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전차…‘교통지옥’경성의 맨 얼굴
1929년4월22일 아침 진명여고보생들은 개교 기념식을 마치고 전세낸 전차 3대에 나눠탔다. 학교설립자인 순헌귀비(엄비)릉에 참배 겸 꽃놀이를 가기 위해서였다. 효자동에서 출발한 전차는 적선동 서십자각에서 커브를 돌다가 전복됐다. 3대 중 중간에서 달리던 제165호 전차 운전사 석갑동의 과속이 문제였다. 3,4년생 120여명이 탄 전차는 아수라장이 됐다. 학생 88명이 경성의전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파쇄된 유리창은 우수수하게 차안에 떨어졌으며 전차의 두부는 그렇게 든든한 강철 기둥이 두 가닥으로 깨어져 버린 가운데 여기저기에 아직도 마르지 아니한 선혈이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며 여학생들의 점심밥을 싼 책보는 함부로 흩어졌으며 뒤축 높은 여학생 구두가 거꾸로 세로 굴러다니고 천정에 매어달렸던 전등과 벽에 붙은 거울까지 일일히 몹씨도 파쇄되었고…’(’선혈 임리(淋漓)한 현장’, 조선일보 1929년4월23일) 사고 현장은 참혹했다. 이례적인 대형 참사였다.
신문은 호외까지 발행하며, 연일 사고 원인과 대책, 부상자 현황을 속보로 보도했다. 경험이 부족한 운전사의 과속과 함께 75명 정원인 전차에 120명을 태우고 달린 전차 회사 경성전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사고 후유증은 컸다. 부상자가 너무 많아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며 학교 측이 여름 방학을 한 달 당겨 휴교를 신청할 정도였다. 사고 석 달 후인 8월1일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던 4년생 최계숙이 정신적·육체적 충격으로 사망했다. 8월 초 2학기가 시작됐지만, 3,4년생 183명 중 68명이 병상에서 신음하느라 결석할 정도였다.(‘진명교 부상학생 1명은 필경 사망’, 조선일보 1929년8월22일)
◇경성주민의 발, 전차
100년 전 경성 거리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근대적 교통수단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1911년 당시 2대뿐이던 자동차는 20년 뒤인 1931년 4331대로 늘어났다. 하지만 승용차, 승합차는 물론 화물차까지 합해도 4331대에 불과한 자동차는 대중적 운반수단은 아니었다. 경성 주민의 발은 전차였다. 전차는 1909년 하반기 37대에서 1945년 하반기엔 257대로 약 7배, 하루 평균 승차인원은 7060명에서 53만9485명으로 76배 이상 늘어났다. 전차 1대당 평균 2100명 꼴로 수송한 셈이었다. 콩나물 시루처럼 승객들을 가득 태운 전차가 만원 버스, 지옥철의 원조였다. 당시 신문엔 ‘교통 지옥’, ‘사바세계의 아수라’같은 제목의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 출퇴근, 등하교 시간마다 교통 전쟁을 치러야 하니 사고가 빈발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살상기계’전차
전주 출신 스무살 청년 탁명록이 고향에 갔다 경성에 올라와 광희문 방향 전차를 탔다. 전차가 황금정(현 을지로) 2정목 9번지를 통과할 무렵, 급하게 내리려고 고함을 쳤다. 하지만 운전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냈다. 전차에서 떨어진 탁명록은 바퀴에 깔려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경찰은 승객 안전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운행한 운전사와 차장을 입건했다. 이 교통사고를 다룬 기사에 붙인 제목이 ‘살상기화한 경성전차’(조선일보 1923년3월9일)다
요즘처럼 교통사고 통계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는 없지만, 신문에는 교통 사고 기사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야외 활동이 많아지는 봄철 교통사고를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경기도(경성 포함)의 1927년 자동차 사고 229건에 사망자 9명, 부상자 59명, 전차 사고는 219건에 사망자 4명, 부상자 174명, 자전차 사고는 107건에 사망자 32명, 부상자145명이었다. ‘소리내는 ‘사자(獅子)’, 전차와 자동차’(조선일보 1928년2월2일)기사였다.
◇횡단보도, 신호등, 차선 등 교통안전 시설 없어
근대 교통사 전문가인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경성부내 교통사고가 빈발했던 근본 원인으로 도로 부족과 신호등과 횡단보도, 가로등같은 교통 안전시설이 열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도로가 비좁고 대부분 비포장인데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도로는 일본인 거주 지역보다 더 도로사정이 열악했다는 것이다.
전차 사고의 대부분은 접촉사고나 뛰어내리다 넘어져서 생겼다고 한다. 사고예방 안내 기사엔 이런 대목이 있다. ‘우선 아무리 급한 일이 있고 뛰어내리고 뛰어오를 만한 자신이 있더라도 한 걸음 더 걷거나 한 차 뒤지는 것을 거리껴서 뛰어내리고 뛰어오르는 것을 일절 하지말 일’ ' 전차 궤도 가로 걸어 갈 때에 항상 궤도로부터 3,4 척 멀리 나서서 다닐 일’. 여기엔 횡단보도를 어떻게 건너라, 신호등이 빨간색일 때는 정지하라는 식의 내용이 없다. ‘전차사고 빈발에 대한 의견’(조선일보 1921년9월10일~9월12일)이라는 시리즈(총3회)에 나오는 내용이다.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같은 시설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이 시리즈 두 번째 기사는 전차 운전사 부족과 차량 노후화를 교통 사고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첫째 운전하는 사람 수효가 적은 것이니 운전하는 차량 수효가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적을 것같으면 승객들이 그다지 급히 서둘러서 타려고 할 것이 아니며 그에 따라서 시간의 경제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요사이 운행하는 전차를 볼 것같으면 10여년씩 운전을 하여 이제는 그만 아주 폐물이 되어서 기계는 어떻게 지탱하겠으나 차체로부터 운전대는 거의 무너지게 되어 승객의 수효는 불과 30여명 밖에 못탈 것을 그것도 운전하는 전차량수의 하나를 계산하니 더욱이 차량의 부족함을 감(感)할 것이다.’(조선일보 1921년 9월11일)
◇'전차 운행 대수 늘리고, ‘심야 버스’ 도입하라’
1939년 인구 90만에 육박하던 경성부는 만원 전차, 버스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경성부회 의원들은 ‘전차, 버스문제 대책위원회’를 구성, 전차·버스 운영주체인 경성전기에 대해 12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전차 대수를 늘릴 것, 전차 부족은 버스로 보충할 것, 급행버스에 환승을 인정하고 요금을 5전 균일로 할 것, 급행버스를 러시아워때만 아니라 종일 운행할 것 등이었다. ‘오전 1시에 버스를 1회 운행할 것’처럼 심야 버스 운행을 주문하는 내용도 담겼다.(’경전(京電)에 보내는 부민의 총의’, 조선일보 1939년12월23일)
경성부의 전차, 버스 운영을 독점하던 경성전기는 경성부를 앞세운 부회(府會)의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급행 버스 운행을 확대하는 한편, 1940년4월부터는 시내 일부 정류장에 서지 않고 통과하는 급행 전차도 운행했다. 경성부회는 교통난 해소를 위해 더 강력한 교통 통제 기관을 만들어 영리 위주 운수회사를 감독할 것을 총독부에 의견서로 제출했다.
지난달 나온 한 카드회사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거주 20~50대는 전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에 하루 평균 64분 쓴다고 한다. 사람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건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택시와 광역버스, 지하철·전철 같은 대중 교통의 질(質)이다. 100년 전 만원 전차, 만원 버스에 시달리던 경성부민들의 분투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참고자료
정재정, 일제하 경성부의 교통사고와 일제 당국의 대책, 典農史論 7, 서울시립대 국사학과,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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