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짧은 다리 때문에” 카바레 스타의 영광과 몰락[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툴루즈 로트레크 편]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형님. 나 좀 봅시다."
1890년대 말. 로트레크는 카바레 '물랭루즈'(Moulin Rouge)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 공연 개막을 알리는 새 포스터 의뢰일 것이었다. 로트레크와 매니저는 익숙하게 단독 방에 들어왔다. 뒤따라온 젊은 종업원이 꾸벅 인사하곤 문을 닫았다. 카바레를 뒤흔드는 음악 소리가 뚝 끊겼다. "이번에는 어떻게 그려?" "형님." 로트레크의 말을 매니저가 가로챘다. "이제 여기 안 오시면 안 될까요." 로트레크는 닥쳐온 기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쥔 지팡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은요. 민원이 많습니다." 매니저가 난감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봐. 내가 여길 위해 얼마나 많은 포스터를 그렸는지 알아?" "알지요. 아는데요." "내가 사례금을 한 푼 받은 적 있어? 그냥 술 몇 병만 받고 끝…."
"형님!" 로트레크는 매니저의 고함에 말을 멈췄다. "윗분들이 형님만 보면 술맛이 떨어진다는데 어떡해요!" 매니저는 꾹 삼켜온 말을 내뱉었다. 로트레크는 일격을 맞고 굳었다. 저 혼자 시간이 멈춘 사람이 된 듯했다. "그 말이, 진짜야?" 로트레크는 절망감에 젖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숨이 가빠져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매니저는 고개를 푹 숙였다. "형님. 죄송해요. 이제 여기도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으니, 손님 아무나 받지 말라고요." 떨리는 목소리였다. 로트레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이상하게 더 침착해졌다. 그는 매니저에게 더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로트레크는 물랭루즈 메인 홀로 돌아왔다.
터덜터덜 움직였다. 공연은 절정이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신나게 캉캉 춤을 췄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로트레크는 그 틈에서 애써 자리를 찾아갔다. 물랭루즈가 생겼을 때부터 줄곧 자신의 지정석이었다. "로티, 오늘은 일찍 들어가?" 직전 공연을 마친 무용수가 반갑게 다가왔다. 짐을 싸고 있던 로트레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애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그림, 딱 내 스타일이거든! 다음에 내 그림도 그렇게 그려줄 수 있어?" "아, 좋지." "당장 오늘 밤도 좋아. 나도 내 애인이랑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손님 말고 진짜 내 애인 말이야." "친구. 오늘은 어렵겠어." "어쩔 수 없지!" 그녀가 호탕하게 웃었다. "난 이 동네 화가 중에서 자기 그림이 제일 좋아. 가장 솔직하니까. 곧 그려줘!"
로트레크는 지팡이를 다시 쥐었다. 그는 그녀에게 윙크를 찡긋한 후 손을 뒤로 흔들며 밖으로 나왔다. 뒤를 돌아봤다. 물랭루즈는 변함없이 반짝였다. 이놈의 다리, 이놈의 다리 때문에! 로트레크는 길을 걷다 말고 울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평생 참아왔던 모든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로트레크는 땅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앙리 마리 레이몽 드 툴루즈 로트레크-몽파(Henri Marie Raymond de Toulouse-Lautrec-Monfa).
로트레크는 자신의 정식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길다는 건 그만큼 피가 귀하다는 뜻인데도 그랬다. 1864년, 로트레크는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툴루즈 가문은 샤를마뉴 대제의 열두 동료(Charlemagne's twelve peers) 중 하나로 프랑스 최고의 귀족 가문이었다. 이 집안의 수장이 한 때 남프랑스 3분의 1을 다스렸다.
하지만 로트레크는 가문의 영광을 잇지 못했다. 가문의 저주를 톡톡히 받았다. 그 시절 툴루즈 가문은 어떻게든 순수혈통을 지키려고 했다. 절대권력을 다른 피와 나누지 않으려고 했다. 이들은 그 시절 횡행하는 수법을 저질렀다. 근친결혼이었다. 로트레크의 부모는 이종사촌이었다. 로트레크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아예 친자매였다. 로트레크가 태어났을 때쯤 툴루즈 가문은 이미 강을 건넌 후였다.
하필이면 로트레크에게 그간 숨죽이고 있던 업보가 돌아왔다.
그는 온갖 유전병에 시달렸다. 로트레크의 입술은 부자연스럽게 퉁퉁 부었다. 혀가 특이하게 길어 발음이 뭉개졌다. 시각과 청각 장애, 두통, 재발성 부비동염도 앓았다. 무엇보다 뼈가 약했다. 성장도 더뎠다. 설상가상으로 13살 때 오른쪽 대퇴골이 망가졌다. 14살에는 왼쪽 다리를 부러뜨렸다. 로트레크의 키는 152㎝에서 멈췄다. 더는 키가 크지 않았다. 상황은 더 나빴다. 로트레크의 약한 다리는 점점 뒤틀렸다. 그는 거위 같이 걸었다. 지팡이가 없으면 고꾸라졌다. 그러면 필시 뼈가 몇군데 부러졌다.
로트레크의 아버지는 가문의 저주를 받은 아들을 저주했다. 그는 아들 욕심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사냥터에 나가는 게 꿈이었다. "쓸모없는 자식!" 아버지는 그가 말에서 계속 넘어지는 것을 보고 욕을 퍼부었다. 아버지는 그를 없는 자식으로 취급했다. 어머니가 유일한 끈이었다. 어머니는 로트레크를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봤다. 자기들 때문에 아들이 악몽을 꾸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어머니는 로트레크가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전적으로 도왔다. 로트레크도 어차피 책 읽고 그림 그리는 일 말곤 할 수 없는 게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로트레크의 그림을 보면 불태우기 바빴다. 어머니는 잿더미를 파헤쳐 그나마 성한 조각들을 챙겨왔다. 로트레크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그림을 차마 관둘 수 없었다.
1882년.
로트레크는 18살이었다. 그는 그 시절 뛰어난 화가였던 보나에게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았다. 이어 역시 출중한 화가였던 코르몽을 만나 배움을 이어갔다. 이쯤 로트레크는 툴루즈 가문의 저택에서 벗어났다. 돈 없는 예술가가 몰려 사는 몽마르트 언덕에 짐을 풀었다. 스스로 파리의 가장 높은 곳에서, 파리의 가장 낮은 곳으로 왔다. 이제 비싼 스테이크와 고급 와인은 없다. 싸구려 치즈와 독한 압생트뿐이었다.
로트레크는 그래도 좋았다. 아버지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귀족들의 애처로운 눈빛을 피할 수 있었다. "마침내 자유다." 로트레크는 몽마르트가 상처투성이인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 더럽고 비루한 곳이 마음에 쏙 들었다. 로트레크는 그림을 배울 때도 잘 닦인 아카데미식 교육에서 엇나갔다. 로트레크는 정형화된 귀족식 가르침이 혐오스러웠다. 억지로 승마와 사냥을 배울 때가 떠올랐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당대 거장들의 가르침을 꾸역꾸역 받았지만,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로트레크는 스스로 롤 모델을 만들었다. 드가였다.
이 까칠한 천재 화가는 제멋대로였다. 온갖 욕을 다 먹고도 제 갈 길을 갔다. 끝내 자기 화풍을 만들었다. 가만 보면 처연하고, 오래 보면 눈물이 차오르는 그림들이었다. 차원이 다른 깊이감이었다. 로트레크는 드가의 뜻을 받들었다. 드가처럼 어떤 유파나 예술 사조도 따르지 않았다. 로트레크는 폼 안 나는 몽마르트의 술집, 극장, 뒷골목만 그렸다. 젠체하는 또래 화가들이 화려한 색채만 파고들 때, 저 혼자 사람의 삶 중 가장 진솔한-그래서 더욱 서글픈 면을 후벼팠다. "추한 면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정말 짜릿하다." 그는 자신의 화풍을 이렇게 평가했다.
"압생트나 마시자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트레크가 여느 때처럼 몽마르트를 배회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툭 치며 말을 걸었다. "하! 그러자고." 로트레크는 입꼬리를 올렸다. 로트레크는 이 시기에 한 사내와 부쩍 친해졌다. 붉은 머리를 한 비쩍 마른 화가였다. 그의 이름은 고흐였다. 로트레크는 코르몽의 화실에서 고흐와 처음 만났다. 로트레크는 고흐를 흘깃 쳐다봤다. 그의 낡은 외투에선 늘 술과 먼지 냄새가 났다.
로트레크는 고흐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웬 촌놈이 그림을 제멋대로 그린다고 했다. 한참 술 먹고 잘 놀다가도 의견이 갈리면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고 했다. 이 남자는 철저히 외톨이였다. 로트레크는 그런 고흐에게 호감이 갔다. 자신이 불완전한 몸과 싸우고 있다면, 고흐는 격정적인 정신과 맞서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술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점이 똑같았다. 로트레크는 독주를 이것저것 섞어마셨다. 고흐는 주로 압생트만 부어넣었다. 둘은 잘 맞았다. 로트레크가 장난스럽게 농담을 걸면 고흐가 어우어우하며 고개를 내젓는 식이었다.
로트레크는 고흐를 캔버스에 그리기도 했다.
술을 앞에 두고 먼 곳을 보는 고흐는 쓸쓸하고 고독해 보인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노인의 면이 다 담겨있다. 로트레크는 한 취객이 고흐를 모욕하자 그 대신 결투를 신청키도 했다. 다행히(?) 성사되지 않았지만, 고흐는 그의 결기에 깊이 감동했다. 그 성질머리의 고흐도 이 아담한 화가 앞에선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았다.
둘의 우정은 2년가량 이어졌다. 고흐는 아를로 갔다. 고흐는 따뜻한 남프랑스에서 생활하는 화가 공동체를 꿈꿨다. 그가 가장 부르고 싶어한 이는 로트레크였다. "로티. 여기에서 꿈을 펼치자고." 고흐는 로트레크에게 장문의 편지를 여러 차례 썼다. 하지만 로트레크는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로트레크는 알고 있었다. 불행과 불행을 더하면 따라오는 건 더 큰 불행뿐이었다. 이 굴레는 이쯤에서 끊어야 했다.
1889년.
몽마르트의 한 건물 옥상에 붉은 풍차가 세워졌다. 카바레 물랭루즈(프랑스어로 붉은 풍차)가 탄생했다. 단숨에 명소로 떠올랐다. 몽마르트의 새로운 유명지였다.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렸다. 귀족부터 밑바닥 하류층이 함께 뒤섞였다. 쾌락만이 두둥실 떠다녔다. 누구든 돈만 있다면 술을 마음껏 퍼마시고, 인사불성이 돼 춤을 추고 노래해도 되는 곳이었다. 로트레크는 이곳이 좋았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마음껏 엿볼 수 있었다. 명함은 없고 사람만 있는 유토피아였다. 로트레크는 물랭루즈의 단골이었다. 이를 넘어 명물이 됐다. 그의 지정석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이곳에서 귀족, 집시, 작가, 운동선수, 예술가, 술꾼, 외국인, 서커스 단원 등을 그렸다. 로트레크는 특히 무용수에 관심이 많았다. 물랭루즈는 당대 최고의 무용수를 거느린 파리의 밤 문화 그 자체였다. 당시 무용수는 하층민 출신의 소녀들이 대부분이었다. 상당수는 매춘의 길로 빠져들었다. 로트레크는 이들의 진짜 삶을 담았다. 숙취에 시달리는 모습, 피곤함에 찌들어 퇴근하는 모습, 병 검사를 받는 모습, 멍하게 서고 처연하게 앉아있는 모습 등이었다. 손님을 앞에 두고 배시시 웃는 표정이 아니었다. 눈부신 조명 밑에서 흥겹게 춤추는 자세도 아니었다.
로트레크의 작품은 누구처럼 예쁘지 않았다.
아무 보정도 없는 원본이었다. 그런데도 그림을 받아든 무용수들은 진심으로 좋아했다. "로티, 이게 진짜 내 모습이야!" 그에게 뽀뽀 세례를 하고 끌어안았다. 로트레크의 손끝에서 무용수들 또한 남들과 똑같은 한 명의 인간으로 표현된 것이다. "귀족적 정신을 가졌지만 신체 결함이 있던 그에게, 신체는 멀쩡하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한 매춘부들이 묘한 동질감을 줬을 것." 로트레크의 동료 뷔야르는 훗날 이렇게 설명했다.
"형님. 저희랑 일 하나 같이 하시죠."
1891년, 물랭루즈의 친한 매니저가 로트레크의 등을 툭툭 쳤다. "저희 가게 포스터 그려보실래요?" 그가 제안했다. "그러지 뭐." 로트레크는 승낙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돼?" "그냥 형님 느낌대로. 힘 쭉 빼고 그려주십쇼." "그래. 돈은 됐고, 여기서 술만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해줘." "걱정하지 마셔요!" 둘은 손을 맞잡았다.
로트레크는 곧장 작업했다. 대량생산을 위해 석판화(石版畫·물과 기름의 반발력을 이용한 평판법에 의한 판화)로 만들었다. 강렬하고 직관적으로 색을 칠했다. 맨 위에는 물랭루즈 철자의 첫 글자인 'M'을 썼다. 바로 아래에는 '먹보'라는 뜻의 '라 굴뤼(La Goulue)'라는 글을 덧붙였다. 당시 물랭루즈의 간판 무용수 이름이기도 한 라 굴뤼는 뭇 남성들을 홀리며 신나게 캉캉 춤을 추고 있다.
세로 길이 190㎝의 이 포스터는 4가지 색상으로 3000여장이 뿌려졌다.
길거리 포스터의 시초였다. 효과는 굉장했다. 사람들은 이 포스터를 몰래 뜯어갔다. 내가 먼저 찜했다며 주먹질도 했다. 그의 포스터를 사고파는 행태도 생길 정도였다. 로트레크는 물랭루즈 내부 풍경도 성실히 그려줬다. 특히 몸놀림이 유연해 '뼈 없는 발랑탱'(Valentin-le-Desosse)으로 불린 남성을 그린 그림, 돌아선 채 머리를 매만지는 라 굴뤼와 그 앞을 지나가는 자신을 그린 그림 등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의 손끝에서 물랭루즈는 꿈과 환상의 장소로 묘사됐다 . 로트레크는 파리의 난쟁이에서 파리의 스타로 떠올랐다.
로트레크는 매력남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고귀한 가문, 넘치는 교양, 선을 넘지 않는 쾌활함을 좋아했다. 그런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 이가 있었다. 여성 화가 수잔 발라동이었다. 발라동은 미천했다. 로트레크와 정반대의 출신 성분이었다. 사생아로 내던져진 발라동은 청소부, 세탁부, 곡예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서커스 공연 중 몸을 다친 발라동이 새롭게 찾은 일이 모델이었다. 진한 인상, 풍만한 몸, 강한 생명력을 지닌 그녀는 몽마르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델로 성장했다.
그녀의 별명은 '몽마르트의 연인'이었다. 몽마르트의 모든 화가가 그녀를 좋아했다. 그쯤 발라동은 생애 처음으로 꿈을 꿨다. 모델을 넘어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어깨너머로 보기만 한 데생을 시험 삼아 해봤다. 어라? 나쁘지 않았다. 그림을 잘 모르는 자신이 보기에도 꽤 괜찮았다. 발라동은 평소 가깝게 지낸 화가 샤반의 집 문을 두드렸다. "제가 몇 개 그려봤는데요. 괜찮지 않아요?" 발라동은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샤반의 반응은 차가웠다. "응석을 다 받아줬더니, 어디서 건방지게 화가 흉내를 내!" 샤반은 발라동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닌 하층민으로 본 것이었다.
발라동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일렁이는 화혼은 주체할 수 없었다. 발라동은 여러 화가의 작업실을 전전했다. 수업으로 모델료를 대체했다. 그런 발라동은 어느 날 르누아르에게 그림을 배우다가 쫓겨났다. 끈적한 르누아르의 눈빛에 불안감을 느낀 그의 연인이 머리채를 잡고 골목길에 내던졌다. 팔자 참 기구하다…. 발라동은 이렇게 중얼대며 찌그러진 채 길가에 나앉았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다. 로트레크였다. 로트레크는 발라동을 정성껏 가르쳤다. 그는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어쨌든, 발라동도 자신의 운명과 맞서고 있었다. 로트레크는 '수잔'이라는 이름도 직접 붙여줬다. 화가라면 제대로 된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로트레크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드가도 소개해줬다. 발라동은 이들의 도움으로 정식 화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로트레크는 발라동을 모델로 그림도 그렸다. 그림을 받아든 발라동은 눈물이 차올랐다. 그림 속 그녀는 지친 표정이었다. 빛바랜 옷이었다. 하지만 강렬한 눈동자,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 단단한 턱을 통해 생에 대한 의지가 뚝뚝 묻어났다. 이게 진짜였다. 무도회에서 우아하게 춤추는 가짜가 아니었다. 발라동은 로트레크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자신을 사람 대 사람으로 본 이는 그대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로트레크는 고개를 내저었다. 발라동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소동도 일으켰다. 그런데도 로트레크는 그녀의 청혼을 끝끝내 거절했다. 로트레크는 이젠 연락이 끊긴 고흐를 떠올렸다. 비극에 비극을 합쳐본들 태어나는 건 더 큰 불행뿐이었다.
이놈의 다리, 이놈의 다리 때문에!
물랭루즈에서 쫓겨난 로트레크는 절망감을 떨치지 못했다. 사실 로트레크는 괜찮았던 적이 없었다. 진정으로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로트레크는 가문의 숙명을 인정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저주를 받아들인 것 또한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장애만 없었다면 그는 백작 대우를 받을 터였다.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온 그에게 남겨진 것은 가장 낮은 곳을 평생 참는 것뿐이었다. 불행의 굴레를 멈추기 위해 친구도, 연인도 포기했다. 술이 떡이 되도록 취할 때면 "장애가 없었다면 이따위 그림 거들떠나 봤을 줄 알아!"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로트레크는 폭주했다. 물랭루즈에서 쫓겨난 일보다 더 열받는 게 있었다. 다들 아닌 척하면서 자신을 이방인 취급했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매독이 광기를 부추겼다. 로트레크는 평생을 동료처럼 지낸 무용수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이해할 수 없는 장난으로 주변 사람들을 떠나가게 했다. "네놈들이 나에게 전염병을 옮기려고 해!" 어느 날은 이렇게 소리치며 자기 주변에 석유를 한가득 뿌리기도 했다.
1889년,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몇 달 뒤 퇴원해 작업을 이어갔지만 기행과 폭음은 그대로였다. 1901년에는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실려 갔다. 몸에 마비 증상이 온 그는 몸도 가누지 못했다. 그는 9월9일, 37세도 채 못 되는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영영 눈을 감았다. 로트레크는 끝내 아버지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고 한다. 유언은 "바보 같은 노인네!"(Le vieux con!)였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럼에도 끝내 못 털어낸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쏟아내고 떠났다.
〈후암동 미술관 이론 편 읽는 순서〉
①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②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③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④‘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⑤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⑥아름다운 여인, 끌어안고 난리난 옆 커플이 부러워[후암동 미술관-와토 편] - 로코코 선구자(2022.10.8.)
⑦맨몸 여인들, 전쟁 뛰어들어 “그만!” 사자후…싸움 막았다[후암동 미술관-다비드 편] - 신고전주의 선구자 (2022.10.15.)
⑧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⑨“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⑩“관상가 양반 아니었어?” 조선의 ‘얼굴’, 몰랐던 사실[후암동 미술관-윤두서 편] - 사실주의 특별 편 (2022. 11. 19.)
⑪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⑫“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⑬‘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⑭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⑮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⑯‘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로댕 편] - 근대 조각 선구자 (2022. 10. 22.)
⑰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⑱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⑲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⑳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㉑“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㉒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액션페인팅 선구자 (2022. 10. 29.)
㉓몸 좋은 보디빌더, 거대 막대사탕 들고 ‘의문의 포즈’[후암동 미술관-리처드 해밀턴 편] - 팝아트 선구자 (2022.11.12.)
㉔“동양서 ‘테러리스트’가 왔다” 피아노 다 때려부쉈다[후암동 미술관-백남준 편] - 비디오 아트 선구자 (2022.11.26.)
〈후암동 미술관 인물 편 읽는 순서〉
①“고갱 그놈, 도대체 왜 그래?” 악마인지 ‘악마의 재능’인지[후암동 미술관-폴 고갱 편] - 고귀한 야만인 (2022. 12. 3.)
②“이놈의 짧은 다리 때문에” 카바레 스타의 영광과 몰락[후암동 미술관-툴루즈 로트레크 편] - 작은 거인 (2022. 12. 17.)
③눈동자 없는 기괴한 여자 그림, 알고 보니[후암동 미술관-모딜리아니 편] - 파리의 귀공자 (2022. 12. 10.)
④“로댕 아이를 뱄다” 폭탄선언 여성, 30년 수용소에 갇혔다[후암동 미술관-카미유 클로델 편] - 로댕의 맞수 (2022. 11. 5.)
⑤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진짜’ 괴짜 (2022. 9. 3.)
⑥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 각성했다는데[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 영원한 라이벌 (2022. 9. 10.)
⑦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우아한 전사 (2022. 8. 20.)
〈후암동 미술관 현장 편 읽는 순서〉
①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②알코올 중독 ‘이 남자’, ‘파리’에 미치자 놀라운 일 터졌다[후암동 미술관-몽마르트 언덕 편] - 동행자 : 모리스 위트릴로 (2022. 9. 17.)
③고흐 “슬픔은 왜 나한테만” 펑펑 울었다, 고작 2평 다락방에서[후암동 미술관-오베르 편] - 동행자 : 빈센트 반 고흐 (2022 9. 24.)
④모네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어”…백내장도 못 막은 그의 ‘최후작’[후암동 미술관-지베르니 편] - 동행자 : 클로드 모네 (2022. 10.1.)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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