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스테핑’은 계속돼야 한다…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방식으로
[장부승의 海外事情]
尹정부의 도어스테핑 중단
日 부라사가리가 주는 교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도어스테핑’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됐다. 대통령이 매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도어스테핑’이라 하고, 매일 ‘도어스테핑’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런데 지난달 이 ‘도어스테핑’이 갑자기 중단됐다.
원래 영어에서 도어스텝(doorstep)은 문 앞 계단, 즉 문 바로 앞을 의미한다. 도어스텝이 동사로 쓰이면 언론 용어로서 예고 없이 취재원의 집을 방문하여 질문하는 취재 행위를 말한다. 서구 언론에서 이 ‘도어스테핑’은 정식 취재 수단이긴 하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높아 위험한 취재 기법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도어스테핑’은 다른 수단으로 취재가 불가능할 때 최종 수단으로서 엄격한 승인 절차를 거쳐 사용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영국 공영방송 BBC의 경우, 도어스테핑은 원칙적으로 취재원이 고위 공직자로서 중요 정책에 관여하거나 중대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보임에도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불응할 때 사용하며, 편집국 승인하에만 실시할 수 있다. 더욱이 사전 인터뷰 요청도 없이 바로 도어스테핑을 실시할 경우에는 별도로 취재 윤리 부서의 검토도 거쳐야 하고, 그 경위를 모두 문서로 남기게 되어 있다.
이런 의미의 ‘도어스테핑’은 요즘 말하는 ‘도어스테핑’과는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쓰는 ‘도어스테핑’이라는 말은 사실 일본 언론계에서 쓰는 ‘부라사가리’라는 말과 의미가 유사하다. ‘부라사가리’는 ‘매달리다’라는 뜻이다. 일본 총리를 기자들이 둘러싸고 질문하는 모습이 마치 기자들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부라사가리’라 부른다는 설도 있고, 총리 앞에 여러 언론사의 마이크를 둘둘 묶어 들이미는데, 마이크들이 축 늘어져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는 설도 있다. 하여간 ‘부라사가리’는 총리 관저에 총리가 드나들 때, 기자들이 총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요즘 우리가 말하는 ‘도어스테핑’과 유사하다.
일본에서 ‘부라사가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총리는 2000년대 초·중반 무려 5년 반 장기 집권한 고이즈미였다. 그는 자신이 던지는 말이 방송에 기껏해야 7~8초 이상 보도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았다. 그의 비서관들은 사전에 언론과 비공식 접촉해 언론의 관심사를 파악해 보고했고, 고이즈미는 이에 맞춰서 말을 던졌다. 언론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는 하루 두 번 부라사가리를 정례화했고, 그가 던지는 한마디는 그가 의도한 대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재임 기간 내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 배경 중 하나로 이 부라사가리가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고이즈미 퇴임 이후 부라사가리는 부정적 측면이 커져 갔다. 후임 총리들은 언론을 활용하기보다는 부담스러워했다. 부라사가리를 정례화하다 보니 질문 공세는 커져 갔고,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나온 답변은 실언이 되기 일쑤였다. 언론도 자꾸 총리 발언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일본 민주당 정권 마지막 총리였던 노다는 부라사가리 중단을 선언했다. 요즘 일본 총리들은 부라사가리를 정례화하지는 않지만 총리의 개인적 성향과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부라사가리에 응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 반년간 윤석열 정부 도어스테핑을 돌아보면 긍정적 측면이 적지 않다. 워낙 전임 대통령들이 언론 접촉을 꺼렸고, 특히 직전 대통령은 민주국가의 지도자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언론을 멀리하는 소극적인 언론관을 보여주었기에 과감하게 언론과 직접 소통하고자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적극성만으로는 이제 부족하다. 좀 더 정교한 대응, 효과적 소통을 위한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출퇴근 중에 잠깐 만나는 식의 소통은 일본의 예에서 보듯 부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 부라사가리를 잘 활용했다는 고이즈미 총리 역시 툭툭 던지는 듯한 한마디를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내실 있는 소통을 위해서라면 현재의 도어스테핑 형식보다는 미국 대통령들이 하듯 더욱 틀이 갖춰진 정례 기자회견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 역시 대통령실이 진지하게 고려해보기 바란다. 이제 도어스테핑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도어스테핑 중단 사태의 한 축을 담당한 MBC와 그 기자 역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자에게 질문할 권리는 있지만 흥분할 권리도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국 최고 지도자에게 적의를 담아 고함을 질러대는 기자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언론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슨 수단이든 용납되는 것도 아니다. BBC가 왜 도어스테핑에 대해 정교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들어 두었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권력자에게 의혹 제기를 하는 것은 분명 언론의 사명이지만 같은 수준의 엄격성을 스스로 취재와 보도에 적용하는 것 역시 언론이 할 일이다.
우리는 구중궁궐에 갇힌 대통령들의 시대를 거쳐 왔다. 이제 더욱 개방된 시대정신에 맞춰 권력과 언론 간의 새로운 소통 구조를 쌓는 데 시행착오가 나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시행착오가 두려워 업그레이드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부디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집권 2년 차를 맞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소통의 방식을 들고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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