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스트레스는 '백신'...어려움 속 더 강해진다
사람은 약하면서 강하다. 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물론 당시에는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이들이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곤 한다. 실제로 충격적인 사건과 회복탄력성 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 연구들을 보면 사람들은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을 때 생각보다 충격에 잘 견디고, 절망과 무기력에 꽤 잘 저항하는 편이고,
설령 슬픔과 절망에 빠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다시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는 편이다.
우리의 정신상태는 어느 정도 고무고무하다고나 할까 꽤나 탄력적이다.
●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하지만 성장기 때 큰 충격과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어떨까. 아무래도 소위 곱게 자란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문제들을 겪고 있지 않을까? 70년대에 약 20년간 이어진 조사에 의하면 이 역시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연구자들은 미국의 할렘가 같이 가난과 폭력이 난무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난 슈퍼 키드(superkid)들은 남다른 재능과 자질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구가 진행될수록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적응적인 성인으로 자라나고, 탄력성은 특수한 몇 몇의 인간만 가지고 있는 특성이기보다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탄력성은 인간이 거친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기 위해 갖게 된 적응의 산물이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일상적이고 평범한 마법(ordinary magic)”이라고 결론지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충격적인 사건이나 불운이 별 거 아니라거나, 이런 일들을 겪었을 때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불행의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일상을 영위하고 삶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집념과 불행에도 적응해 버리는 인간의 적응력이 대단하다는 이야기에 가깝다. 자신은 개복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그간 겪어온 힘겨움을 고려하면 여전히 상당히 강인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생존하지 못했을 테니까.
● 어려움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사람들
더 놀라운 사실은 그저 견디는 것에 나아가서 불행을 딛고 성장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심각한 부정적인 사건들을 경험하고서 삶의 의미가 한층 깊어졌음을 보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탄력성이 더 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 비해 성과를 향상시키기도 한다. 이에 스트레스는 백신과 같아서 (또는 게임에서 경험치를 쌓아 레벨업 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살면서 필요한 다양한 스킬을 습득하고 이렇게 향상된 스킬을 통해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쳐와도 더 잘 이겨내게 된다고 본 학자들도 있다. 이를 스트레스의 “접종이론(stress inoculation theory)”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아무 것도 없는 경우 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동기 자체가 부족할 것 같기도 하다. 굳이 익숙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자처할 것 같지도 않다. 행복한 일을 통해서도 많이 배우지만 나쁜 일을 통해서도 분명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운다.
● 성장의 조건
하지만 물론 모든 좋지 않은 사건들이 성장에 도움이 되거나, 또 모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통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트라우마를 짊어지게 되거나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자극이 우리 안에 있는 탄력성의 마법을 무력화시키거나 원래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존재하듯 스트레스에 대비하게끔 도와주는 다양한 자원 또는 스킬이 부족한 경우 성장과는 거리가 먼 경험을 할 수 있다.
탄력성을 마비시키는 사건의 발생 여부는 우리가 통제하기 어렵지만 다행히도 스트레스와 맞서 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자원과 스킬은 습득이 가능하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해온 결과 크게 '통제감(내 힘으로 주어진 상황과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 '상황의 재평가(나쁜 상황 속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능력)', '의미 찾기', '충격적인 사건을 머리속에서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곱씹기를 멀리하는 것' 등이 그것들이다.
힘들어 하는 이를 향해 자애로운 시선을 보내듯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따듯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자기자비” 또한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더 단단한 내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에게 자비를 보일 줄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데 꼭 필요한 다양한 정신적, 사회적 자원(주변의 도움)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 극복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자기비하나 스스로 자신감 깎아내리기 등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는 건 항상 힘들다. 물론 즐거움도 적지 않지만 항상 즐거운 일만 발생하지 않는 것이 삶이다. 올 한해도 수고했을 자신에게 필요한 따스함을 베풀어주도록 하자. 나의 수고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나에게 어떤 선물이 좋을지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자신의 힘듦을 보듬을 줄 아는 태도가 내년에도 유용하게 쓰일 탄력성의 마법을 수호해 줄 것이다.
Masten, A. S. (2001). Ordinary magic: Resilience processes in development. American Psychologist, 56(3), 227–238. https://doi.org/10.1037/0003-066X.56.3.227
Seery, M. D., Holman, E. A., & Silver, R. C. (2010). Whatever does not kill us: Cumulative lifetime adversity, vulnerability, and resili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9(6), 1025–1041. https://doi.org/10.1037/a002134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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