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라인 넘었다”…미국 핵타격 노리는 북한, 막을 수 있나 [박수찬의 軍]
1992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제2국제공항. 북한 평양행 비행기를 타려던 2명을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저지했다.
이들의 이름은 유리 베사로보프와 블라디미르 유사체프. 베사로보프는 미사일 설계를 담당하던 마케예프 설계국 소속으로 북한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의 원형인 R27 미사일 개발 주역이었다.
유사체프는 엔진 설계 전문이던 이사예프 설계국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출국하지 못했지만, 미사일 관련 자료는 북한으로 넘어간 뒤였다.
1992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옛소련의 미사일 기술과 자료, 인력은 하루아침에 주인을 잃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던 평양은 이같은 혼란을 틈타 이들 모두를 손에 넣었다.
◆무력시위 대신 ‘실질적 전투력 갖추기’
북한 국방과학원의 중요연구소는 “지난 15일 오전 서해위성발사장에서 140tf(톤포스:중량을 밀어올리는 추력) 추진력 대출력 고체연료발동기(엔진) 첫 지상분출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16일 전했다.
화성-17형은 실질적인 전투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화성-17형의 길이는 24m로 추정된다. 이 정도 길이를 지닌 ‘괴물 ICBM’은 러시아의 토폴-M(23m), RS-28(36m) 등이 있다.
이들 미사일은 대부분 지하에 건설된 사일로에서 발사된다. 이동을 하지 않아 크기가 커도 문제는 없다.
반면 화성-17형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러시아처럼 ‘괴물 ICBM’을 보유했다는 무력시위와 기술적 과시 효과는 있지만, 길이가 23m에 이르면서 화성-17형을 탑재한 이동식발사차량(TEL)은 커브길에서 회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거워서 일반 도로나 산길 운행도 어렵다.
화성-17형 발사가 평양 순안 남쪽 신리 미사일 지원시설 인근에서 이뤄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한이 만들 고체연료 ICBM의 모습은 어떨까.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북한이 공개한 신형 고체연료 엔진을 쓴다면 직경 2m, 길이 17m 정도의 ICBM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화성-14형(19m)보다 짧으며, 중국 최초의 고체연료 ICBM인 DF-31(13m)보다는 조금 길다.
일반적으로 고체연료 ICBM은 3단으로 구성된다. 이 경우 신형 엔진으로 1단 추진체를 구성하고, 북극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2단 추진체를 만들며, KN-23 등의 고체연료 단거리탄도미사일로 3단 추진체를 제작하면 1만㎞ 이상을 날아갈 ICBM을 제작할 수 있다.
길이도 짧아지면서 이동 가능한 도로가 늘어나고, 활용할 수 있는 TEL도 많아진다. 발사 전 연료 주입 과정도 생략할 수 있다. 연료 공급 지원부대의 필요성이 사라져 운용 병력 규모도 줄어든다.
이는 미 본토를 겨누는 북한의 핵 타격 능력이 미국 감시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미 본토 전역에 대한 기습 핵공격이 가능해진다. 미국으로선 심각한 사안이다.
연료와 산화제를 혼합해 고형화하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섞이면 연소 시 의도치 않은 폭발이 발생하거나 불완전 연소가 발생할 수 있다. 거품이나 불순물이 전혀 없어야 한다.
엔진의 크기와 추력을 늘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론적으로 고체연료는 유사한 부피와 질량의 액체연료보다 출력이 낮다.
로켓이나 항공기 엔진 개발 성공까지는 최소 10여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고체연료 엔진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엔진 기술의 정교함도 더해졌다는 평가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기존 미사일은 엔진 노즐핀 4개로 추진력이 조종되는 단점이 있었으나, 신형 고체연료 엔진은 노즐핀 없이 엔진 효율을 유지하고 추진력 전환이 가능한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열병식 공개→시험발사’ 패턴 재현 가능성
북한은 15일 진행했던 신형 대출력 고체연료 로켓엔진 시험을 16일 공개하면서 “최단기간 내에 또 다른 신형전략무기의 출현을 기대한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급도 함께 공개했다. 신형 전략무기를 가까운 시일 내에 드러내겠다는 의도를 밝힌 셈이다.
화성-12형은 같은해 5월 14일 시험발사 성공 사실이 공개됐고, 7월4일과 28일 화성-14형 IC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같은해 11월 29일 화성-15형 ICBM 시험발사도 이뤄졌다. 모두 3.18 엔진이 쓰인 미사일이다.
앞서 2018년 2월 8일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서 KN-23이 처음 등장했고, 2019년 5월 첫 발사가 이뤄졌다. 75주년 열병식에서도 신형 고체연료 엔진을 탑재한 중장거리 미사일이 공개되고, 이후 시험발사가 단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의문은 단 하나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카드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핵능력 고도화를 향해 질주하는 북한에 우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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