거예요 ,.
후라이팬에는 들러붙지, 기름은 계속 잡아먹지..
결국 느끼하고 죽도 전도 아니게 된 들척지근한걸
초간장 찍어 꾸역꾸역 먹었지요..
그 기억이 남아서 지금도 감자전을 부칠때는
바짝 긴장하게 됩니다.,
- 요리할 때 주로 무엇을 참조하시나요? 유튜브 요리 채널 같은 것도 보시나요? 혹은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해요.
유튜브나 방송은 잘 보지를 않구요..
주로 음식 에세이 책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
멋진 음식 이야기보다는 맛깔지게 먹는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아주 즐겁고 쓰고 그렸다는 기분이 전해지는 책을 찾으면은 몇번이고 보게 되더라구요.,
요즘은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다카기 나오코 님의 ‘식탐 만세!’를 참 재미나게 보고있지요..
“나를 위해 아주 조금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
- ‘오늘은 뭘 해먹자’ 하는 것은 대체로 어떻게 정해서 실행에 옮기시나요?
오늘은 날이 추우니까 국물이 땡기네,.
냉장고에 어디보자 양배추가 많긴한데
시원한 배춧국물이 먹고싶으니까 알배추나 하나 사볼까..
마침 또 오늘 집 앞 마트서 세일한다구 문자가 왔었지..
거긴 배추 씨알이 좀 작던데 어쩌나.,
번뜩 떠오르는 메뉴가 있으면은 슬쩍 마트에 들르기도 하구요,.
냉장고 앞에서 괜히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이거에다 저거 요만치 남은걸루 국이나 끓여야겠다..하는 날도 있지요. .
배추 하나만 사온다는게
이것저것 담다보니 한바구니 그득해져서는
계획에 없던 채소부자가 되기도 합니다,.
- “남을 위하는 마음만큼 나도 위해주고 싶을 때, 요리를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문장을 읽고 뭉클했답니다. ‘너무 완벽하게 하지 말자’, ‘관대하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도 왠지 위로가 돼요. 당장 오늘의 집밥이 막막한 사람에게 ‘이것부터 해보라’ 조언하신다면!
잡히는대로 푸릇한 채소 한봉다리 사오는 것으루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데쳐다가 소금 마늘 참기름 넣어 조물조물 땡..
나물무침도 좋구요,.
간 맞추기에 자신 없다면은
그냥 오이 뚝뚝 썰어다가 고추장 요만치 곁들여도 훌륭하지요..
냉동 볶음밥 땡 돌리는 김에
겨란후라이 하나 얹기만해도
보기에도 예쁘고 괜히 기분이좋아요, .
나중에 간식으로 먹으려던 귤도 하나 옆에 꺼내두면은
별것 안했는데도 밥상이 푸짐하게 차 보입니다..
집밥이라고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만들 생각을 하자니 아득해지고 그렇거든요..
날 위해 아주 조금의 수고를 더해서 한 상 차려먹고나면
뱃속도 마음도 꽉 차는게 제법 뿌듯한 즐거움입니다,.
- 트위터를 보면 작가님의 채소 요리가 맛있어 보인다는 반응이 많아요. 채소를 어려워하는 사람 혹은 채식을 하는 사람이 기억할 만한 몇가지 원칙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유채 시금치 참나물 취나물 쑥갓,.
향긋한 채소들은 살짝 데치거나 생으로 툭툭 썰어다가
질 좋은 들기름 쪼로록 소금 몇 톨을 토로록.. 요것만으로도 맛이 좋지요..
가지 피망 파프리카 애호박 단단한 채소는 기름 넉넉히 지져주고요,.
표고 양송이 느타리 팽이.,
버섯들은 간장과도 궁합이 좋으니까는
기름없이 찬찬히 굽다가 팬에 간장을 아주 약간 쪼로록..
태우듯이 한번 지져주면은 입맛 확 살아나는 향기가 올라옵니다..
원칙이라 부를만한 것이야 못 되지만서도..
간단하구 맛난 방법입니다,.
진심이 담긴 음식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 쎈타님 계정을 보면, 주변 사람들을 잘 해 먹이는 분일 거란 생각이 들어요. 쎈타님도 누군가 내어준 먹거리에 감동한 기억이 있나요?
벌써 몇년 전 일이 되었네요,.
한 친구가 여름이라구 서리태 콩물을 한 통 가득 싸주었는데
이게 말이 콩물이지 아주 걸죽하고 진해서는
콩이 얼마나 들어간건지.. 덥석 받기가 미안할 정도 더라구요,.
직접 콩을 불려다가 삶아서 갈아 만들었다는 이 친구는
요리의 요 자만 들어도 치를 떠는 성격이거든요..
평소에 요리와는 담을 쌓은 친구가
그 더운 여름날 해다 준 콩물이 여름철마다 문득 떠오릅니다..
- 밖에서 밥을 먹을 때는 어떤 기준으로 식당을 고르시나요?
사람이 많지 않은 곳, 노랫소리나 티비 소리가 크지 않은 곳을 자주 찾게 됩니다,.
물론 음식 메뉴도 중요하지요..
공통적으로는 음식에 단맛이 적은 식당을 좋아하구요..
- 혹시 평소 남몰래 존경해왔거나 기억에 남는 ‘단골집 사장님’ 같은 분이 있으신지...
시장 끄트머리에 중국식 만두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거든요,.
우연히 들어가서 만두 두어가지에 마라탕을 곁들여다가
고량주에 맥주나 따악 말아야겠다.. 하는 심산으루
무슨 만두가 가장 맛난지를 여쭈었지요..
샐러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샐러리만두를 좋아할 것이고
배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배추돼지만두를 좋아할 것이고
버섯을 좋아하는 사람은 표고버섯만두를 좋아할 것이니
뭐든 좋아하는 걸루 시켜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람 입맛이 천차만별인데 가장 맛난게 정해져있을리가요..
그 날 주문한 만두는 모두 아주 맛있었습니다 ^ ^
이 기사는 매주 금요일 오전 도토리 에디터가 보내드리는 식생활 뉴스레터 ‘끼니로그’에 소개되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검색창에 ‘끼니로그’를 입력하거나, 주소창에 아래 주소를 입력해서 신청해 주세요. 음식을 고르고, 맛있게 먹고,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노력과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 나눠요.🙂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22110?groupIds=215408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