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대통령 개혁 각오’는 여의도 담장 넘을 수 있을까

강천석 고문 2022. 12. 17.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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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나라 ‘발견’하면서 祖國을 ‘재발견’하는 게 先進化
한 세기 걸려 興하고 亡하던 세계 시계 10년 單位로 바뀌어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영국밖에 모르는 사람은 사실 영국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이 말은 세상 모든 나라에 적용해도 들어맞는다. 미국밖에 모르는 사람, 중국밖에 모르는 사람, 일본밖에 모르는 사람, 독일밖에 모르는 사람, 프랑스밖에 모르는 사람은 실제 자기 모국(母國)도 잘 알지 못한다.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물 밖에 나가봐야 우물 안이 좁은지를 안다.

‘조국’을 발견하려면 ‘조국’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봐야 한다. 방 안에 틀어박혀 선각자(先覺者)가 된 사람은 없다. 이승만(1875~1965)과 안창호(1878~1938)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미국과 유럽을 떠돌며 나라를 빼앗긴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그 위 세대 선배가 유길준(1856~1914)이다. 조선 정부가 일본에 파견한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바다를 건넜던 스물네 살 청년은 일본 개화 선각자 후쿠자와(福沢諭吉)가 세운 학교에서 1년 6개월을 배웠다. 일본을 배운 게 아니라 일본에 들어와 있던 서양 문명을 배웠다. 스물여덟에 대미(對美) 사절단에 합류했던 그는 다시 1년 6개월 미국을 공부했다. 그는 두 번의 외국 체험을 담아 1899년 ‘서유견문(西遊見聞)’을 펴냈다. 그러나 이미 글러버린 조선은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든 나라는 앞선 나라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나라를 ‘재발견’한다. 약점은 보강(補强)하고 장점은 보전(保全)하며 세계 선두를 지향(志向)한다. 유길준이 ‘서유견문’을 펴내며 많이 참고했던 ‘서양 사정’의 저자 후쿠자와는 젊어서 네덜란드어를 공부하다 네덜란드 위에 영국과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어로 방향을 틀었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두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두지 않았다’는 말로 시작하는 ‘학문의 권유’를 비롯한 ‘서양 사정’ ‘문명론의 개략(槪略)’은 근대를 향한 세 디딤돌이었다. 일본은 후쿠자와의 이야기에 귀를 열었다.

1831년 스물다섯 살 프랑스 젊은이가 왕당파(王黨派)와 공화파(共和派)가 피범벅이 돼 싸우는 조국을 등지고 미국을 10여 개월 둘러보고 쓴 책이 고전(古典)이 된 ‘미국의 민주주의’다. 글은 미국을 다루고 있으되 글 아래 어른거리는 것은 조국의 현실이다. 그로부터 40년 후 프랑스는 황제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는 굴욕을 겪는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자 한 영국 정치가는 피로써 피를 갚는 혁명의 앞날을 내다보고 의회민주주의와 점진적 개혁이라는 영국 가치의 보전을 역설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에서 그가 예측한 대로 프랑스 혁명은 왕을 단두대에 올려 처형하고 1년 반 후 왕을 처형한 인물을 다시 처형하는 유혈(流血) 행진을 계속했다. 당시 영국은 그의 말을 경청(傾聽)했다. 그의 책은 1만7000권이 팔렸다. 요즘으로 치면 몇 백만 권이 팔린 셈이다.

1964년 12월 10일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루르 탄광지대를 찾았다.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문하기 위해서였다. 광부는 막장에서 일하며 한 달에 600마르크(당시 환율로 160달러)를, 간호사들은 알코올 묻힌 솜으로 사망한 사람 몸을 닦으며 번 돈 440마르크(110달러)를 모국에 보냈다. 이들의 송금액은 연 5000만 달러로 GDP의 2%에 해당했다. 대통령은 터져 나온 눈물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광부와 간호사의 흐느낌은 곧 통곡으로 변했다. 그곳에서 박 대통령은 세계 제2 경제 대국 서독을 ‘발견’하면서 가난한 조국을 ‘재발견’했을 것이다.

지금은 속도의 시대다. 한 세기에 걸쳐서 나라가 흥(興)하고, 망(亡)하던 시대가 아니다. 길어야 20년, 짧으면 10년 주기로 성쇠(盛衰)가 바뀐다. ‘이제라도 독일(경제)을 구출할 수 있을까’가 2003년 독일에서 출판됐는데, 2020년 ‘왜 독일은 (영국보다) 잘하는가’라는 책이 영국 베스트셀러가 됐다. 반대로 ‘왜 일본은 성공하였는가’라는 책이 1982년에 여러 나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을 읽고 일본 전공을 하게 된 오스트레일리아 학자가 항의하자 저자는 그 답변으로 1999년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라는 책을 또 써야 했다. 세계 시계는 훨씬 더 빨라졌다.

대통령은 ‘인기 없는 일이어도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이뤄내겠다’고 했다. 여의도는 앞서 가는 나라를 ‘발견’하지도 못하고 한국을 ‘재발견’하지도 못한 야당이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 담장을 넘을 수 있을까. ‘대통령의 정당’도 ‘우물 밖’을 알고 있기나 한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는 나라’는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맞는다. 국민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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