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수학자의 연구 여행기, 41년 역사의 군론학회 GSA

조가현 기자 2022. 12.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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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대 수학 박사의 수학 로그 4화
서울대 이승재 박사후연구원. 수학동아 DB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에서 대칭과 관련이 깊은 ‘군론’을 연구하는 이승재 박사후연구원입니다. 

제가 여름에 영국으로 출장을 갔던 이유 중 하나는 군론에서 규모가 큰 학회 중 하나인 ‘군 세인트앤드루스(Groups St Andrews(GSA))’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수학자는 학회에 참석해 서로의 연구 결과와 관심사를 공유하고, 함께 연구할 사람을 찾거든요. 이번엔 4년마다 열리는 전통 있는 군론학회의 참석기를 소개하겠습니다.

● 전 세계의 군론 수학자 모이다!

수학자에게 학회는 중요한 일이면서도 큰 즐거움입니다. 관심 있는 수학 연구의 최신 동향을 알 수 있고, 평소 만나기 어려운 동료 수학자와 만나 교류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 연구자에게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기회기도 하지요. 또 다른 곳에 여행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여행과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으니까요.

수학계에는 다양한 학회가 있습니다. 일회성 특별 학회부터 분야별 학회, 전 세계 수학자가 참석하는 국제학회까지 규모와 일정이 다채롭지요. 개막식에서 필즈상을 시상하는 세계수학자대회는 4년마다 열리는 대표적인 국제학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GSA는 군론과 이와 관련있는 분야의 전 세계 수학자가 모이는 국제학회예요. 1981년 시작된 이래 41년 동안 꾸준히 열린 역사 깊은 학회입니다. 군론을 연구하는 수학자는 이 학회에 오는 걸 즐거워하지요.

● 낮에는 연구 발표, 밤에는 친목 도모! 

저는 2017년 8월 6일부터 12일까지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열렸던 10회 GSA에 처음 참석했어요. 당시 영국에서 군론을 세부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저에게 GSA는 꼭 가보고 싶은 학회였고, 저와 친분이 있는 연구자들도 다 참석하기로 돼 있었지요.

기대만큼이나 저의 첫 GSA는 정말 좋았습니다. 지금은 모두 교수가 된 그리웠던 동료인 크리스토퍼 볼 독일 빌레펠트대학교 교수, 알레스테어 리터릭 영국 에식스대학교 교수, 폴라린스 영국 링컨대학교 교수를 만나 수학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즐겼거든요. 낮에는 최근 연구 동향을 알 수 있는 발표들이 이어지고, 주말과 밤에는 친목 도모 행사들이 진행됐습니다. 일요일에는 버밍엄대 박사과정 학생들의 안내로 학교와 시내 중심가를 둘러봤고, 수요일에는 영국의 중세시대를 엿볼 수 있는 워릭성에 소풍을 갔지요.

버밍엄대 시계탑과 워릭성에 방문했다. 수학동아 DB

● 군론학회 이름에 세인트앤드루스가 있는 이유는?

최초의 GSA는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학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인트앤드루스대와 GSA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1979년 군론 수학자들은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소규모 모임을 하며, 더 많은 수학자가 모일 수 있는 학회를 만들기로 계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981년 첫 GSA를 7월 25일부터 8월 8일까지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열었습니다. 본래는 일주일만 학회를 진행하고자 했는데 참여자들이 2주를 머물기를 원하면서 첫 주에는 주요 연사가 강의하고, 둘째 주에는 세미나를 진행하는 2주 프로그램으로 열렸어요.

1회 GSA 이후 군론 수학자들은 GSA를 4년마다 열기로 정하고, 1회보다 더 많은 수학자가 참여하기를 바라면서 다루는 수학 주제의 범위를 더 넓혔습니다. 그 결과 2회 때에는 43개국에서 총 366명의 수학자가 참여했지요. 3회 때에는 2회에 참석한 수학자를 대상으로 어떤 수학자의 연구가 궁금한지 물어 강연자를 섭외해 진행했대요. 

이렇게 발전을 거듭하며 GSA는 성공적으로 진행됐는데 4회 개최를 앞두고 수학자들은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아닌 다른 곳에서 학회를 열기로 합니다. 결국 1993년 아일랜드 골웨이대학교에서 GSA가 열려요. 이후 GSA는 영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돌아가며 개최해요. 이번 GSA까지 총 6개의 학교에서 진행됐고, 제 모교인 옥스퍼드대에서도 2001년 6회 GSA를 열었어요. 

1981년 첫 GSA, 1985 2회 GSA 모습. 수학동아 DB

● GSA 연사, 수학계 가장 권위 있는 필즈상 수상

GSA를 만들고 이끌던 군론 수학자들에게 4회 GSA는 세인트앤드루스대를 벗어나 열린 첫 GSA였다는 것 말고도 의미가 있는 학회였습니다. 5명의 주요 연사 중 한 명인 예핌 젤마노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교수님(우리나라 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이 1년 뒤인 1994년 스위스 취리히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받았습니다.

필즈상은 수학자 개인에게 주는 상이지만, 수상자의 연구 분야 전체가 인정받는 분위기라 수상자의 동료 연구자, 같은 분야 연구자가 모두 수상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GSA의 주요 연사인 젤마노프 교수님의 필즈상 수상은 GSA의 쾌거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던 겁니다. 

젤마노프 교수님은 군론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제한된 번사이드 문제’를 푼 업적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1994년 필즈상을 받은 군론의 대가 예핌 젤마노프 교수. 수학동아 DB
1413년 설립된 세인트루이스대. 수학동아 DB
GSA 참석중인 이승재 연구원

● 5년 만에 열린 GSA에서 연구 발표!

11회 GSA는 영국 뉴캐슬대학교에서 2022년 7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열렸어요. 제 두 번째 GSA였는데요. 원래대로라면 2021년에 열렸어야 했지만, 코로나19로 대규모 학회를 열 수 없어 역사상 처음으로 4년이 아닌 5년 만에 열리게 됐습니다. 그사이에 박사과정생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저도 조금 성장했고, 이번에는 연구 발표도 할 수 있어 의미있었습니다.

저는 학회 3일째인 8월 1일 최근 연구 결과를 얻은 ‘히그먼의 PORC 추측’에 대해 소개하고, 제 발표를 들으러 온 수학자들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관해 이야기 나눴어요. 히그먼의 PORC 추측은 1960년 영국 수학자 그레이엄 히그먼이 처음 제시한 추측으로, 임의의 소수 p와 자연수 n에 대해 원소의 개수가 p의 거듭제곱(pn)꼴인 p군의 분포를 예상한 추측입니다. 6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군론의 오래된 난제예요. 

저는 마이클 본-리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님과 함께 n이 8일 때, 즉 원소의 개수가 p8인 p군들 중에서 특수한 경우들을 계산해 이런 제한 조건에서 히그먼의 PORC 추측이 사실임을 증명했어요. 이 문제는 박사과정을 시작한 2012년부터 관심을 가졌고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있는 제가 가장 풀고 싶은 문제 중 하나예요. 

제 11회 GSA 시간표. 수학동아 DB

● 짧았던 영국 방문을 돌아보며…

이번 GSA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프로그램은 저도 발표에 참여한 ‘연구 발표’예요. 연구 발표에서는 보통 저 같은 박사후연구원이나 박사과정생이 30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최근 결과를 소개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정말 다양한 수학자의 최근 연구 소식을 들을 수 있어요. 학회에 오는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하지요. 이번에는 박사과정생들의 연구결과가 특히 재밌었어요. 벌써 그런 신기한 연구들을 하다니 저도 더 분발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조가현 기자 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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