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중년 남자] 기름때도 청소도 싫으면 안 해먹는 것이 유일한 답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2. 12. 1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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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문짝 끄트머리에 파란색 스펀지를 붙인 채 다니는 차들을 보면 의아하다. 출고할 때 어디 부딪혀서 상처가 날까 봐 붙여둔 일종의 포장재인데, 그걸 떼지 않고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달고 다닌다. 처음에 바로 뗐으면 깔끔하게 떨어졌을 텐데 비바람에 닳아 떨어진 자국은 거뭇거뭇 흉하다. 남이야 그러든 말든 내 상관할 바 아니지만, 꽤 비싼 자동차 문짝 끝에 달린 싸구려 스펀지는 영 기괴하게 보인다.

몇 년 전 내가 차를 새로 샀을 때도 파란 스펀지들은 물론 좌석이며 계기판 같은 곳에 온통 비닐이 붙어있었다. 이걸 왜 안 뗐느냐고 묻자 딜러는 주인 허락 없이 비닐이나 스펀지를 떼면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있어서 비닐 붙은 채로 출고한다고 했다. 그러니 차에 상처날까 봐 스펀지는 물론 비닐도 안 떼고 다니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타이어에 비닐 씌우지 않는 게 다행일 지경이다.

생각해 보면 휴대폰에 케이스를 씌우는 것도 좀 우스꽝스럽다. 휴대폰 디자인은 뒷면과 옆면에 집중돼 있다. 앞면도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검은색 유리일 뿐이다. 휴대폰을 살 때만 해도 색깔을 팬텀 블랙으로 할까 버건디로 할까 고민하지만 사고 나면 엉뚱한 색깔 케이스를 씌워버린다. 워낙 깨지거나 긁히기 쉬워 케이스를 안 씌울 수도 없으니, 휴대폰 뒷면 색상의 가장 큰 역할은 새것으로 바꾸고 싶도록 충동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친구네 집에 갔더니 가스레인지 주변 벽면에 온통 신문지를 붙여놓았다. 기름이며 양념이 타일에 튀는 게 싫어서 그렇게 한다고 했다. 신문지가 어느 정도 더러워지면 새 신문지로 갈아 붙인다. 친구는 그것이 생활의 지혜인 것처럼 얘기했지만 내 눈에는 부엌 한쪽이 신문지로 도배돼 있는 모습만 보였다. 그럼 타일은 잘 관리해서 다음에 이사 오는 사람한테 넘겨주겠네, 신문지 붙일 거면 콘크리트로 놔두지 타일은 왜 붙였냐 이죽거렸더니 그게 자기가 사는 방식이니까 잔말 말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잔말을 잇지 않았다. 살림에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직수입 밀라노 블랑코 타일로 주방을 꾸며도 가스레인지 주변엔 신문지를 붙이겠다면, 신문지를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문지가 싫으면 자주 청소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타일 청소용 세제 따로 살 필요 없이 코로나 덕분에 풍년인 손소독제가 좋은 청소용품이다. 녹슨 철물에 쓰는 WD-40 같은 윤활제도 기름때를 말끔히 닦아낸다. 신문지도 싫고 기름때도 싫고 청소도 싫으면, 아무 것도 안 해먹는 게 유일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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